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에 따른 전례] 성전 개념의 신학 작업과 성경 언어의 변화 3. 성전 개념의 신학 작업 성전이 구약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상징하는 공간이었다면, 신약에서는 하느님의 현존을 드러내는 예수님에게 집중되었으며, 바오로 사도에 의해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모든 믿는 이로 확대되고 이 믿는 이들의 집회 공동체인 ‘교회’로 발전한다. 이러한 신학 작업 과정은 참된 성전에 대한 개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구약의 성전은 하느님의 현존을 상징하는 공간이다. 하느님의 현존을 상징하는 성전은 그분께 예배드리는 거룩한 곳으로, 성경에서는 특히 예루살렘 성전을 가리킨다. 예루살렘 성전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예배 의식과 기도의 중심지였고 그들의 신앙에서 강력한 상징적 구실을 했다. 구약의 예배 체제에서 성전은 하느님께서 현존하시는 곳이며 그분과 만남의 장소로서, 인간은 희생 제사로써 하느님께 다가가며 하느님께서는 용서와 자비를 베푸시고 기도에 답하신다(탈출 25,22; 2역대 6 참조). 성전을 하느님께 예배드리는 유일한 곳으로 강조한 것은 하느님과의 계약에 대한 충실성을 바탕으로 하느님의 유일성과 이스라엘 백성의 일치를 드러내려는 이유에서였다. 이러한 성전의 성격은 예수님의 등장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새로운 성전은 공간이 아닌 예수님의 몸으로 바뀐다 성전이라는 말은 신약 성경 여러 곳에서 비유적으로 쓰인다. 먼저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신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요한 2,19) 요한 복음사가는 “그분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당신 몸을 두고 하신 말씀”(2,21)이라고 설명한다. 이는 새롭고 결정적인 성전으로서 그분의 죽음과 부활로써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신 순간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찢어졌다(마태 27,51; 마르 15,38; 루카 23,45 참조). 이로써 옛 성소는 그 신성한 성격을 잃어버려 더는 하느님 현존의 상징 기능을 수행할 수 없게 되었다. 이제 예루살렘 성전이 더는 하느님께 예배드리는 유일한 곳이 아니며 이제부터 믿는 이들은 영과 진리 안에서 그분을 예배하게 될 것이다(요한 4,21-24 참조). 예수님께서는 하늘의 성전에 들어가 하느님과 인간을 영원히 화해시키는 희생 제사를 지내셨고 그리하여 그분 스스로 하느님과 인간이 만나는 성소가 되셨다(히브 9-10장 참조). “여러분이 바로 하느님의 성전입니다”(1코린 3,17) 바오로 사도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따르는 이를 그리스도 몸의 한 지체로서 성령께서 머무시는 성전으로 해석하는 신학 작업을 한다. 교회와 그리스도교 신자 각자도 성전이다(1코린 3,9.16-17; 6,19; 2코린 6,16 참조). 예수님께서 몸소 세우셨고(마태 16,18 참조) 그분을 모퉁잇돌로 하여 세워졌으며(에페 2,20 참조), 그리스도의 몸 자체인 교회는 하느님께서 현존하시는 곳이다. 또한 믿는 이는 모두 그리스도의 한 지체로서(1코린 6,15; 12,27 참조) 성령께서 머무시는 성전이다. 인간들 사이에서 하느님께서 머무시는 곳으로서 믿는 이들 각자의 살아 있는 인격은 돌로 만든 성전을 대신한다(1코린 3,16 참조). 그리고 교회는 주님을 위한 거룩한 성전으로 성장해 간다(에페 2,21 참조). 어떻게 보면 요한 복음에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했던 예수님의 선포가 교회를 통하여 실재가 되었다고 하겠다. “여인아, 내 말을 믿어라. 너희가 이 산도 아니고 예루살렘도 아닌 곳에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4,21). 4. 성경의 언어 변화 현재의 구약 성경은 유다교의 경전인 ‘율법서와 예언서와 성문서’에서 유래한다. 히브리어로는 ‘토라’(Torah), ‘너비임’(Nebiim), ‘커투빔’(Ketubim)이라고 하고, 줄여서 ‘타낙’(TANAK)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것은 율법서인 토라로 창세기, 탈출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곧 오경을 말하기 때문이다. 오경이 현재의 모습으로 되기까지는 몇 단계의 과정을 거쳤다. 기원전 13세기 무렵에 활동한 모세와 관련된 이야기들(이집트 탈출 사건, 광야에서의 사건들, 시나이 계약 등)이 기원전 10세기 무렵(다윗, 솔로몬 시대)에 글로 기록되기 시작했고, 다양하게 문서화되다가 바빌론 유배(기원전 587-538년) 중에 집중적으로 집대성된다. 토라가 최종적으로 완성된 때는 기원전 5-4세기경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50년 정도의 오랜 유배 생활에서 귀환한 이스라엘인은 자신들의 언어인 히브리어는 구어(口語)의 지위를 상실하여 점차 제관들이나 학자들이 구사하는 언어가 되고, 오히려 팔레스티나 지방에서 히브리어와 함께 사용되던 아람어가 일상어가 된 현실을 맞이했다. 헬레니즘의 영향으로 히브리어에서 그리스어로 번역된 구약 성경 ‘칠십인역’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기원전 356-323년)이 그리스, 이집트, 페르시아, 인도 서부까지 망라한 대제국을 건설하면서 기원전 2세기 중반까지 헬레니즘 문화가 지중해 지역에 꽃을 피웠다. 팔레스티나 지역에서도 일상어는 아람어였지만, 공식 언어는 그리스어였다. 알렉산드리아 디아스포라의 유다인들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유화 정책 속에서 헬레니즘화되어 대다수가 히브리어 성경을 읽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에 위기를 느낀 알렉산드리아의 유다교 지도자들은 기원전 250년 무렵부터 히브리어를 모르는 디아스포라 유다인들을 위해 그리스어로 성경 번역 작업을 시작했다. 가장 먼저 모세 오경을 번역하고 100년(또는 150년) 동안 나머지 책들에 대해서 번역 작업을 했다. 이를 ‘칠십인역’(Septuaginta, LXX)’이라고 한다. 로마 제국의 등장으로 그리스어에서 라틴어로 번역된 신·구약 성경 ‘불가타판’ 382년 성 다마소 1세 교황(재위 366-384년)은 예로니모 성인에게 신·구약 성경을 쉬운 라틴어, 곧 평민들이 사용하는 대중 라틴어로 번역하라고 했다. 그에 따라 ‘불가타판’(Vulgata)이 405년 무렵 완성되었다. 히브리어에서 그리스어, 그리스어에서 라틴어로 번역되는 성경의 언어 변화는 전례에 사용하는 언어의 변화와 병행하여 진행되었다. * 윤종식 티모테오 - 의정부교구 신부. 주교회의 전례위원회 위원이며,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전례학 교수이다. 교황청립 성 안셀모 대학에서 전례학을 전공하였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 집전 시복 미사 때 전례 실무자로 활동했으며, 저서로 「꼭 알아야 할 새 미사통상문 안내서」가 있다. [경향잡지, 2020년 4월호, 윤종식 티모테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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