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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예수님의 라파엘 / 반영억라파엘 감곡매괴 성모성당
작성자김세영 쪽지 캡슐 작성일2013-06-24 조회수742 추천수10 반대(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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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2주일 





      
<예수님은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어야 한다.>
+ 루카  9,18-24



 

예수님의 라파엘

 

찬미예수님, 사랑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변함이 없습니다. 언제나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 안에서 기쁨과 평화를 누릴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우리에 대한 사랑 때문에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양했습니다. 제자들은“군중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하는 예수님의 질문에 ‘어떤 사람은 세례자 요한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엘리야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옛 예언자 중의 한사람이라고 합니다.’하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다시 물으셨습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남의 얘기하지 말고 이제 네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말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동거동락하며 특별교육을 받은 사람답게 베드로가 나서서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래아에서 여러 활동을 통해 하느님나라에 관해 가르치셨는데 제자들은 그 가르침을 받은 것에 상응하는 답을 해야 했습니다. ‘하느님의 기름부음 받으신 이’라는 이 말은 이사야의 예언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사야서에는“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 하느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마음이 부서진 이들을 싸매어 주며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갇힌 이들에게 석방을 선포하게 하셨다”(이사야61,1).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예언의 말씀이 예수님께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니 베드로의 고백은 완벽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지 않는다면 그 고백은 힘을 잃고 말 것입니다. 낚싯바늘만 있고 미끼가 없는 낚싯대, 아무리 낚싯바늘이 좋아도 고기가 물지 않습니다. 말만 있고 행동이 없으면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엄중하게 분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한다면 그에 걸 맞는 삶으로 응답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기름부음 받은 이’앞에서 떳떳하고 당당한 모습으로 서있어야 합니다. 나의 행동 하나하나가 나의 예수님에 대한 생각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너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의 질문은 결국 ‘나는 당신의 무엇입니다.’라는 고백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마더 데레사 수녀님은 “나는 주님의 손에 들린 몽당연필입니다” 하고 고백했습니다. 수녀님은 연필을 잡은 주님 안에서 기뻐했습니다. 과연 우리는 주님의 무엇입니까? 나에게 있어서 주님은 도대체 어떤 존재입니까? 다른 사람의 신앙을 고백하지 말고 내 신앙을 고백해야 하겠습니다.

 

1515년-1582년을 사신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는 19세에 가르멜 수녀원에 들어가셨습니다. 성녀는 예수님께서 매질당하는 장면의 상본을 보고 자신의 회개의 삶을 시작합니다. 아우구스띠노의 고백록을 읽고 감명을 받아 삶의 변화를 이루게 된 동기들을 자서전에 기록하고 있고, 여러 차례 삶의 회개를 이룬 사실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말합니다. “그 때가지 나의 생활은 나 자신의 것이었으나 그 후부터 나의 생활은 내 안에 계시는 예수님의 생활이었다.” ‘자기 안의 예수님의 생활’ 다시 말하면, 바오로의 고백대로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의 삶이 데레사 성녀의 삶의 모두였습니다.

 

아빌라에 가서 성녀의 친필과 유품이 전시된 기념관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만남의 층계가 있습니다. 어느날 성녀는 수녀원 층계에서 꼬마의 질문을 받게 됩니다.‘너는 누구니?’이때 환시로 본 소년에게 '난 예수님의 데레사야‘라고 대답합니다. 그냥 ’데레사‘라고 하지 않고 “예수님의 데레사”라고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 소년에게“ 넌 누구니?'하고 묻습니다. 그때 그 꼬마가 '난 데레사의 예수야'라고 대답했습니다. 성녀는 그 꼬마가 누구인지 알았습니다. 마음을 예수님으로 채우고 살았기에 당연히 ”예수님의 데레사“라고 말할 수 있었고 예수님께서도 데레사의 예수로 인정해 주셨습니다.

 

데레사 성녀는 1582년 67세의 일기로 세상을 떴는데 '주님, 저는 성교회의 딸입니다...딸들이여, 회칙과 회헌을 잘 지킨다면 다른 기적이 없어도 성인품에 오를 수 있습니다.이 못된 수녀가 보여 준 나쁜 본보기를 닮지 말아 주십시오. 나를 용서 해 주십시오...'하고 임종하셨습니다.

