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연중 제12주간 수요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13-06-26 조회수373 추천수5 반대(0)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나무와 열매’를 말씀하십니다. 좋은 나무에서는 좋은 열매가 열리고, 나쁜 나무에서는 나쁜 열매가 열린다고 하십니다. 좋았던 나무도 거름을 주지 않고, 관리를 소홀히 하면 나쁜 열매를 맺게 됩니다. 나빴던 나무도 정성을 다하고, 거름도 주고, 잡초를 뽑아주면 좋은 열매를 맺게 됩니다. 저는 생각합니다. ‘밀과 가라지’는 밀은 계속 밀로 자라는 것이 아닙니다. 가라지는 늘 가라지가 아닙니다. 밀처럼 자란 사람이 가라지와 같이 변할 수도 있고, 가라지와 같이 자란 사람이 밀처럼 변할 수도 있습니다. 한국교회는 가라지와 같았습니다. 나쁜 나무와 같았습니다. 박해가 있었습니다. 순교가 있었습니다. 배교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국교회는 밀처럼 성장하였고, 좋은 열매를 맺었습니다.

한국 천주교회는 외형적으로 보면 분명 커다란 성장을 하였습니다. 아시아뿐만 아니라, 세계의 다른 가톨릭 국가에서도 부러워할 정도로 뜨거운 열정과 발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784년도에 시작된 한국 가톨릭교회는 100여년의 박해를 거치면서 시련과 고통을 받았습니다. 종교의 자유가 주어진 이후에 서서히 발전한 한국교회는 1970년도에 100만 명 신자가되었습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계서 한국을 방문하신 1980년도에는 200만 명으로 증가했습니다. 요란하지 않지만 가톨릭 신자들은 충실하게 복음을 전하였고, 90년도에는 300만 명 신자가 되었습니다. 2000년도에는 400만 드디어 500만 명의 신자로 증가하였습니다. 성당의 숫자, 사제, 수도자의 수도 크게 증가하였습니다.

그러나 내면을 바라보면 한국가톨릭 교회는 몇 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는 냉담자의 증가입니다. 1970년도에만 해도 주일미사 참례는 전 신자의 70%가 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반대가 되었습니다. 주일미사 참례는 전 신자의 25%가 하고 있습니다. 30%는 성당에 나오다가, 쉬다가 하고 있으며, 30%는 세례는 받았지만 성당에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냉담자의 증가는 물고기를 그물에 넣었지만 그물이 터져서 도로 나가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물을 고치지 않는 한 냉담자는 계속 증가할 것입니다.

둘째는 신자들이 왜 성당에 다니는지, 왜 신앙생활을 하는지 잘 모른다는 점입니다. 가톨릭 신자, 개신교 신자, 불교 신자에게 질문을 하였다고 합니다. ‘왜 신앙생활을 합니까?’ 가톨릭교회 신자들은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서라고 응답을 많이 하였다고 합니다. 개신교 신자들은 ‘구원을 받아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라고 응답을 많이 하였다고 합니다. 불교 신자들은 어떻게 응답을 했는지 모르지만 불교와 가톨릭교회는 신앙의 체계가 많이 다르기 때문에 굳이 비교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가톨릭교회의 신자들은 신앙을 가지면서 구원에 대한 확신이 별로 없다는 뜻입니다. 신앙을 그저 지금 이곳에서 마음의 평화를 얻는 정도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다른 곳에서 마음의 평화를 얻으면 쉽게 신앙을 잊어버리기도 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지속적인 교육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6개월 정도 간단하게 교리를 들으면 세례를 받습니다. 세례 후에는 구역이나 반에서 관심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어야 하는데, 대부분의 새 영세자들은 스스로 알아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대부모가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면 그나마 도움이 되지만 때로는 대부모님과의 껄끄러운 관계 때문에 신앙생활을 멀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단체 활동이라도 하나 하면 모를까, 그렇지 않으면 곧 냉담자의 대열에 합류하게 됩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계서는 ‘현대 세계의 복음 선교’라는 회칙에서 복음화를 이야기 하셨습니다. 복음화는 크게 3가지 차원입니다. 첫째는 신앙을 갖지 않은 사람들에게 신앙을 전하는 선교입니다. 두 번째는 세례는 받았지만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다시 전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에게 복음의 의미를 알려주는 재복음화입니다. 한국 가톨릭교회는 ‘선교와 재복음화’가 절실하게 필요한 상황입니다.

먼저 복음화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라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알 수 있는데, 그리스도는 무엇입니까? 그리스도는 성별된 사람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보호되어야 한다는 뜻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 사용되는 그리스도는 ‘구원자, 구세주’라는 의미입니다. 성별되고 보호되었던 분께서 우리를 성별하고 보호하셔서 구원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구원이란 무엇일까요? 무엇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할까요?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죄, 죽음, 악’으로부터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화입니다. 우리를 죄, 죽음, 악으로부터 구원해주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바로 복음화입니다.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예수님을 알아야 합니다. 차를 운전하기 위해서는 먼저 운전을 배워야 하듯이,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우리는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잘 알기 위해서는 말씀을 충실하게 읽고,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을 알았으면 이제 예수님을 믿고 신뢰해야 합니다. 우리가 물을 마시면 시원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왜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 그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겨울이 가면 봄이 온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것 역시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알면, 예수님을 믿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이제 그분의 삶을 증거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물을 마시면 시원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물을 마시지 않으면 나의 갈증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믿고 따르면 구원된다는 것을 알지만, 그분의 가르침과 삶을 증거하고 실천하지 않으면 우리는 구원의 기쁨을 느낄 수 없습니다.

우리가 먼저 재복음화 되고, 주님을 제대로 알고, 믿고, 그분의 삶을 증거하고 실천한다면 한국 가톨릭교회는 외적인 성장뿐만 아니라 내적으로도 견실한 교회가 될 것입니다. 복음화를 통해서 우리는 내 신앙의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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