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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님, 살고 싶습니다. 살려 주세요!
작성자이정임 쪽지 캡슐 작성일2013-06-30 조회수1,770 추천수4 반대(0) 신고
+샬롬(그리스도의 평화)

이사하고 7개월 반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할 일도 많았고 해야할 일도 많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주일만 겨우 지키며 근근이 사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느날부터인가, 난 힘들고 고단하고 삶이 하나도 행복하지 않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사 오기 전에는 성체조배도 곧잘 다녔었고, 성지에 다니면서 기도도 많이 했었습니다.

마음이 너무 고단해서 살기가 힘들지경에 이르자 힘내어 성체조배를 갔습니다.
"주님, 살고 싶어서 왔습니다... 살려 주세요!"

얼마나 주님 앞에 앉아 있었을까?...
갑자기 심장이 뛰는 진동이 온 몸으로 전해지는 것입니다.
평상시에는 심장이 뛰고 있는지조차 느끼지 못하고 사는데 어찌나 강하게 뛰는지 깜짝 놀랐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살고 있지 않느냐?..." 하심을 느끼겠더군요.
아, 이렇게 함께 사시고 계셨구나!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 하신 말씀이 바로 이것이었구나.

그리고 이제는 종종 찾아 뵙겠노라고 약속드리고 집으로 왔습니다.
그후로 생각날 때마다 그 감동을 기억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오늘 주일 미사 시간에 아, 그래서 바오로 사도께서 우리 몸을 주님의 성전이라고
하셨구나! 아, 그렇게 형제의 몸도 주님의 성전인데 난 그동안 어떻게 살았나...
다 잊고 살았습니다.

내 안에서 사시는 주님을 느낄 수 있었고 뵈올 수 있었고,
또한 이웃 안에서도 함께 생활하시는 주님을 깨달을 수 있었다면 지금의 이 모습으로
살지 않았을 것임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러자,  오늘 아침 일하면서 갑자기 제 모습이 환하게 보였습니다.
가족을 대하는 저의 태도가 확실하게 보였습니다.
제가 행복하지 않았던 그 문제가 보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저의 모습을 통해 깨달은 성경 구절은 바로 창세기의 하와의 모습이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뱀의 유혹에 빠져 하느님과 관계가 깨어졌습니다.
하느님과의 관계가 깨어진 아담과 하와의 삶을 들여다보면 삶의 문제 앞에서 서로 남의 탓을 하고
사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습니다. 제가 바로 지금까지 제 고통의 문제가 내 탓이 아니고 가족들의 
탓이라고 우기며 살고 있었다는 것을 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남편과 아이가 어떤 말을 했을 경우에도 어떤 행동을 했을 경우에도 제 마음 안에서는 불평이 나왔고...
불만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고... 결국 겉으로 다 표현하지 않아서 그렇지 완전 무시하고 있는 제 모습이
보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까지 보여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느님께 불순명하고 관계가 깨어지고 나자 자신들의 문제 앞에서 서로 상대방에게 
그 책임의 원인을 전가하자 어떻게 되었는가? 신뢰가 깨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와의 입장에서 볼 때에 그래도 한 가정의 책임 가장인데 첫 원인이 하와 자신이었다 해도 
가장인 아담이 모든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고 하느님께 말씀 드렸으면 좋으련만 ...
그만 하와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고 말았습니다. 이때에 하와는 아담을 향해 신뢰가 깨어졌다고 봅니다.

이러한 상태에서 하느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예언적인 말씀을 하셨습니다.
성경에서 예언적 말씀들은 예정론적 예언의 말씀이 아니라 선택적 예언의 말씀이라고 저는 깨닫게 
되었는데, 이것이 어떤 의미인가하면,

"우리들의 운명이 그렇게 확정지어졌다는 의미가 아니라,
현재 너희의 그 마음 상태로 그냥 살아간다면 이렇게 될 것인데, 너희들 어떻게 살래?
그 마음 그대로 가지고 내가 지금 말하는 이대로 살래? 아니면 반대 방향으로 살래?"
이렇게 묻고 계시면서 회개하시길 바라시는 주님의 마음임을 어느날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하와가 아담의 인간적인 한계가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고 그것을 인정하지 못한 상태로 
현재 아담이 저지른 그의 나약한 모습 안에서 그에게 실망하고 그럼으로써 그에 대한 신뢰가
깨어진 상태로 결혼 생활을 지속한다면 어떻게 되는가? 

