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돈을 숭배하는 예수의 형제회 [사람이 아니라 수단이 되어지다]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3-06-21 조회수389 추천수0 반대(0) 신고

나는 그리스도를 믿는 어떤 사람을 알고 있는데, 그 사람은 열네 해 전에 셋째 하늘까지 들어 올려진 일이 있습니다. 나로서는 몸째 그리되었는지 알 길이 없고 몸을 떠나 그리되었는지 알 길이 없지만, 하느님께서는 아십니다. 나는 그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 나로서는 몸째 그리되었는지 몸을 떠나 그리되었는지 알 길이 없지만 하느님께서는 아십니다.낙원까지 들어 올려진 그는 발설할 수 없는 말씀을 들었는데, 그 말씀은 어떠한 인간도 누설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2코린토 12, 2 - 4>

나로서는 몸째 그리되었는지 알 길이 없고 몸을 떠나 그리되었는지 알 길이 없지만, 하느님께서는 아십니다.  낙원까지 들어 올려진 그는 발설할 수 없는 말씀을 들었는데, 그 말씀은 어떠한 인간도 누설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  <마태오 6, 24 - 34>


돈의 힘을 섬기는 공동체가 있는 곳에는 하느님의 힘을 깨닫지 못합니다. 돈이 필요없는 것은 아니지만 돈의 힘을 숭배하고 하느님에게서 오는 사랑 곧 예수님의 사랑의 힘은 소홀히 하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결코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며 남들을 속이기 위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실재가 드러나면 돈이 공동체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돈의 힘을 섬기기 때문입니다. 필요한 것은 돈이지만 필요하지 않는 것은 예수님의 사랑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행동)하고자 하면 돈이 그분의 사랑 보다도 아까운 것입니다.남들에게서 기꺼이 거저 얻었다면 다시 기꺼이 거저 주어야 마땅하다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이 들어오는 것은 무척이나 반기지만 사랑 때문에 돈이 나가게 되는 일은 아까워 하기만 합니다.

결코 아니다고 말하겠지만, 남들에게 그 내면의 실재를 속이며 '그리스도적 고통'을 당하는 일들이 벌어집니다. 재물의 돈을 섬기고 예수님의 사랑은 섬기지 않습니다. 돈 바람이 난 이상은 돈의 맛을 즐기게 된 것입니다. '가난의 영성'은 잊혀져서 옛날의 일입니다. 

가난의 영성이 빛을 비추일 때는 예수님의 사랑도 빛이 나타났지만 '돈의 영성'이 공동체를 지배하고 나자 예수님의 사랑은 점점 어두워져 갔던 것입니다. 돈의 영성은 돈 바람이 날 때에, 재물이 쌓이는 신바람이 나서 '돈의 영성'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가난의 영성은 고생하고 피곤하며 많은 인내를 요구합니다. 하지만 여기에 그 대신해서 자리잡는 돈의 영성은 마치 가난의 영성이  완성되어지는 것처럼 여기며 고생보다는 편안을 추구하며 고난을 피하면서 타락해 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거짓된 형제들은(제자들은) 가난의 영성보다 돈의 영성을 얼마나 더 잘 만들어 낼 수가 있을까요. 마치 돈의 힘으로 모든 일들을 능히 잘 할 수 있다고 착각에 빠집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겪으신 <세상 영광이라는 광야의 유혹이 공동체에서는 바로 돈의 유혹>이 되었습니다. 

공동체는 광야에서 유혹을 받은게 아니라, 공동체는 돈에서 유혹을 받아, 예수님의 사랑을 저버렸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사랑을 거스리는' 공동체의 규정들과 방침들을 정하게 되었고 그것들은 하나같이 돈의 힘을 숭배하는 것들이 되었습니다.

돈의 힘을 숭배하는 것이 돈의 영성입니다. 돈의 영성은 가난의 영성을 짓누르고 예수님의 사랑을 섬기는 일은 하찮은 것으로 여기게 만들었습니다. 돈의 힘에 빠지자 고생보다는 그리고 고난보다는 편안함을 추구함으로써 삯꾼이 지배하는 체제를 규정화하고 방침화해 갑니다.

삯꾼들에게 버려진 아기들과 노약자들을 맡기며 대신에 예수님의 형제들은 편안함을 추구하면서 육적인 감흥에만 맛들어지고 버려진 이들의 고통에 결합하는 그리스도적 고난에는 경솔하게 되었다 할 것입니다. 돈의 힘에서 삯꾼의 힘을, 더 많이 애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에서 그리스도적 고난을 버려진 이들에게서 함께 하지 못하는 것은,  돈의 신바람이 나고나서 부터이다고 하겠습니다. 돈 바람이 생기는 일들은 할 수 있지만 예수님의 사랑이 신바람 나는 일들은 찾아서 할 수 없습니다. 

돈의 힘은 삯꾼의 지배 체제(기업체)로 만들어 내고 그리하여 삯꾼에 의해, 악에 의한 고통과 죄에 의한 죽음이 끊임없이 일어나더라도 무감각해 집니다. 버려진 이들, 특히 장애아기와 장애 노약자들은 거친(악한) 삯꾼들에게 고통과 죽음을 당합니다.

삯꾼들이 없으면, 공동체의 제자들(형제들)은 편안해 지지 못합니다. 하느님께 봉헌한 이들은 마땅히 육체적으로 고생하여야만 합니다. 하지만 거친 삯꾼이라해도 고단한 일들을 삯꾼들이 대신 해 줍니다. 삯꾼이 지배하는 체제를 유지시키는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버려진 이들은 사람이 아니라 돈줄이 됩니다. 삯꾼들에게는 버려진 이들 때문에 직업을 얻었고 국가로부터 봉급을 어김없이 꼬박꼬박 수령하며, 고통없이 살아갈 수 있는 자신들의 행복을 설계합니다. 그리고 공동체는 버려진 이들 때문에 돈줄이 생깁니다.

그러나 버려진 이들의 악에 의한 고통과 죄에 의한 죽음에 대하여서는 경홀히 여깁니다. 버려진 이들의 부모가 없기 때문입니다. 제 부모가 있는 아기들도 학대에 시달린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방송을 통해 잘 알고 있습니다.하물며 거친 삯꾼들에게 맡겨진 부모없는 버려진 아기들과 노인들은 어찌 될까요.

돈의 힘과 삯꾼의 힘이 지배하는 공동체에서는 남들에게 드러나지 않는 악의 고통과 죄의 죽음이 끊임없이 삯꾼들에 의해서 일어나며 이를 방관한 자들이 바로 예수님의 거짓된 형제들이다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부모가 되고 가족이 되어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재물을 섬기고 하느님을 섬기지 않는 공동체는 이같은 죄악스러운 배경을 안고 있습니다 이런 공동체가 세계에 퍼져 나가면 인간이 불행해 집니다. 버려진 이들의 평화와 행복 추구하지 않는 공동체는 하느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단지 돈을 섬길 뿐입니다. 

버려진 이들은 그들에게서 무엇인가. 거친 (학대하는) 삯꾼들과 예수님의 거짓된 형제들자신들의 행복을 위한 단지 수단일 뿐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따라, 그리스도적 고통으로 버려진 이들을 돌보지 못합니다. 돈과 삯꾼을 숭배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것입니다. 그들은 인간을 보호하고 사람을 구원하는 하느님의 나라를 믿지 않습니다. 재물 돈의 나라를 믿고, 주님의 은총으로 (죽과 이불과 기저귀 등으로) 장애 아기들과 장애 노약자들을 학대하는 거친 삯꾼의 나라를 믿습니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