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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3-06-29 조회수566 추천수5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3년 6월 29일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But who do you say that I am?"
"You are the Christ, the Son of the living God."
(Mt.16,15)


제1독서 사도 12,1-11
제2독서 2티모 4,6-8.17-18
복음 마태 16,13-19

처음부터 자전거를 탈 때 넘어지지 않고 잘 타는 사람이 있을까요? 사실 아무리 자전거를 잘 타는 사람 역시 자전거 타다가 종종 넘어집니다. 예를 들어 노면의 상태가 눈, 비로 인해 무척 미끄러울 때, 갑작스러운 돌발 상황이 놓였을 때 등등 넘어지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넘어져도 다시 자전거 안장에 올라타면 된다는 것입니다. 두 바퀴의 자전거가 페달을 돌리지 않으면 서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충분히 실수로 넘어질 수도 있습니다. 즉, 부끄러워할 것도, 좌절할 것도 아니라는 것이지요.

저도 어렸을 때, 선배의 자전거를 빌려서 자전거 타는 것을 배우다가 엄청난 사고가 날 뻔 했지요. 그냥 굴렀거든요. 그때 뒤로는 자전거 안장에 올라타는 것이 너무나도 겁이 났고 두려웠습니다. 그리고 20년이 훨씬 지난 뒤에야 다시 그 안장에 올라탄 것입니다. 또 넘어질 것만 같아서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생각보다 쉽게 자전거를 탈 수 있었고, 그 뒤로 저에게 유일한 운동이 바로 이 자전거 타는 것이 되었지요.

우리는 실패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그런데 실패란 넘어지는 것 자체가 아니라, 포기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요? 다시 말해서 실패란 지금의 자리에 머물러서 안주하는 것이라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지금 내 모습은 어떤 모습을 따르고 있습니까? 성공한 사람의 모습 아니면 실패자의 모습? 사업에 실패했다는 것, 시험에 실패했다는 것, 시합에서 실패했다는 것. 이러한 것 자체는 실패가 아니라, 이로 인해 절망에 빠져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진정으로 실패한 사람의 모습인 것입니다.

오늘은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입니다. 교회에 있어서 큰 축을 이루었던 두 분, 만약 이 두 분이 없었다면 과연 지금의 교회를 유지할 수 있었을까 생각할 정도로 커다란 역할을 하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이런 분들에게 실패라고 생각될 수 있는 좌절의 순간이 없었을까요? 아닙니다. 이분들에게도 모든 것이 끝장 난 것 같은 좌절의 순간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베드로의 사도의 경우는 예수님께서 붙잡힌 뒤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더군다나 그토록 사랑한다고 고백했던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던 자신의 모습에서 커다란 실패를 체험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겠지요. 그러나 그는 예수님의 뜻을 받아들여 다시금 기쁜 소식을 세상에 전하는데 최선을 다합니다.

바오로 사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박해하던 사람이었지요. 그런데 자신이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던 모든 생각을 완전히 뒤집는 회심 사건이 일어나지요. 분명히 정신적인 갈등을 겪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며, 이제까지의 삶은 무엇인가 라는 좌절을 체험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여기에서 포기하고 좌절에 머물지 않습니다. 곧바로 예수님을 이방인에게도 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이렇게 포기해서 지금의 자리에 머무르려 하지 않고 주님의 뜻에 맞춰서 앞으로 나아가는 그 모습이 바로 교회의 큰 일꾼으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가요? 얼마나 많은 포기와 좌절 속에서 주님의 뜻과는 정반대로 나아갔던 것이 아닌가요?

 
행복은 훌륭한 선생이다. 하지만 역경은 그보다 더 훌륭한 선생이다.


이번 7월 5일에 서품받을 명형진 부제의 서품상본. 기도부탁드려요.



주님께 충성스러운 나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보았습니다.

한 남자가 강아지를 사러 가게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해요.

“가장 믿음직스럽고 주인에게 충성하는 강아지를 한 마리 사고 싶습니다.”

그러자 아저씨가 강아지 한 마리를 건네주면서 말합니다.

“그런 강아지라면 이 놈이 딱 입니다. 이렇게 충성스러운 강아지는 처음 봤어요. 글쎄 4번이나 팔았는데, 4번 다 저한테 돌아온 것입니다.”

충성스러운 강아지가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보면서 우리는 얼마나 주님께 충성스러운지를 반성하게 됩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게 편한 것만 쫓으면서 주님으로부터 멀어져도 별 상관없이 살았던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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