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광야의 길 13,17~22 (탈출기)
작성자강헌모 쪽지 캡슐 작성일2013-06-30 조회수380 추천수4 반대(0) 신고

             심리학으로 말하는 탈출기/ 도반 홍성남 신부

 

 

 

광야의 길

 

탈출기:13,17~22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떠나다

이스라엘사람들이 이집트를 떠나는데
주님께서는 그들이 밤낮으로 행진할 수 있도록 그들 앞에 서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기둥 속에서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 속에서 그들을 비추어 주셨다.

이스라엘이 떠나는 과정이 수월하지가 않았다.
광야의 길로 헤매기도 하고 돌아가게 하셨다.
가나안땅으로 들어가는 여정이 만만치가 않았다.


왜 그렇게 만만치 않은 길로 인도하셨을까?

1. 자아도취적 신앙생활을 못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경조(輕躁, hypo-mania)현상, 즉 하느님이 나타나신다면
모든 걸 다 바치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체험을 하고 나면 영성적 부작용을 갖는다.

신비체험, 탈혼 상태, 엑스타시 등은
그 혼이 하느님과 결합되어 육신을 떠난 상태를 말한다.
탈혼 상태에 있는 사람들은 찔러도 아픔을 느끼지 못하고
매우 불편한 자세로도 몇 시간 동안 기도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탈혼 상태는 가톨릭신자들만이 아니라 희랍인들도 명상을 하다가 그런 체험을 하였다.

이런 탈혼 상태는 그냥 기도만 하면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계속 영성적 훈련을 쌓은 사람들에게 가끔씩 주어지는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하느님 체험을 하고 마음이 매우 평온해질 때가 있다.
그것을 엑스타시에 빠졌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체험이 자주 일어났으면 하고 바라는데
하느님이 잘 안 주시는 이유는 이런 체험을 자주 갖게 되면
전능감이 생기기 때문이다.

기도할 때마다 응답을 받으면
내가 하느님을 맘대로 할 수 있다는 교만에 빠지게 된다.
청할 때마다 잘해주는 상대방에게
늘 고마운 마음을 갖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가면서 그 사람을 우습게 본다.

하느님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로
고맙다는 마음이 들지 않고 친구관계처럼 생각하게 된다.
하느님의 영광보다 자기영광을 쫓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바오로사도가 주님의 영광에 대해 많이 강조하였다.
이런 자아도취적 영성생활의 부작용은
자신의 병적인 자극으로 하느님의 뜻을 자기식대로 왜곡 해석하는 것이다.

하느님은 오로지 자기만을 돌보기 위해 존재하신다고 생각한다.
주님이 나만 구해주시고 나만 사랑하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렇게 자아도취적 영성생활에 빠진 사람들의 기도는
오로지 청원과 요구의 기도뿐이다.
찬미와 보속, 고백, 감사의 기도는 이 사람들에게는 의미가 없다.

그리고 계속해서 자아도취적 경조(輕躁, hypo-mania)상태에 빠지게 된다.
너무나 자기 멋에 빠져 신앙생활을 한다.
종교인 중에 전례에 지나치게 화려하게 입장하는 경우,
제의 등에 자기 자신을 꾸미는데 매우 많은 것을 동원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기 자신을 꾸민다는 것은 하느님보다 내 영광을 드러내고 싶은 욕구이다.
이것은 위험하다.

자아도취에 빠지면 자신의 기도에 응답이 안 왔을 때
심하게 상처를 받고 거절당했다는 느낌에 사로잡힌다.
하느님께 자신을 실망시킨 것에 대해서
하느님이 내 마음에 안 들어 거부하는 것이다.

남녀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여자가 자아도취경향이 있으면 남자를 마음대로 휘두르고 싶어 한다.
남자가 약속시간에 늦었다고 거품을 물고 쓰러지거나 자살하는 경우도 있다.

2. 거짓성장(pseudo development) 때문이다.

심리적으로 마음이 급한 사람들이 거짓성장을 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내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다든가, 굉장한 체험을 해서
예전의 자신이 아니라든가 하는 것은 가짜이다.

그래서 성장체험을 시키신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기도에 의해 그렇게 쉽게 안 바뀐다.
내적성장에 조금은 도움이 되지만
내 자신을 변화시키는 데는 도움이 안 된다.

나를 변화시키데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다.
내가 내 의지로 매일 같이 내 자신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할 때 조금씩 천천히 변한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백성을 가나안땅으로 이끄신 것은
이스라엘백성의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내적성장의 끝을 의미하는 체험이다.

그 끝 체험을 금방 주시지 않고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을 비추시며
보이기는 하는데 잡을 수는 없는 그렇지만 있다는 것은 느끼는
막연한 상태에서 이끄신 것이다.

광야의 길을 돌고 돌아 가나안땅으로 이끄신 것이다.
그 이유는 가짜성장을 막기 위해서이다.

가업을 물려받는 경우, 기업이 잘 되는 집안은
아들을 밑바닥부터 훈련을 시키는 집이다.
차근차근 단계를 다 밟아야 신앙생활이건 일상생활이건
사람이 밑에서부터 단계적으로 성장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종교가 길을 제시해 줄 때와 방어기제로 쓰일 때가 있다.
예수님께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듯이
사람이 살아가는 길을 가르쳐주기 위한 수단으로 선택될 때가 있고

사람들이 방어기제로 자기가 갖고 있는 욕구를
감추기 위한 수단으로 때로는 공격용기제로
또한 어떤 때는 생존의 기제로 선택할 때가 있다.

종교란 생명력을 가진 유기체로
인간의 욕구에 의해 변질될 수가 있다.

내가 갖고 있는 종교와 다른 종교를 공격하는 것은
그 사람 안에 있는 욕구의 문제이다.

그 사람들의 내적문제인 것이지 종교나 하느님의 문제가 아니다.
하느님은 길을 가르쳐주시는 분이지 싸움을 원하시는 분이 아닌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의 행동과 생각을 볼 때
프리즘 하나로 본다.
그것은 부와 모 그리고 자식의 관계이다.

예를 들어 아들부시는 자기 아버지부시와의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에 대한 열등감이 많기 때문에
아버지를 넘어서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더 많은 업적을 얻기 위해 시작한 것이
이슬람교와의 전쟁이다.

부시가 만든 하느님은 폭력적인 하느님이다.
종교를 자기가 갖고 있는 욕구의 공격용 기제로 쓰고 있는 것이다.
매우 위험하다.

세상일의 문제의 해결책은 부모와 자식 간의 프리즘 안에서 봐야한다.
그것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부모와의 관계에서 형성된 자기성격 때문이다.

내가 부모 안에서 어린 시절에 어떤 성장을 했는가 하는 것이
어른이 되어 행동하고 판단하는 데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자료출처 : 도반모임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