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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믿음의 힘 - 2013.6.22 연중 제11주간 토요일,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3-06-22 조회수389 추천수5 반대(0) 신고

2013.6.22 연중 제11주간 토요일 2코린12,1-10 마태6,24-34

 

 

 


믿음의 힘

 

 

 


믿음의 힘이 제일입니다.

믿음의 힘은 바로 하느님의 힘입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라는 제 25주년 수도생활을 요약하는 고백 같은 시를
읽으며 뒤에 꼭 들어가야 할 말마디가 빠진 것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믿음으로’입니다.
‘하루하루 믿음으로 살았습니다.’해야 비로소 완전한 고백입니다.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믿음은 은총이자 깨달음이요 빛입니다.

우리가 매일 바치는 시편 모두가 믿음의 고백이자 표현입니다.
모두가 깨달음의 고백들입니다.
이 시편의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될 때 믿음의 성장이요 성숙입니다.

 

“아, 하느님의 뜻이었구나.”

 

깨달을 때 어두웠던 마음은 밝아지고 자유로워집니다.
바로 이런 깨달음의 믿음이 기적입니다.
복잡했던 삶도 단순해집니다.

하여 주님도 하느님과 재물, 두 주인을 섬기지 말고
하느님 한 주인만을 섬기라 하십니다.

얼마 전 수도원 정착기의 삶에 대한 글을 쓰며 정정했던 기억도 생생합니다.

 

‘1992년 그해 요셉수도원에 백 요셉수사가 입회하였다.’
써 놓고도 웬 지 개운치 않았습니다.

전광석화 같은 깨달음에 이어 다음과 같이 바꿔 써놓고 만족했습니다.

 

‘1992년 하느님은 요셉수도원에 백 요셉 수사를 보내주셨다.’

 

바로 이게 믿음의 고백입니다.
앞 문장의 주어는 백 요셉수사이지만 뒤 문장의 주어는 하느님입니다.

하느님이 주어가 된 삶, 바로 이게 믿음의 삶입니다.

사람이, 내가 주어가 될 때 늘어나는 무수한 걱정의 환상들이지만
하느님이 주어가 될 때 걱정의 환상들은 햇빛에 안개 사라지듯 사라져
삶은 단순해집니다.

 

장상이 되어 많은 형제들을 거느릴 때
그 무거운 짐과 걱정들 내가 주어가 되어 감당하다간
얼마 못가 압사하여 쓰러질 것입니다.

하느님을 주어로 모시는 믿음 있을 때
하느님 친히 걱정의 짐을 덜어주시어 비로소 짐도 가벼워져
그 책임을 능히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이 뽑으셨다.’

 

얼마 전 신임 아빠스의 선출에 대한 믿음의 고백입니다.
‘수도형제들이 뽑았다’는 말과 천지 차이입니다.
수도형제들을 통하여 하느님이 뽑으신 것입니다.

우리 삶의 주어가 하느님이심을 깨달아 아는 것이 그대로 믿음이요 겸손입니다.

오늘 복음도 온통 예수님의 깨달음으로 가득합니다.

믿음이 없어 하느님의 은총을 깨닫지 못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보면 모두가 하느님의 선물이요 놀라움입니다.
여기서 저절로 샘솟는 찬미와 감사입니다.

 

“그러나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것들을 먹여 주신다.
너희는 그것들보다 더 귀하지 않느냐?”

 

“오늘 서 있다가도 내일 내일이면 아궁이에 던져질 들풀까지
하느님께서 이처럼 입히시거든, 너희야 훨씬 더 잘 입히시지 않겠느냐?”

 

예수님의 놀라운 믿음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보면 모두가 놀랍고 새로운 하느님의 선물들입니다.

예수님 믿음의 눈은 온통 하느님 은총 속에 있는 세상을 봅니다.
모든 문제는 믿음 부족에서 파생됩니다.
믿음 부족에서 파생되는 의심이요 걱정입니다.

형제들 역시 하느님이 보내주셨다는 믿음 있어 저절로 존중과 신뢰의 마음입니다. 다음 주님의 말씀은 그대로 오늘의 우리를 향한 말씀입니다.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마라.
이런 것들은 모두 다른 민족들이 애써 찾는 것이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이게 바로 믿음입니다.
사필귀정입니다.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을 찾을 때
사람도, 돈도, 필요한 모든 것들도 곁들여 받습니다.

믿음이 없어 증폭되는 걱정이요 불안이요 두려움입니다.
하느님 아닌 내가 주어가 되어 살려하니 끊임없는 긴장이요 스트레스입니다.
바오로가 믿음의 모범입니다.

그대로 믿음의 사도 바오로의 깨달음의 고백입니다.

 

“너는 내 은총을 넉넉히 받았다. 나의 힘은 약한 데에서 완전히 드러난다.”

 

우리 모두를 향한 주님의 말씀 같습니다.
믿음의 눈만 열리면 우리 역시 주님의 은총을 넉넉히 받았음을 깨닫습니다.
믿음 있을 때 주님은 우리의 약함을 통해서 놀라운 일을 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리스도의 힘이 나에게 머무를 수 있도록
더없이 기쁘게 나의 약점을 자랑하렵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라면
약함도 모욕도 재난도 박해도 역경도 달갑게 여깁니다.

내가 약할 때 오히려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힘은 바로 하느님의 힘이자 믿음의 힘입니다.
약함이 강함입니다.
우리의 약함을 믿음으로 주님께 내어 놓을 때
우리의 약함은 주님의 강한 힘으로 바뀝니다.

그러니 이런 믿음으로 사는 약한 이들이 실상 강한 자들입니다.
이런 믿음의 힘을 당해낼 자,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 모두에게 좋은 믿음을 선사하십니다.

 

‘주님을 경외하여라.
…그분을 경외하는 이에게는 아쉬움이 없으리라.
부자들도 궁색해져 굶주리게 되지만, 주님을 찾는 이에게는 좋은 것뿐이리라.’
(시편34,10-11참조),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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