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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때로 우리를 테스트하시는 하느님
작성자양승국 쪽지 캡슐 작성일2013-07-03 조회수500 추천수11 반대(0) 신고



때로 우리를 테스트하시는 하느님

 

창세기 22장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외아들 이사악을 번제물로 바치는 일화는 정말 특별합니다. 언제 읽어도 우리에게 경탄과 당혹, 두려움과 혼동을 유발시키는 사건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아브라함은 전 생애에 걸친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 가장 큰 충격에 빠지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지속적으로 부르시고 인도하시는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나름대로 꽤 하느님에 대해서 알고 있다고 자부했습니다.

 

비록 눈에 보이지 않으시나 하느님은 선하신 하느님, 드넓고 비옥한 땅과 바다의 모래알처럼 많은 후손을 약속하시는 축복의 하느님, 드디어는 소중한 아들 이사악을 선물로 주신 하느님이었습니다.

 

떠나라는 하느님의 한 마디에 고분고분 고향땅을 떠나 여행을 계속해온 아브라함이었습니다. 그 오랜 여정이 기약 없어 보여서 무척이나 고달팠고, 때로 약속에 대한 강한 의혹을 떨쳐 버릴 수 없었지만 드디어 아들 하나를 주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있어 하느님은 이제 약속을 지키시는 성실하신 하느님, 정의의 하느님, 진리의 하느님이 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 입장에서 이제야 하느님께서 약속을 지키기 시작하시는구나.’ 하고 희희낙락했겠지요.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잘 나가던 상황을 또 다시 한번 완전히 뒤집고 계십니다. 그 계기가 된 사건이 바로 외아들 이사악을 번제물로 바치라는 하느님의 명령인 것입니다.

 

너의 아들, 네가 사랑하는 외아들 아사악을 데리고 모리야 땅으로 가거라. 그곳, 내가 너에게 일러 주는 산에서 그를 나에게 번제물로 바쳐라.”

 

아브라함은 또 다시 혼동 상태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충실성에 대한 강한 의혹과 불신을 떨쳐버릴 수가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외아들 아사악을 번제물로 바치기 위해 모리야 땅을 향해 가는 길의 분위기가 어떠했을까요? 하루 온종일 팽팽한 긴장감과 가슴을 찢는 듯한 슬픔, 두려움과 혼란이 아브라함의 마음을 휘젓고 있었을 것입니다.

 

불과 장작은 여기 있는데, 번제물로 바칠 양은 어디 있습니까?”

 

영민한 이사악이 늦게나마 사태를 파악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모르는 채 이렇게 대답합니다.

 

애야, 번제물로 바칠 양은 하느님께서 손수 마련하실 거란다.”

 

이 짧은 대화 그 이면에는 숱한 복선과 긴장이 흐르고 있습니다. 이사악의 단순함이 사건의 핵심을 찌르고 있고, 그것이 아브라함의 당황과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도 이 사건의 핵심을 잡아 말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마음은 참으로 복잡했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분명히 명백하게 어린 양이 아니라 아들 이사악을 번제물로 바치라고 했습니다. 곧 아브라함은 양을 번제물로 바칠 때 그렇게 하듯 아들 이사악을 반으로 갈라 죽이고 쌓여진 장작더미 위에 놓고 불살라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하느님의 명령이라지만 어떻게 아버지에게 직접 자신의 손으로 자식을 죽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는 하느님께 올리는 제사라는 최고의 명분으로 최악의 범죄, 근친 살해의 범죄가 강요되는 일인 것입니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이 스토리는 아직도 많은 사색과 토론을 유발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확실하게 인정할 수 있는 것은 이 기이한 체험을 통해 아브라함의 신앙, 하느님 체험은 질적인 비약을 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명에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아들 이사악을 번제물로 바치기 위해 칼을 쳐드는 아브라함을 향해 주님의 천사는 이렇게 외칩니다.

 

그 아이에게 손대지 마라. 그에게 아무 해도 입히지 마라. 네가 너의 아들, 너의 외아들까지 나를 위하여 아끼지 않았으니, 네가 하느님을 경외하는 줄을 이제 내가 알았다.”

 

당시에는 정말이지 수용하기 힘든 명령이었지만 지나고 나서보니 이는 일종의 테스트라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아브라함은 큰 시련 앞에서도 더 굳은 믿음을 드러내 하느님으로부터 의로운 사람이란 인정을 받습니다. 아브라함은 정말이지 순명하기 힘든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순명함을 통해 하느님께 대한 신의를 드러낸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셨듯이 우리도 시험하십니다. 다시 말해서 일상적인 시련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말입니다. 시련은 매일 우리를 기다리고 있고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때로 그 시련은 너무 강도가 커서 우리를 극한의 상황까지 몰고 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결국 더 큰 순명, 더 큰 믿음이 우리를 더 큰 영광과 축복에로 인도합니다.

 

때로 받아들이기가 힘들겠지만 시련을 견뎌내야겠습니다. 시련 앞에서 더 큰 마음으로 순명해야겠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시련을 주시는 분은 우리를 꼭 붙들고 계시는 하느님께서 주시는 시련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시련 속에 있을지라도 하느님은 우리를 당신 손안에 넣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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