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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나의 눈은 언제 반짝이는가?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3-06-20 조회수879 추천수8 반대(0) 신고



2013년 다해 연중 제11주간 금요일


<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 >


복음: 마태오 6,19-23






그리스도


렘브란트 작, (1661)


     < 나의 눈은 언제 반짝이는가? >

          [정진홍의 소프트파워, ‘이 또한 지나가리라!’]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 밴쿠버 겨울올림픽이 끝난 지 일주일이 돼가지만 김연아는 여전히 화제의 중심에 있다. 그녀와 관련된 것이라면 그 어떤 시시콜콜한 이야기일지라도 사람들 입에 회자(膾炙)된다. 이런 가운데 그녀의 좌우명 또한 화제다. 말인즉 이 또한 지나가리라!”

# 본래 이 말은 유대경전 주석서인 미드라쉬(Midrash)다윗왕의 반지에서 나왔다. 다윗왕이 어느 날 궁중의 세공인을 불러 명했다. “날 위해 아름다운 반지를 하나 만들되 거기에 내가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두어 환호할 때 교만하지 않게 하고, 내가 큰 절망에 빠져 낙심할 때 결코 좌절하지 않고 스스로에게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는 글귀를 새겨 넣으라.” 이에 세공인은 아름다운 반지를 만들었지만, 정작 거기에 새길 글귀가 떠오르지 않아 고민 끝에 지혜롭기로 소문난 솔로몬 왕자를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이때 왕자가 일러준 글귀인즉 이 또한 지나가리라!”

# 실패에 좌절하지 않고, 승리에 오만해지지 않기 위해 다윗왕이 자신의 반지에 새겨 넣고 몸에 지녔다는 이 말을 좌우명 삼아 김연아는 그 모진 훈련을 견뎌내고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 세계 정상에 올랐음을 우리는 안다. 하지만 동시에 그녀가 받은 그 모든 황홀한 찬사도 순간 덧없이 지나가리라는 것을 지혜로운 그녀는 알아야만 한다. 결국 권력도 명예도 부도 사랑도, 실패와 치욕과 가난과 증오도 모두 이 또한 지나가리라!”

# 사실 이것은 비단 김연아만의 좌우명이 아니다. 골프여제 박세리도, 메이저리거 박찬호도 이 말을 되뇌며 슬럼프를 극복하고 나아갔다. 하지만 이 말이 운동선수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삶의 신맛, 짠맛, 쓴맛, 단맛을 다 맛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몸으로 깨닫고 가슴과 뇌리에 이렇게 새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이상한 것은 그렇게 한 분야에서 대단한 성적을 거둔 이들이 또한 그것에서 오는 영광과 절망 등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려 한다는 것입니다. 이 또한 지나가는 하찮은 것을 위해 왜 그렇게 고생을 할까요? 그만큼 인생에서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만약 그만큼 중요하다면 왜 이 또한 지나가는 지푸라기 같은 것으로 여길까요? 그들은 어쩌면 이 또한 지나갈 허무한 것들이지만 그것들을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들고 즐기는 법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눈의 동공은 빛의 변화에 따라 팽창하고 수축합니다. 그런데 동공은 망막에 닿는 빛의 양을 조절하는 기능 외에도 그의 눈이 휘둥그래졌다라고 하는 것처럼 동공은 주로 감정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즉 강렬한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동공을 팽창시킵니다. 어떤 상품을 판매하는 상인들은 구매자가 상품을 구입하고 싶어 하는지를 판단하기 위해 잠재적으로 구매자의 눈동자를 보기도 합니다. 이는 고객들이 무의식적으로 동공을 팽창시켜 상품에 대한 호기심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수세기 동안 상인들이 얼마나 비싼 값을 고객에게 불러야 할지를 판단할 때, 마술가가 우리가 뽑아든 카드를 알아맞힐 때, 사기꾼이 우리가 속을 것인지 아닌지 알아내려 할 때 그 답을 눈에서 찾아왔다고 합니다. 아무튼 일반적으로는 사람들이 자기들을 즐겁게 해주는 것을 볼 때 동공이 더 커지고 불쾌하게 하는 것을 볼 때 더 작아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유럽에서는 중세 이후로 여성들이 아름답게 보이려고 동궁을 억지로 팽창시키는 벨라돈나(belladonna)’란 액을 주입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여자가 남자를 볼 때 눈이 팽창되어 있으면 남자도 여자가 자신에게 관심을 갖은 것으로 알고 그 여자에 대한 호감이 증가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눈은 몸의 등불이라고 합니다. 눈이 성하지 못하면 온몸이 어둡다는 하십니다. 그렇다면 눈은 항상 밝고 빛나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 즉 매 순간이 흥미로움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는 이 세상의 것들에 흥미를 가져야 한다는 말일까요? 이 세상의 것들은 다 지나가버리는 무상한 것들이고 오히려 우리가 집착하게 만들어 고통만 주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매일 보는 이 세상의 지푸라기들 때문에 눈이 반짝거릴 수 있을까요?

그 대답도 오늘 복음 안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보물을 하늘에 쌓으라고 하시고,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도 있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보물은 이 세상에서만 쌓을 수 있는 것입니다. 자선을 행한다든지, 멸시를 참아내서 희생으로 바친다든지, 영광을 하느님께 돌리고, 영혼을 구원하는 일을 하는 등을 통해서만 하늘에 재물을 쌓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매 순간이 영원한 재물을 쌓을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어차피 썩어 없어질 이 세상의 것들 때문에 눈이 빛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은 그것을 얻지 못하면 다시 삶의 흥미를 잃기 때문에 대부분의 순간을 무기력하고 흐리멍덩한 동태의 눈같이 지내게 됩니다.

반대로 영원한 것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지금 이 순간 지나가더라도 이 순간이 영원히 남게 됨을 알기에 매 순간에 집중하며 살아가게 되니 항상 눈에 동공이 열려있고 빛이 나며 아름다워 보이는 것입니다. 항상 눈에서 빛이 나기 위해서는 매 순간이 영원이 되어야 하고, 그런 사람들은 또한 기쁨과 절망에 심취하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현재를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 것들을 영원한 것으로 만드는 방법은 매 순간을 하느님께 봉헌하는 것 외에는 없습니다. 하느님만이 영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매 순간 하느님께 봉헌된 사람의 눈은 빛을 냅니다. 왜냐하면 매 순간이 흥미롭기 때문입니다. 매 순간이 흥미롭다면 그것이 영원한 행복의 시작이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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