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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말씀의초대◎2013년 6월30일 주일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3-06-30 조회수350 추천수0 반대(0) 신고

2013년 6월30일 주일

[(녹)연중 제13주일(교황주일)]

로마 교회의 초기 순교자들 기념 없음
한국 교회는 해마다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6월 29일)이나
 이날과 가까운 주일을 교황 주일로 지낸다.
이날 교회는 베드로 사도의 후계자인 교황이
 전 세계 교회를 잘 이끌어 나갈 수 있도록
주님의 도움을 청한다.
이 교황 주일에는 교황의 사목 활동을 돕고자
특별 헌금을 한다.

오늘 전례
오늘은 연중 제13주일입니다.

우리는 어느새 유월의 끝자락에 서 있습니다.
 또한 올해의 중간 지점에 다다른 것이기도 합니다.
지난 반년 동안 주님의 길을 오롯이 걸어왔는지
되돌아보며 남은 반년 동안도 주님과 함께하는 길을
걸어가기로 거듭 다짐합시다.

◎말씀의초대

엘리야 예언자는 주님의 명령에 따라
엘리사를 자신의 뒤를 이을 예언자로 부른다.
엘리사는 엘리야의 부름에 곧바로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그를 따라나선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은 것은
 우리를 구속시키시려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하시려는 것이라고 밝힌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 부르심에 따라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참된 해방의 삶을 살게 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 비로소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마음을 굳히셨다.
그 길은 당신 자신을 맞아들이지 않는 이들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 보금자리에 대한 근심과 걱정,
소중한 사람들에 대한 애착에서
자유로워야만 떠날 수 있는 길이다. 

◎제1독서

<엘리사는 일어나 엘리야를 따라나섰다.>
열왕기 상권의 말씀입니다. 19,16ㄴ.19-21
그 무렵 주님께서 엘리야에게 말씀하셨다.

16 “아벨 므홀라 출신 사팟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네 뒤를 이을
 예언자로 세워라.”

19 엘리야는
그곳을 떠나 길을 가다가
사팟의 아들 엘리사를 만났다.
엘리사는 열두 겨릿소를 앞세우고
 밭을 갈고 있었는데,
열두 번째 겨릿소는 그 자신이 부리고 있었다.
그때 엘리야가 엘리사 곁을 지나가면서
 자기 겉옷을 그에게 걸쳐 주었다.

20 그러자 엘리사는
소를 그냥 두고 엘리야에게 달려와
이렇게 말하였다.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작별 인사를 한 뒤에
선생님을 따라가게 해 주십시오.”
그러자 엘리야가 말하였다.
“다녀오너라.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하였다고 그러느냐?”

21 엘리사는
 엘리야를 떠나 돌아가서
겨릿소를 잡아 제물로 바치고,
쟁기를 부수어 그것으로 고기를 구운 다음
 사람들에게 주어서 먹게 하였다.
그런 다음 일어나 엘리야를 따라나서서
그의 시중을 들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6(15),1-2ㄱ과 5.7-8.9-10.11(◎ 5ㄱ 참조)
◎ 주님, 당신은 제 몫의 유산이시옵니다.

○ 하느님, 저를 지켜 주소서.
당신께 피신하나이다.
주님께 아뢰나이다.
 “당신은 저의 주님.”
주님은 제 몫의 유산,
저의 잔, 당신이 제 운명의 제비를
쥐고 계시나이다.
◎ 주님, 당신은 제 몫의 유산이시옵니다.

○ 저를 타이르시는 주님 찬미하오니,
한밤에도 제 양심이 저를 깨우나이다.
언제나 제가 주님을 모시어,
 당신이 제 오른쪽에 계시니
저는 흔들리지 않으리이다.
◎ 주님, 당신은 제 몫의 유산이시옵니다.

○ 제 마음 기뻐하고 제 영혼 뛰노니,
제 육신도 편안히 쉬리이다.
당신은 제 영혼 저승에 버려두지 않으시고,
당신께 충실한 이에게
구렁을 보지 않게 하시나이다.
◎ 주님, 당신은 제 몫의 유산이시옵니다.

