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연중 제13주간 금요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13-07-05 조회수373 추천수3 반대(0)


저는 부모님께 많은 것들을 받았습니다. 어머님의 체질과 아버님의 성격을 닮았으면 좋았을 텐데 저는 아버님의 체질과 어머님의 성격을 닮았습니다. 아버님은 세상을 바라보는 식견이 뛰어나셨습니다. 어떤 사건의 의미와 배경을 정확하게 분석하셨습니다. 어머님은 건강한 치아를 지니셨고, 검은 머리를 간직하셨고, 혈압도 정상이셨습니다. 아버님은 치아가 좋지를 않았고, 머리도 젊으신 나이에 희게 변하셨고, 혈압도 높았습니다. 어머님은 세상을 명철하게 분석하기 보다는 부드럽게 사셨습니다.

예전에는 아버님의 체질을 닮고, 어머님의 성격을 닮은 것이 불편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사제 생활을 하면서 부드러운 어머님의 성격을 닮은 것이 도움이 될 때가 많습니다. 조금 부족한 저를 도와주려는 분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판단하고, 분석하고, 결정하는 것보다는 그저 조용히 들어 주는 것이 문제를 더 쉽게 해결하는 것을 경험합니다. 혈압이 있기에 더욱 건강에 신경을 쓰면서 살았고, 담배도 끊었습니다. 하얗게 변한 머리카락을 염색하고 있지만 언젠가 그렇게 하얀 머리카락으로 사는 것도 멋있을 것 같습니다. 치아가 좋지 않기에 자주 치과를 다녔고, 아직은 상한 이는 하나도 없이 지내고 있습니다.

주변을 보면 모든 것을 다 갖춘 완벽한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재산이 많은 사람은 그 재산 때문에 고독하기도 합니다. 건강한 사람은 건강을 과신하다 큰 병으로 병원에 가기도 합니다. 지식이 많은 사람은 다른 사람의 의견을 잘 듣지 못하기도 합니다. 재산은 별로 없지만 가족들과 웃음꽃을 피우며 사는 분도 있습니다.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말하지도 못하는 분이 사제가 되어서 장애인들을 위한 사목을 하기도 합니다. 배움이 크지 않지만 매일 새벽미사에 참례하는 할머니의 모습은 세상의 큰 지혜를 가진 사람의 모습과 별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다음 달이면 교구 인사이동이 있습니다. 많은 신부님들이 새로운 곳으로 떠날 것입니다. 정든 곳을 떠나서 새로운 곳으로 이동을 하는 것은 늘 긴장이고, 새로운 도전입니다. 편하고, 익숙한 것들을 버리고, 새롭고, 낯선 것들을 만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선배들은 다른 곳으로 갔을 때 지켜야 할 몇 가지 원칙들을 알려 주시곤 했습니다.

첫째, 새로운 곳에 가면 긴급한 사항이 아니면 갑작스러운 변화를 주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신자들도 전임 신부님의 사목 방침에 익숙해있기 때문에 새로운 변화에 대해서 어려움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몇 달간 상황을 지켜보면 왜 그렇게 했는지,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파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본당에서의 사목은 ‘행정, 재정, 관리’일 수도 있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사람입니다. 신자들의 ‘희망, 고통, 기쁨, 외로움’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가능하면 함께 일하는 신자들의 이름, 세례명, 하는 일, 나이 등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정방문, 반 모임 등에 함께 참여하며, 구역단위의 미사를 봉헌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셋째, 전임신부님에 대해서 비난하거나, 잘못된 점들을 드러내는 분들이 있습니다. 비난과 비판에 익숙한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의 의견도 들어야 하지만, 그런 분들을 따뜻하게 대해주고, 앞으로는 전임 신부님에 대한 이야기는 가능하면 하지 말아 달라고 말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비난과 비판도 필요하겠지만 미래에 대한 희망과 새로운 사목의 모델을 제시하는 것이 더욱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넷째, 기다림입니다. 5년간은 있을 본당이기 때문에 너무 서두르지 않으면 신자들은 새로 온 사목자에게 정을 주고, 사랑을 주기 마련입니다. 사제 또한 몇 달이 지나면 동네의 사정도, 신자들의 마음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은 흘러가기 마련입니다. 억지로 막으려 하면 터질 수도 있고, 너무 빨리 흘러가게 하면 좋은 것들까지 떠나보낼 수 있습니다.

다섯째, ‘누구와 많은 시간을 보내는가.’입니다. 가난한 분, 외로운 분, 아픈 분, 절망 중에 있는 분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필요합니다. 어르신들, 아이들과 가까이 하고, 받을 것이 많은 분들과의 시간도 필요하겠지만, 줄 것이 없는 분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더 필요합니다. 그분들을 통해서 주님께서 주시기 때문입니다.

가끔씩 신자들과 어려움을 겪는 신부님들을 봅니다. 대부분은 앞에 말씀 드린 원칙들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있었던 권위는 ‘힘, 재산, 능력’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권위는 ‘봉사, 희생, 사랑’에서 나와야 합니다. 오늘의 성서말씀은 우리가 정말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사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성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치 않으나, 아픈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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