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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람의 아들 (과) 짐승의 마음 [구마의 표징과 구마의 본질]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3-06-28 조회수355 추천수0 반대(0) 신고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예수님께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하고 물으시자 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마태오 16, 13 -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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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네 사람이 결박이 풀렸을 뿐만 아니라, 다친 곳 하나 없이 불 속을 거닐고 있다. 그리고 넷째 사람의 모습은 신의 아들 같구나." <다니엘서 3, 92>..... 그 마음이 바뀌어 사람의 마음이 아니라 짐승의 마음을 지니고 일곱 해를 지내게 하여라<다니엘서 4, 13> ...... 그러니 임금님, 저의 조언이 임금님께 받아들여지기를 바랍니다. 의로운 일을 하시어 죄를 벗으시고, 가난한 이들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불의를 벗으십시오. 그리하시면 임금님의 번영이 지속될지도 모릅니다. <다니엘서 4, 24>]

<참고> 상기의 "그 마음"에서 '그'는 네부카드네자르 임금 (왕) 입니다.

그는 사람의 마음이 아니라 짐승의 마음을 일곱해 지닙니다

[내가 이렇게 밤의 환시 속에서 앞을 보고 있는데 사람의 아들 같은 이가 하늘의 구름을 타고 나타나 연로하신 분께 가자 그분 앞으로 인도되었다.그에게 통치권과 영광과 나라가 주어져 모든 민족들과 나라들, 언어가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를 섬기게 되었다. 그의 통치는 영원한 통치로서 사라지지 않고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않는다. .... 지극히 높으신 분의 거룩한 백성이 그 나라를 이어받아 영원히, 영원무궁히 차지할 것이다.’ <다니엘서 7, 9 -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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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 하고 물으셨습니다.  임금이 보았던 '사람의 모습은 신의 아들'이었습니다.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상기의 다니엘서에서 기록되어져 전해지는 '사람의아들'에 관한 구약의 하느님 말씀입니다.

성경은 누구나가 볼 수 있습니다.그러나 어떤 이들에게는 그의 눈이 열려 하느님의 말씀을 성령 안에서 깨달음을 얻게 되고 누군가는 아무리 보아도 그의 눈이 열리지 않아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그냥 스쳐 지나가고 맙니다.

모든 하느님의 계시는 성령 안에서 말씀을 말씀으로 해석해 줍니다. 반드시 하나의 해석으로 화석화된 고정적인 설명이 되지 않으며 모든 각 시대에 따라서 새롭게 다시 예언되어지기도 할 것입니다. 말씀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살아있는 것입니다. 

용례를 들면 어제의 게시글에서 [내가 하느님의 영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마태오 12, 28 참조) ] 그리고 [ “둘이 한 몸이 된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주님과 결합하는 이는 그분과 한 영이 됩니다. (1코린토 6, 16 - 17 참조) ] 이 있었습니다. 

누구나가 성경 말씀을 보겠지만 사람에 따라서 그리고 상황에 의해서 분명히 말씀 속에서 전하고자 하는 나타난 뜻이 성령 안에서 저마다에게 주어지기도 하며 아니면 누군가에게는 아무 뜻이 없는 것이기도 합니다. 혹은 눈이 닫혀 그 말씀을 볼 수도 없습니다.

상기의 '내가'는 틀림없이 예수님이십니다. 마귀(짐승의 마음)을 쫓아내는 이는 자기 자신이 아니라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안에서 그리고 공동체 안에서 이루시는 일이십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자기 혹은 공동체 밖에서 찾는게 아닌 것입니다.

자신을 내세우고 예수님을 밖에서 찾는 이들은 예수님 앞에서 교만할 뿐입니다.그러므로 자신을 내세우지 말고 자신에게서 드러나는 일들은 예수님께 돌려야 마땅합니다. 마귀를 쫓는 일은, 단지 표징일 뿐이며, 본질은 자기 안에 공동체 안에 예수님께서 사시게 해 드리는 겸손입니다.  

자기 안에 그리고 공동체 안에서 예수님을  찾아, 예수님 앞에 엎드리며 자기 안에 혹은 공동체 안에 '예수님의 사랑'이 사시도록 청하여야 하는 것입니다.그것이 표징에서 나타나는 본질입니다. 자기 안에 또는 공동체 안에 내가 (예수님이) 먼저이고, 그 다음이 하느님의 영입니다.

누구나가 말씀을 보지만 어떤 누구에게는 예수님께서 눈을 열어 주시어,  하느님께서 말씀을 깨닫게 하여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그 때는 당연히 예수님께서 직접 제자들과 함께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했습니다. 

그러자 시몬 바르요나만이 예수님으로부터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하시는 말씀을 듣습니다. 시몬은 성경 박사가 아니면서도 예수님에 대하여 잘 대답을 한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에서도 자신의 대답이 있습니다. 그 대답은 자신의 것일수도 있고 예수님을 통하여 성령 안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공동체에게 혹은 사람들에게 이야기 해 줄 수가 있습니다. 물론 시몬처럼 성경 박사가 아니임에도 불구하고, 성령 안에서 말씀을 말씀으로 인간에 대하여 (또한 공동체에 대하여) 해석해 주는 통로가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살과 피에 의해서가 아닙니다. 이 시대에서는 성령 안에서 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과 같이 당신의 말씀을 구약의 말씀으로 인용(해석) 하시기도 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않고 있습니다. 시몬은 남들이 볼 수 없었던 것들을 보았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 다가 반드시 올바르지는 않습니다. 즉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라는 것과 같이 그러합니다. 하지만 올바른 것마저 받아들이지 못하는 일도 또한 있습니다. 

헤로데처럼 자신의 탐욕(재물과 왕권)으로 예수님께서 자신 안에 그리스도의 오심을 부정해 버리는 경우입니다. 그리하여 무죄한 아기들을 살해하는 돌이킬 수 없는 죄악을 저지르게 됩니다.왕은 '그리스도의 오심'에 짐승의 마음이 아닌 사람의 마음으로 일치하여야 했던 것입니다. 

한편 제자들과 특히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수난'(고난과 고통)에 대하여서는 거부하고자 하였습니다. 공동체 안에서 '예수의 형제회'에 있는 제자들이, 그리스도의 고난과 인내와 고통에 결합하지 않고 거부하고자 한다면 제자들 모두가 질책을 받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을 보신 다음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하며 꾸짖으셨다. (마르코 8, 33 참조) 하신 것입니다. 공동체의 제자들에게 다음의 말씀을 인용할 수 있습니다.


임금님, 저의 조언이 임금님께 받아들여지기를 바랍니다. 
의로운 일을 하시어 죄를 벗으시고, 가난한 이들에게 (버려진 이들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불의를 벗으십시오.그리하시면 임금님의 번영이 지속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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