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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의 한계는 무엇인가?
작성자이정임 쪽지 캡슐 작성일2013-06-19 조회수434 추천수1 반대(0) 신고

+샬롬(그리스도의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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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사우는 어떤 손해를 입었을까?


"그런데도 당신네 아버지는 나를 속이면서 내 품값을 열 번이나 바꿔 쳤소.

그렇지만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해를 입히지 못하게 하셨소."(창세 31,7)

 

야곱이 살아보고 하는 고백을 통해 에사우에 대해 묵상해 보려고 합니다. 

그렇다면 야곱이 에사우라고 속여서 아버지 이사악의 축복을 받아냈다 해서

에사우는 어떤 손해를 입었을까? 하고 묵상해 봅니다.

 

야곱이 라반과 함께 20년 동안 살면서 참으로 많은 속임을 당하고 살았나 봅니다.

그렇지만 야곱의 고백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사람에게 속임을 받았다해도

그로인해 해를 입지 않았다는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되었을까?

하고 묵상해 보려고 합니다.

 

분명 어떤 이가 나를 속여 내 몫을 가로챘다면 손해를 입는 것은 당연한데

야곱은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어떤 해를 입히지 못하게 하셨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고백의 의미는 무엇일까? 하고 묵상해 보려고 합니다.

 

야곱은 라반의 집에서 분명 변화된 삶을 살았습니다.

어떻게 살았을까?

라반이 처음에 야곱을 속였을 때를 묵상해 봅니다.

라헬을 얻기 위해 칠 년 동안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라반은 라헬을 주지 않고

레아를 라헬로 속여 야곱은 레아와 한자리에 들었습니다. 이 때 어떻게 했는가?

 

억울해서 레아를 내쫓았는가? 그대로 아내로 맞았습니다.

억울해도 받아 들였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다시 라헬을 얻기 위해 칠 년을 더

일해야 했습니다. 이렇게 야곱은 속임을 받았지만 자신도 아버지와 에사우를

속였던 체험이 있었더지라 이해하고 참아 주고 받아 주었다고 느낍니다.

 

아무튼 야곱의 고백을 묵상해 보면 사람은 사람을 속이지만 하느님께서는 그 사람의

속임으로 인해 속임을 당한 사람이 어떤 해도 입지 않도록 보살펴 주시는 분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 그런가하고 묵상해 보니 속임을 당했을지라도 앙갚음을

하지 않은 경우에 그렇다는 것을 야곱을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야곱이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한계인 속임에 대한 깊은 이해로  라반이 자신을

속였을 때에 라반의 한계도 깊이 이해할 수 있었기에 그에 대한 앙갚음을 하지

않을 수 있었다고 느낍니다. 자신이 받은 억울함에 대한 앙갚음을 하지 않을 때에

하느님께서는 그가 받은 손해를 그냥 보지 않으시고 축복으로 되돌려 주시는

분이심에 대한 야곱의 고백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렇다면 에사우는 야곱이 자기라고 속이고 아버지의 축복을 가로챈 뒤 야곱이

떠나고 난 다음 어떤 마음으로 살았을까를 묵상해 보려고 합니다.

얼마전에 에사우도 변했다는 묵상을 나눔해 드렸었습니다.

 

사람은 억울하게 당했다고 느껴지면 너무 억울한 마음에 앙갚음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에사우도 그런 마음을 먹었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면 "야곱을 죽여 버려야지." 하고 마음 속으로 생각했었습니다.

왜냐? 그래도 아버지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는 잘 알았던 에사우였기에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에 그러한 일을 저지르면 아버지의 가슴을 아프게 해 드리고

싶지 않았기에 그랬을 것이라 느꼈습니다. 그러고보면 에사우도 막되먹은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어쨌거나 에사우도 막상 그동안 살아오면서 맏아들의 권리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불콩죽 한 그릇에 팔아넘겨 버리는 삶을 살았지만 막상 그 축복을 빼앗기고 나서야

그 축복의 소중함을 느꼈는가 아버지께 진심으로 축복을 받고 싶다고 청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악을 선으로 갚아주시는 주님의 손길을 느낍니다.

 

에사우나 야곱이나 속 깊이 보면 다 악으로 기운 삶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맏아들의 권리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살던 에사우나,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지려고 속이는 야곱이나 둘 다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모습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쨌거나 야곱은 속여서 축복을 받아냈고, 야곱으로 인해 축복을 받을

권리를 빼았기고 난 후 에사우가 축복 받기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으로 변했다는

사실로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야곱의 속임수라는 좋지 않은 꼼수임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둘 다 축복을 받게 도와 주셨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사건이후 에사우가 아버지가 좋아하는 일을 시작했음을 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에사우는 아버지가 자신이 가나안 여인들과 혼인한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것을 알고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에게 가서 그의 딸이며 느바욧의 누이인 마할랏을 아내로

맞아들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에사우가 야곱에게 축복을 빼앗기고 가난하게 살았는가? 하면 그렇지

않았습니다. 에사우도 야곱 못지 않게 부자가 되었습니다.

"에사우가 '내 아우야, 나에게도 많다. 네 것은 네가 가져라."(창세 33,9)

 

에사우가 야곱에게 축복을 빼았겨서 억울해하며 살았다면 이런 고백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네가 가진 것은 내 축복을 가로채고 얻은 것이니, 네가 지닌

것은 다 내 것이다. 다 내놔라." 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에사우는 다 야곱의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도 하느님께 충분히 받을만큼 다 받았으니, 네 것은 네가 받은 축복임을

인정해 주는 고백으로 느껴집니다.

 

야곱이 실수를 저지르고 올바른 사람으로 살아가려 애썼듯이 에사우 역시도

축복권을 빼았기고 난 후 정신이 들었고 그 후 올바른 사람으로 살아가려 애썼음이

느껴집니다. 이러한 삶의 모습이 바로 제 모습이고 우리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사람은 이렇게 자신의 실수와 허물을 깊이 이해하고 인정할 때에 이웃들이 나에에

하는 실수와 허물을 깊이 이해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으므로써 받아들일 수 있음을

깊이있게 묵상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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