○ 당신이 저에게 생명의 길 가르치시니,
당신 얼굴 뵈오며 기쁨에 넘치고,
 당신 오른쪽에서 길이 평안하리이다.
◎ 주님, 당신은 제 몫의 유산이시옵니다.

◎제2독서

<여러분은 자유롭게 되라고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사도 바오로의 갈라티아서 말씀입니다. 5,1.13-18
형제 여러분,

  1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려고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그러니 굳건히 서서 다시는
종살이의 멍에를 메지 마십시오.

13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자유롭게 되라고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다만 그 자유를 육을 위하는 구실로 삼지 마십시오.
오히려 사랑으로 서로 섬기십시오.

14 사실 모든 율법은
한 계명으로 요약됩니다.

곧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여라.”
하신 계명입니다.

  15 그러나 여러분이
서로 물어뜯고 잡아먹고 한다면,
서로가 파멸할 터이니
조심하십시오.

16 내 말은 이렇습니다.
성령의 인도에 따라 살아가십시오.
그러면 육의 욕망을 채우지
않게 될 것입니다.

 17 육이 욕망하는 것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께서 바라시는 것은 육을 거스릅니다.
이 둘은 서로 반대되기 때문에 여러분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없게 됩니다.

 18 그러나
 여러분이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율법 아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환호송

1사무 3,9; 요한 6,68
◎ 알렐루야.
○ 주님, 말씀하소서, 당신 종이 듣고 있나이다.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나이다.
◎ 알렐루야.
 

◎복음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마음을 굳히셨다.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51-62

51 하늘에 올라가실 때가 차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마음을 굳히셨다.

 52 그래서
당신에 앞서 심부름꾼들을 보내셨다.
그들은 예수님을 모실 준비를 하려고 길을 떠나
사마리아인들의 한 마을로 들어갔다.

 53 그러나
 사마리아인들은
예수님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그분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54 야고보와 요한 제자가 그것을 보고,
“주님,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불러 내려
 저들을 불살라 버리기를 원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55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그들을 꾸짖으셨다.

 56 그리하여
그들은 다른 마을로 갔다.

57 그들이 길을 가는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58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

59 예수님께서는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라라.” 하고 이르셨다.
그러나 그는
“주님,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게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60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고,
 너는 가서 하느님의 나라를 알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61 또 다른 사람이
 “주님, 저는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그러나 먼저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게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62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묵상

요한 묵시록을 보면 예수님께서
라오디케이아 신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는 내용이 나옵니다.
 “너는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면 좋으련만!”(3,15)
이 말씀의 배경에는 라오디케이아 지역의

 상황과 결부되어 있습니다.
이 도시는 모든 것이 풍족하고 부유해서
 선망의 지역이기는 했지만,
한 가지 흠이 있었습니다.
 그 도시 안에서 자체적으로 물이
 공급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약 10킬로미터 떨어진
데미즐리라는 곳에서 관을 통하여
 물을 공급받습니다.
그러니 그 물은 미지근할 뿐 아니라
먹으면 구토를 일으킬 정도였고,
건강에도 좋지 않았습니다.
그 반면 인근 도시였던 콜로새에는

 아주 차고 신선한 물이 있었습니다.
또 다른 인근 도시인 파묵칼레에는
온천수가 있어서 많은 이가 그 물로
피로를 풀고 건강을 유지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라오디케이아 교회의 신자들에게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고 하신 것은,
그들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자신들의 풍요와 안락에서 벗어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 당시 소아시아에서
부유하게 산다는 것은
어느 정도 이교도 의식에
참여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교도 의식과 경제 구조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라오디케이아 신자들은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면서
신앙생활을 하였던 것이고,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이러한
영적인 상태를 지적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주님의 길을 따르는 자세를
우리에게 알려 줍니다.
그 자세는 반대편에 대한 적개심,
 보금자리에 대한 근심과 걱정,
소중한 사람에 대한 애착 등에서
단호하게 벗어나라는 것입니다.
과연 우리는 어떻습니까?
 이러한 것에서 벗어나지 못할 뿐 아니라
 불의까지도 적당히
타협하며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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