"나는 네가 임신하여 커다란 고통을 겪게 하리라."
바로 이것입니다. 여인이 아이를 임신하여 출산하는 것이 물론 많은 고통을 동반하지만 그것은 
고통 자체가 아닐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아이의 출생만큼 행복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하와가 아담을 향한 신뢰가 깨어진 상태로 그것을 회복시키지 못하고 살게 될 경우
사는 동안 참으로 행복한 일조차도 행복을 누리지 못하고 고통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려 주시면서 하와에게 너 지금 아담을 향하고 있는 마음을 회개하지 않으면 네 삶이 
이럴진대 너 어떻게 살래? 하고 묻고 계시는 장면으로 다가오게 된 것입니다.

"하와(글라라)야, 네가 지금 아담을 향해 있는 실망, 원망, 미움 ...
그거, 알고 보면 인간은 다 그렇게 생겨먹었음을 네가 알아야해!
너도 잘 생각해봐!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살면서 네가 무엇을 잘못 했을 때에 단 한번도
'아, 그거 제가 한 일입니다.!하고 용감하게 말한 적 있니?"
전 정말 없었습니다. 내가 했으면서도 불구하고 "안 했는데요. 모르는데요..."
그렇게 말했습니다...

현재 남편과 아이가 한 어떤 행동들이나 말들이나 어찌보면 다 아담의 한계(?)에서 나온 것들이었습니다.
전 그것을 이해하려 애써보지도 않고 그것들로 인해 제 마음 안에는 실망과 미움이 그대로 쌓여 있게
되었던 것이고 그로 인해 그들이 하는 행동 하나하나, 말마디 하나하나가 다 못마땅하게 생각되고...
그렇게 되니 마음 안에서는 무시하는 투의 말들과  불만스런 마음이 일어나고 ... 그러니 사랑과는 점점
더 멀어지고...

이러한 상태가 되니 어떻게 되는가?
땀흘려 일하는 것이 고통이 되었던 것입니다.
"땅은 너 때문에 저주를 받으리라.
너는 사는 동안 줄곧
고통 속에서 땅을 부쳐 먹으리라."

내가 일해서 돈을 벌면 그 돈으로 맛있는 것 사먹고 어쨌거나 행복할 수 있기에 사실 돈  벌기 위해
하는 노동은 그 차체로 행복할 수 있는 것인데 남편과 아들을 향해 있는 내 마음이 실망과 원망과
미움으로 가득차 있으면서 일하니 일이 너무 힘들고 고통으로 다가왔습니다.

아, 창세기의 이 말씀은 아담과 하와가 겪었던 단 한번의 사건이 아니고 지금도 우리가 겪고 있는
사건이었구나. 아, 나와 하느님의 관계가 깨어져 있었구나! 이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저는 기도하는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성경 공부도 아주 열심히 하는 사람이라서 늘 깨어 있는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전혀 아니었습니다.

하느님과 관계가 어떻게 깨어져 있었는지도 볼 수 없는 존재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원죄라는 것은 아마 이런 것은 아닐까하고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가장 밑바탕에 하느님과 관계가 깨어지는 원인이 바로 원죄일 수도 있겠구나!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한계, 곧 아담의 한계와 하와의 한계인,
자신의 어떤 잘못 앞에서 그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타인에게 그 원인의 돌리는 것으로 인해
그 사람에게 실망하고 그 실망이 원망과 미움으로 변하게 될 때에 오는 고통이 바로 원죄의
고통일 수 있겠구나를 실감하게 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살기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인간의 나약한 한계를 보고 나니  전보다 가족을 바라보는 눈이 많이 부드러워졌습니다.
점점 예수님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한걸음씩 나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이제는 시간을 꼭 내어 성체조배를 가겠다고 약속 드렸습니다.

참으로 주님을 만나는 길만이 살 길임을 알기에 그렇습니다.
참 삶의 길로 초대해 주시는 주님, 감사합니다.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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