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예수님을 따르는 구원의 사랑 [복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3-06-29 조회수304 추천수0 반대(0) 신고

그들이 길을 가는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예수님께서는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라라.” 하고 이르셨다. 그러나 그는 “주님,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게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고, 너는 가서 하느님의 나라를 알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또 다른 사람이 “주님, 저는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그러나 먼저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게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루카 9, 51 - 62>

....................................................................................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 라고 어떤 사람이 말합니다.예수님께서 어디로 가시고 계시는지 그는 알지도 못합니다. 아마도 예수님께서 큰 세상의 권좌에 앉으시면 좋은 자리라도 하나를 얻을까 싶나 보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의 생각하고는 다른 말씀을 암시해 주십니다.예수님께서는 세상의 높은 권세의 자리가 당신 자신에게는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세속의 메시아로 여기고 있을 테이지만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메시아이신 것입니다.

이는 '광야의 유혹'에서 잠시 보여졌던 세상의 영광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고난과 고통을 겪고 난 다음에 있을 아버지의 영광입니다.  예수님을 세상의 구제자로 여기는 것은 마땅하지 않습니다. 당시에는 메시아를 '세상의 구제자'로 보고 여러 메시아라고 불리는 이들이 존재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어떤 사람도 예수님을 그들과 같은 구제자들 중의 한 분으로 생각하면서  자신의 스승으로 삼고자 했었다 라고 보아집니다. 그가 예수님을 향해 '주님'이라고 단호하게 부르지 않는데서 그러한 면이 한편으로 엿보입니다. 당시의 사람들 생각에서 볼 때, 구원자와 구제자는 엄밀하게 다른 의미입니다. 

'구제자'는 오늘 이 시대에서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극도로 가난한 이들에게 일용할 빵으로 도와주고자 하는 구제 사업을 하는 단체들이 많고 그 지도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자'는 이같은 구제는 물론이거니와 이런 차원을 훨씬 초월합니다.구원자의 구원 사업은 예수님에게서 드러납니다.

빵의 즐거움이 아닌 마음의 기쁨입니다. 여기에는 행복의 차원이 세상의 것들과 다른 하늘의 것들이 될 것입니다. 육적인 것들이 아니고 영적인 것들이 있습니다.빵의 구제사랑들은 곳곳에 많이 존재하여도 마음의 구원사랑들은 곳곳에서 소홀히 되기도 합니다. 

 
복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교서 '구원에 이르는 고통'에서 살펴보면 이런 가르침이 있습니다.  [ 구원은 악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며 또 그렇기 때문에 구원은 고통의 문제와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에 따르면 인간을 악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하여 하느님께서 세상에 당신 아들을 주셨습니다."주신다"는 말씀 자체가 이 해방은  외아들 그분에 의하여 그분 자신의 고통을 통하여 성취되어야 한다는 것을 지적해 주고 있습니다.당신 아들을 "주시는" 아버지 하느님의 무한하신 사랑이며 인간을 위한 사랑, 구원적인 사랑입니다. ] 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악에 의한 고통에서 해방되지 못하는 것은 구원이 없습니다. 구제는 있어도 구원이 없는 '거짓된 예수의 형제회'에는 악에 의한 고통이 있고, 죄에 의한 죽음이 있습니다. 단순한 고통과 죽음이 아니라 악과 죄에 의해서 일어나는 고통과 죽음을 말합니다. 교황님의 교서 내용 중에는 여기에 대한 가르침이 있습니다. 