 

우리의 삶도 마지막까지 주님 안에서 그렇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저는 ‘예수님의 라파엘!’입니다. 라고 고백하기가 부끄럽습니다. 삶이 뒷받침 되지 않으니 말입니다. 그러면서도 뻔뻔스럽게 저는‘나는 라파엘의 예수야!’ 라는 말씀을 들을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우리가 당당하게 예수님의 ‘아무개’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세례를 받은 여러분은 다 그리스도를 입었습니다.”하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입었으니 우리의 삶은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명을 듣고 실천하며 또하나의 그리스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된다는 것이 불가능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세상의 흐름에 빌붙어 사는 것이 오히려 쉬운 삶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루카9,23).‘자기를 버린다’는 말은 ‘십자가를 진다’는 말의 또다른 표현입니다. 십자가를 지라는 말은 힘들게 고생하면서 따라오라는 말씀이 아니라 순간마다 자신의 뜻을 비우고 따라오라는 말씀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이유는 아버지 뜻 앞에서 자신의 뜻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믿는다고 하면서도 자주 신앙이 흔들리고 세속적 현실과 타협하느라 가끔은 양심의 소리를 저버리기도 합니다. 조금만 어려워도 포기하고 불평불만을 입에 달고 삽니다. 이런 비겁한 우리에게 다시 말씀하십니다.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들과 수석사제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나야 한다.”시련과 고통의 십자가를 감당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불안을 느낄 적엔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나를 위한 사랑 때문에 아직도 거기 매달려 계십니다. 주님께서는 눈물로 가득한 사랑 어린 눈길로 나를 보고 계십니다. 우리가 주님 곁에 가서 머리를 돌려 주님을 바라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랍니다.' 우리 성모님을 보십시오.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하늘을 보고 계십니다.

 

데레사 성녀는 말합니다. '사랑이란 상상의 산물이 아니고 행동이다' 주님을 사랑한다면 그분의 말씀을 실천하십시오. 그분의 가장 큰 계명, 사랑을 하십시오. 주님께서 사랑한 그 사랑으로 사랑하십시오.

 

우리가 믿는 주님은 누구이십니까? “ 그는 우리가 앓을 병을 앓아 주었으며 우리가 받을 고통을 겪어 주었구나”(이사야53,4). “그는 사람들에게 멸시를 당하고 퇴박을 맞았다. 그는 고통을 겪고 병고를 아는 사람, 사람들이 얼굴을 가리우고 피해갈 만큼 멸시만 당하였으므로 우리도 덩달아 그를 업신여겼다”(이사야 53,3). “그는 우리의 반역죄를 쓰고 사형을 당하였다”(이사 53,8). 그러나 “그 극심하던 고통이 말끔히 가시고 떠오르는 빛을 보리라. 나의 종은 많은 사람의 죄악을 스스로 짊어짐으로써 그들이 떳떳한 시민으로 살게 될 줄을 알고 마음 흐뭇해하리라. 나는 그로 하여금 민중을 자기 백성으로 삼고 대중을 전리품처럼 차지하게 하리라”(이사53,11-12)하는 이사야 예언의 말씀이 주님에게서 이루어졌습니다. 우리의 주님, 속죄의 제물이 되시고 부활의 기쁨으로 다시 오신 주님, 그분을 우리의 주님으로 고백하는 기쁨이 더욱 커지시기를 소망합니다.

 

일상 안에서 주님을 첫 자리에 모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 할 일 다 하고 짬이 나서야 그분을 생각하는 처지가 아니라, 그분께서 나를 도구삼아 일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먼저 감사하고, 다른 무엇에 앞서 주님의 거처를 마련했으면 좋겠습니다. “보라, 이제 하느님의 거처는 사람들 가운데에 있다. 하느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거처하시고 그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묵시21,3) 주님께서는 나의 삶의 자리에서 나를 찾고 계십니다. 내가 그분을 찾기 훨씬 전부터....사랑합니다.

  


                                                      

                                                   

                                              




 불쾌지수가 높아지는 계절입니다. 서로를 위한 배려가 필요합니다.
남 앞에서 열 번 웃는 것보다 한 번의 화를 내지 않는 것이 더 낫습니다.
한 번의 화가 열 번 웃는 모습을 사라지게 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손이 못생겼다고 고민 하는 아가씨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의사를 찾아가서 말했습니다.
선생님, 제 손이 너무 보기 싫은 생각이 듭니다. 무슨 좋은 방법이 없을까요?
의사가 즉각 대답하였습니다. 2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당신의 눈을 떼어내든지, 아니면 손을 떼어내든지......

하느님께서 주신 모든 것은 다 아름답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것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잘 간수하고 사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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