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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3-06-28 조회수824 추천수8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3년 6월 28일 성 이레네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Lord, if you wish, you can make me clean.”
(Mt.8,2)


제1독서 창세 17,1.9-10.15-22
복음 마태 8,1-4

언젠가 양말을 신으려고 하는데 짝이 맞지 않는 양말이 있더군요. 하나는 운동할 때 신는 스포츠 양말이었고 다른 하나는 양복에 맞춰 신는 신사복 양말로 도저히 같이 신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마도 둘 다 검은색이라 잘못 짝이 맞춰진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양말 중에서 짝이 맞지 않는 것이 분명히 있지 않겠습니까? 문제는 짝이 맞지 않는 양말은 이것만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제게 들어오는 세탁물에는 짝이 맞지 않는 양말이 없었습니다. 한 달쯤 지나자 저는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어차피 신지 못하는 양말이니까 과감하게 쓰레기통에 버렸지요.

그런데 쓰레기통에 버리고 난 며칠 뒤에 다시 짝이 맞지 않는 양말이 나타난 것입니다. 이번 역시 스포츠 양말과 신사복 양말이 짝을 이룬 도저히 함께 신을 수 없는 양말이었지요. 어떻게 된 것일까요? 버린 양말이 발이 달려서 제 옷장 안으로 들어온 것일까요? 물론 아니지요. 기다렸던 짝이 잘못 맞춰진 양말이 이제야 들어온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양말들에 맞는 짝을 버렸으니 어떻게 합니까? 이번에 들어온 양말 역시 버릴 수밖에 없었지요.

조금만 더 기다렸다면 아까운 양말을 버리지 않았을 텐데 너무 섣부른 판단을 했음에 후회를 하게 됩니다. 사실 빠른 판단이 좋을 경우도 있지만, 그 빠른 판단이 후회를 가져올 때도 많았음을 깨닫습니다. 좀 더 심사숙고하고, 좀 더 이해하면서 기다린다면 그 만큼 후회의 경우를 줄일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이렇게 기다리는 마음은 믿음을 통해서 가능합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지요. 만약 짝이 맞지 않는 양말이 분명히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면 버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믿음을 버렸기 때문에 기다리지 못했고, 후회를 남기게 된 것이지요.

어떤 나병 환자가 예수님 앞에 나아가 엎드려 말합니다.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이제까지 그가 겪었을 고통에 대해 생각해보십시오. 나병은 지금도 정말로 무서운 병이지요. 그렇다면 그 당시에는 어떠했을까요? 사람들은 하느님께 큰 죄를 지었기 때문에 얻은 병이라고 생각했기에 사람 취급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자기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고, 사람들이 살지 않는 곳에 따로 모여 살아야만 했었지요. 나병이라는 병의 무게도 대단했겠지만, 가족과 공동체를 떠나야한다는 외로움 역시 견디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나병 환자는 포기하지 않고 예수님께 대한 굳은 믿음을 보이지요. 또한 예수님께 이런 병을 얻은 것에 대한 불평불만을 던질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런 말도 없습니다. 이러한 믿음이 자신이 원하던 나병의 치유를 얻도록 한 것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습니다. 또 불평불만을 터뜨리지도 않습니다. 주님께서 원하시기만 한다면 다 가능하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주님께 철저히 의탁하는 굳은 믿음이 필요한 우리가 아닐까요?

 
쾌락이란 것은 우리들이 가장 즐거워하는 그 순간에 이미 사라지는 것이다.


어느 성당 제의방에서 본 복사차례표. 다 보고 있답니다. ㅋㅋ



내 믿음과 사랑을 따져 보세요.

주님을 굳게 믿고 그 사랑이 깊어지면 어떻게 될까요?

첫 번째, 주님을 자주 만나고 싶어 합니다. 사랑하는 젊은 남녀를 보면 헤어졌는데도 또 만나고 싶다고 하지요.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을 굳게 믿고 사랑하면 자주 만나고 싶어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미사 봉헌하는 것을 너무나도 기뻐하게 되지요. 성당의 제일 앞자리를 좋아하며, 또 빨리 성당에 와서 이 자리에 앉으려고 노력합니다.

두 번째, 주님과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합니다. 앞서 이야기한 애인이 헤어지고 난 뒤에 어떠할 것 같습니까? 각자의 집이 있으니 헤어지기는 했지만, 얼마 되지 않아서 전화통을 붙잡고 계속해서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처럼 주님을 믿고 사랑하는 사람 역시 시간이 날 때마다 기도하려고 합니다. 성체조배실을 사랑하며, 성체 안에 계신 예수님과 조용히 대화를 나눕니다.

세 번째, 주님을 자랑하고 싶어 합니다. 애인이 생긴 젊은 남녀를 보면 대체적으로 자기 애인을 아는 사람들에게 자랑하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사랑하니까 그런 것이지요. 마찬가지로 주님을 굳게 믿고 사랑하면 당연히 세상 사람들에게 자랑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선교하는 것입니다.

네 번째, 주님께 드리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모든 것을 다 주어도 아깝지 않지요. 마찬가지로 주님을 사랑한다면 봉헌하는 것이 과연 아까울까요? 자신의 시간, 재능, 물질 등등을 기쁘게 봉헌하게 됩니다.

내가 과연 주님을 굳게 믿고 있으며 또 주님을 사랑하고 있을까요? 이 네 가지를 잘 따져보세요. 주님께 대한 믿음과 나의 사랑을 따져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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