[비록 우리가 인간의 고통을 구체적인 죄들의 결과로 판단하는데에는 크게 조심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고통을 인간 역사에서 개인적 행동과 사회적 과정의 죄스런 배경에서 분리시켜 놓을 수도 없습니다. 인간 고통의 근저에는 죄와의 복합적인 연루관계가 있다는 비판 기준을 배격할 수 없다는 것도 진실인 것입니다. / 외아들 그분이 인류에게 주어진 것은 일차적으로 결정적인 악에 대항하고 결정적인 고통에 대항하여 인간을 보호하기 위함이었습니다. ]

악과 죄의 고통과 죽음으로부터 인간을 보호 하고자 하는 일이 구원적인 사랑 입니다.  이 사랑 곧 구제사랑이 아니라 구원사랑을 <하느님에게서 오는 사랑>, <사랑에서 난 사랑>을 뜻합니다.제 게시글에서 줄곧 말하고 있는 사랑이다고 할 것입니다.빵의 구제사랑이 인간에게서 중요한 구원사랑이다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악과 고통으로부터 버려진 아기들과 노약자들을 보호하고자 죄악스런 배경을 없애고자 하신 일이 바로 하느님에게서 오는 하느님의 사랑이신 예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당신 아들을 "주시는" 아버지 하느님의 무한하신 사랑이며 인간을 위한 사랑, 구원적인 사랑입니다]의 교황님 가르침에서 여기서 표현되는 구원적인 사랑이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구원자의 구원사랑은 사람(세상)에게서 오는 구제자의 구제사랑과 다릅니다.교황님께서는 예수님의 길에 대하여 이렇게 가르침을 주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선 첫째로는 원죄와 더불어 비롯하여 악의 영향력 아래 인간의 역사 안에 뿌리를 내린 죄의 지배를 불식하시며 그 다음으로는 인간에게 성화은총 속에서 살 수 있는 가능성을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인간 고통의 세계에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셨습니다. 그분의 활동은 일차적으로 고통 속에서 도움을 찾고 있는 사람들과 관련되어 있었습니다. 그분은 육신의 고통이든, 영혼의 고통이든 인간의 모든 고통에 대하여 민감한 반응을 보이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인간 고통을 바로 당신 자신에게 받아들임으로써 인간 고통의 세계에 다가오심을 이루셨습니다.] 라고 하셨습니다.

교황님께서는 예수님께서 인간 고통을 자기 자신에게 받아들임으로써 인간 고통에 다가오심을 이루셨다고 하십니다. 구원의 사랑을 보여주시는 '예수님의 사랑'은 이처럼 그리스도의 고난과 고통에 일치하는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형제들이 예수님의 길,그리스도의 고통의 길에 결합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참되다' 하고 말하지 못합니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 하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 대하여 교황님께서는 예수님께서 악과 죄에 대항하시는 당신의 구원사랑으로 인간 고통에 결합함으로써 [그분은 사람들로부터 조롱과 멸시, 오해를 받는 일을 겪으셨을 뿐아니라 점점 더 소외를 당하고 적의에 둘러싸이게 되셨으며 자기를 죽이려고 계획하는 음모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모든 것을 알고 계셨으며 죽음이 자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하고 밝혀 주신다 할 것입니다.

버려진 아기들과 노약자들의 악에 의한 고통과 죄에 의한 죽음에 민감하지 못하는 공동체는 가짜 예수님의 형제회입니다. 거기에는 돈을 숭배하는 죽은 사랑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없습니다.  곧 악의 고통과 죄의 죽음에서 인간을 해방시키는 구원의 사랑에 의한 구원 사업이 없습니다.

"이미 너희 안에 하느님의 나라가 와 있다"는 예수님께서 공동체 안에 사시는 하느님의 나라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다른 사람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따라라”  "너는 가서 하느님의 나라를 알려라”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하십니다. 예수님의 사랑의 길(사랑의 지혜)은, 버려진 이들이 악과 죄에 의해서 당하게 되는 '그리스도적 고통'에 일치하여 거기에서 그들을 해방시키는 구원의 사랑의 길입니다.  

예수님의 이 '사랑의 고통'으로 악에 의한 고통과 죄에 의한 죽음을 없애어 버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 처럼 자신을 내어 주는 사랑이 없이는 '그리스도적 고통'에 결합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구원의 사랑에 대한 교황님의 가르침에 대하여 모든 이들이 깨닫기를 기원합니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