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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빠른 차는 넓은 길을 원한다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3-06-24 조회수827 추천수10 반대(0) 신고



2013년 다해 연중 제12주간 화요일


<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


복음: 마태오 7,6.12-14







 아기 예수를 경배하는 성모


 벨리니(Bellni, Giovanni) 작, (1475),  피렌체 콘티니 보나코씨 콜렉션


     < 빠른 차는 넓은 길을 원한다 >

     안철수 의원이 KBS '교양강좌'에서 했던 강의 중 우리나라 영재교육에 대한 문제점에 대해 말한 적이 있습니다. 영재는 말 그대로 어릴 적부터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는 천재적인 아이들을 말합니다.

미국에서 최고경영자 과정을 이수할 때 법대 교수에게 들은 것인데, 경영학 하는 사람들에게 법에 대해 가르치면 대부분 어려워하는데 극소수의 사람들은 법대 학생들보다 더 법에 대한 이해도가 빨라 최고 점수를 준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궁금해서 10년 뒤에 그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찾아봤는데 대부분 감옥에 들어가 있었다고 합니다. 똑똑하기만 하다면 이런 것입니다. 또 몇 년 전 금융위기 때 전 세계적인 어려움을 주게 만들었던 핵심 멤버들이 다 천재적인 재능을 가졌던 사람들이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영재교육은 속도중심, 문제해결 중심, 결과중심인데 특히, 속도위주의 교육과 관련, 루이스 터만 연구에서는 20세기 초반 캘리포니아주의 학생 25만 명으로 IQ 140 이상인 영재학생 1,470명을 선발해 이들의 평생을 추적하는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그러나 이들 중에서 개인적으로 성공한 사람은 있었으나 전 국가적으로 공헌을 한 사람은 한명도 나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오히려 이 연구 대상에서 탈락된 사람들 중 노벨상 수상자가 2명이나 나오는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저도 우리나라에서 알아주는 천재라고 불렸던 사람이 지금은 어디에도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우리나라 아이들은 정말 너무 어렸을 때부터 남들보다 영어 단어 하나 더 외우고 수학을 조금 더 빨리 풀어야하는 조급함만 배우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런 속도위주의 교육 시스템은 학생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대인관계와 사회적 관계를 끊어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저도 이런 교육 하에서 자라서 그런지 남들보다 빨라야 하는 조급증을 지니고 살아온 것 같습니다.

 

좁은 문이란 어떤 그림을 보았습니다. 큰 길에 판자로 화려한 도시가 그려져 있고 밝은 불도 밝혀져 있습니다. 그 큰 길로는 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이야기하며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허름한 판자로 된 작은 문이 나 있는 뒤로는 아주 좁고 굽은 길이 나 있는데 그 길은 언덕을 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멀리 보이는 언덕 위에는 희미하게 십자가가 서 있습니다.

내가 저기 있었다면 어느 길을 택했을까?’ 생각을 하다가 아무래도 큰 길을 택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좀 바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느린 것을 참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차를 몰 때도 저는 사람을 태우면 과속을 좀 자제하지만 저 혼자 다닐 때는 속도를 내는 편입니다. 양쪽 차선을 막고 천천히 가거나, 신호가 바뀌었는데도 앞에서 어물대는 차가 있으면 참지 못하고 크락션을 눌러 재촉을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길을 선택할 때도 좁은 1차로보다는 좀 돌아가더라도 고속도로와 같은 넓은 길을 택합니다. 더 빠르게 달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우리들도 이렇게 속도를 재촉하는 세상에 살다보니 하늘나라에 이르는 길도 좁고 굽어서 오래 걸리는 길보다는 넓은 고속도로를 선택하고 있지는 모르겠습니다. 빨리 간다는 것은 정신없이 간다는 뜻인데 아무래도 하느님나라는 좁은 문으로 나 있는 좁은 길을 선택하는 사람들의 몫인 것 같습니다. 빠른 차는 넓은 길을 택합니다. 그러나 하늘나라는 좁고 느린 길을 택하는 사람들의 것인 것입니다.

고해성사를 들어보면, 냉담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빠서 쉬게 되었었다고 말합니다. 그렀습니다. 세상은 바쁘게 만들고, 바쁘지 않은 사람들만이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어제와 오늘, 한 시간씩 운동을 했습니다. 그동안 한 시간 운동을 할 시간도 없이 지내왔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루 한 시간도 운동을 할 수 없도록 바쁘게 살아온 것이 어리석게 느껴졌습니다. 하느님은 시간을 합당히 사용할 수 있는 사람에게 시간을 허락하시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진주를 돼지에게 주시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시간은 사실 진주보다도 귀합니다.

시간을 귀중히 여겨야 더 많은 시간을 주십니다. 저는 바빠지면 성체조배 시간을 늘립니다. 그러면 시간이 더 없어져야 당연한데 실은 더 여유로워집니다. 그 시간을 봉헌한다는 것은 그 가치를 아는 것이기에 더 많은 시간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이치는 모든 것에 다 해당된다고 생각합니다. 시간과 재능, 재물 등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을 봉헌하고 있지 못하다면 그 가치를 모르는 것이고, 가치를 모르는 사람이 돼지와 개와 같은 것입니다. 봉헌은 나의 가장 귀중한 것을 바치는 것이고, 그것을 보고 하느님은 그 가치를 아는 이에게 그 가치 있는 것을 더 주시는 분이신 것입니다. 그분은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않으시고, 진주를 돼지들 앞에 던지지 않으십니다. 나에게 무언가 부족하다면 내가 그것을 귀중하게 여기지 않기 때문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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