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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제5계명의 변천과정] 살인禁->미워함禁->용서->사랑
작성자김영범 쪽지 캡슐 작성일2013-06-18 조회수372 추천수1 반대(0) 신고

마태오 복음서에 보면 십계명의 제 5계명 ' 살인하지 말라' 는 계명에 대한

예수님의 강해가 곳곳에  나옵니다.


먼저 5장 22절 에 보면

'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 '

즉, 살인 행위를 해야만 재판을 받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에 감춰진 살인 의도까지 살인

행위와 상응한 범주로 확대 시킨 내용.


  어제 복음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오히려 누가 네 오른 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대

라'
(5,39)

 전자는 ' 비폭력 ' ,  후자는 '무저항' 의 원칙에 근거가 된 듯 합니다.

' 비폭력' 의 원칙은 그 어떠한 폭력도 포기 해야 함을 뜻합니다. 

 폭력이란 악순환의 에너지 입니다. 

' 무저항 ' 의 원칙은  이미 폭력을 사용한 사람들이  어떻게든 자신을 정당화 시키려는

모든 노력을 고발 합니다.

' 無저항 '을  '저항하지 아니한다' 라는 '비(非) 저항'으로 오해해서는 안됩니다.

 저항을 가장한 폭력을 경계하는 이 '무저항 원칙' 앞에 어느 누가 정당방위개념을 악용

하여  완전 범죄를 꿈꿀  수 있다는 말입니까?  

이기주의가 만연한 개인간의 관계에서 이런 원리는 더 잘 드러납니다.


악이 있다면, 더 큰 악의 폭력이 아니라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합니다.

아무리 악한 사람도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사형제도' 는 철폐되어야 합니다.

"더 큰 희생을 막기 위한 어쩔수 없는 제도 아니냐?"  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5계명을 어기고 싶은 악마의 욕망일 뿐 입니다. 판사도 인간이고 잘못된 판결을

내릴 수 있습니다.

사형제도로 말미암아 범죄가 줄어든다는 공식 보고는 어디에도  전무한 생태 입니다.


전쟁의 역사로 점철된 국가간의 관계에서 살인이 정당화 되는 비극이 일상화 됩니다.

하지만...

가톨릭의 큰 성인인 아우구스티노가 저술한 '정전론' (正戰論 : 옳바른 전쟁 이론) 마저도

침략근성에 사로잡힌 제후들이 자신을 정당화 시키는 근거의 빌미로 이용된 창 이었다

고 재평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인 '무저항 원칙'(오른뺨 맞으면 다른뺨도 돌려대라) 에 함부로 무엇을 덧

붙이면 안됩니다. 자꾸 덧붙치면 악도 끼어 듭니다.

'옳바른 전쟁'  (正戰) 이란 것도 결국은 인간들의 뜻이 었지 하느님의  뜻은 아니었던 것

입니다. 

 고인이 되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이미 십자군 전쟁을 정당화한 가톨릭의 죄를 반

성 한다고 하셨음에 매우 주목 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 입니다. 아무리  테러국가라 할 지라도 그 나라를 없애려고 더 큰 폭력

으로  해결 할 명분은 그 나라의 명분이지 꼭 전 세계적으로 보편적이고 합당한 명분이

라고  하기에는  심각한 걸림돌이 있습니다.

더군다나 이러한 것에 종교적이고 윤리적인 명분은  매우 심각한 위선을 조장할 위험이

존재 합니다.

 만에 하나  악한 국가 문제를 해결 한 나라가  폭군 행세를 하는 나라라도 된다면 ....그

나라를 제압하기 위해 또 엄청난 폭력의 연대가 등장 할 것이고.... 그런 식으로 끊임 없

이 세상은 사랑이 아니라 폭력만이 정의가 되는 세상이 될 것입니다. 

'강한 것은 아름답다' 라든지

'힘이 있어야 평화가 온다' 라는 등의 '절대힘'에 의한 정의 논리는 

이 세대가 가기전에 분명 비난 받을 논리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힘이 없는 사람의 아들 이셨습니다.


이제 이러한 '비폭력 무저항의 원칙' 에서 우리는 평화를 위하여 계속 더 나아가야 합

니다.  단순히 분쟁을 멈춘다는 의미에서 평화를 바란다면 또다른 분쟁이 고개를 듭니

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오늘 복음에서

'원수를 사랑하여라' (5,44)
라고 하셨습니다.

 제 5 계명의 종결판입니다.

이로서 '살인 하지 말라' 는 계명은 드디어 사랑의 계명으로 까지 변천 되었습니다.

'사랑하여라' 라는 상위법이 인간에 의한 인간 살인의 부당성을 완벽히 드러냅니다. 

더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 합니까?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줍니다. (1코린 13,7)


 '사랑, 언제까지나 스러지지 않는 ' 이란 책에서 안셀름 그륀 신부님은

'하느님이 사랑이지, 사랑이 하느님이 아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하느님이란 영역에 들어 갔을 때에만 사랑을 알 수있습니다.

아무리 "사랑이란 이러이러해야 한다"고 해봤자 그건  사랑도 하느님도 아닐 가능성이

매우 많습니다.


 원수를 사랑한다는 것은 불가능 한 것처럼 보여도

우리가 하느님을 제대로 알면 원수란 상대적인 것임을 알게 됩니다.


핵심은 사랑입니다.


'살인 말라' 에서 '미워 말라'

'미워 말라'에서 '용서 하라'

'용서 하라'에서 '사랑 하라'

'사랑 하라' 에서 '더 큰 사랑으로' 

'더 큰 사랑' 에서 '더 더 큰 사랑으로'  

가는 것이 우리가 믿고 있는 든든한 가톨릭 신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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