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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뭔 일이 있었길래...
작성자이정임 쪽지 캡슐 작성일2013-07-06 조회수548 추천수0 반대(0) 신고

+샬롬(그리스도의 평화)

창세 33장을 읽다가 조금 이해가 되지 않는 장면을 발견하게 되었다.
바로 이 대목이었다.

"에사우가 말하였다. '자, 일어나 가자. 내가 앞장서마.' 그러자 야곱이 그에게 말하였다.
'주인께서도 아시다시피 아이들은 약하고, 저는 또 새끼 딸린 양들과 소들을 돌보아야
합니다. 하루만    몰아쳐도 짐승들이 모두 죽습니다. 그러니 주인께서는 이 종보다 앞서서
떠나시기 바랍니다. 저는 세이르에 계시는 주인께 다다를 때까지, 앞에 가는 가축 떼의
걸음에 맞추고 아이들의 걸음에 맞추어 천천히 나아가야겠습니다."(창세 33,12-14)

야곱이 삼촌 라반의 집으로 떠나기 전에 살던 곳은 브에르 세바였다.
"야곱은 브에르 세바를 떠나 하란으로 가다가,(창세 28,10)
이사악이 브에르 라하이 로이에 자리 잡고 살았다고 성경은 전한다(창세 25,12)

그런데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나보다.
이사악과 에사우가 이사를 간 모양이다. 세이르로...

형 에사우를 만나는 자리에서 야곱은 에사우를 형이라 부르지 않고 주인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러면서 또 세이르에 계시는 주인을 말하고 있다. 아, 이 세이르에 계시는 주인을 누굴까?
아하, 아버지 이사악을 말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 뭔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발견했다.
야곱이 떠난지 2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런데 두 형제가 만났는데 왜 어머니 레베카에
대한 이야기는 한 마디도 없는 것일까? ...

그리고 언제, 무슨 이유로 브에르 세바에서 세이르로 이사를 갔을까?...
그리고 무슨 이유로 아버지가 계시는 세이르로 가자고 에사우가 앞장서겠다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말도 안 되는 핑게를 대고 결국 아버지가 계신 세이르로 가지 않고 스켐에 가서
천막을 치고 살게 되었을까? ...

야곱이 아버지를 지금 이 자리에서 만날 수 없는 그 무엇은 무엇이었을까?

야곱의 아들들은 요셉만 어리지 보통 다 컸다. 그리고 야곱은 부자이기에 자신이 손수 가축들을
돌보지 않아도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곱은 아이들이 어리다고 하고, 짐승들이 하루만 몰아쳐도
죽는다고 말하고 있다. 나는 이 고백이 자신의 영적 상태를 표현하고 있는 듯 느껴진다.

아직 자기 안에 있는 아이는 어리다고... 그리고 그 어린 아이의 마음은 아직 짐승의 상태와
비슷하다고... 왠지 그렇게 느껴져 온다... 그러면서 뭔일인지는 모르지만 아버지를 바로 뵙지
못하는 사연이 있을 것 같이 느껴진다. ...

야곱이 세이르에 계시는 주인이신 자신의 아버지 이사악에게 바로 달려가 만나지 못하는 그
마음은 과연 무엇일까? 참으로 궁금하다. 자신의 마음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 듯하다.
"저는 세이르에 계시는 주인께 다다를 때까지, 앞에 가는 가축 떼의 걸음에 맞추고 아이들의
걸음에 맞추어 천천히 나아가겠습니다."(창세 33,14)

그런 후 야곱은 자신의 딸 디나가 폭행을 당한 사건 이후 하느님께서 베텔로 올라가 그곳에서
살으라고 하셔서 베텔로 올라갔다. 그런데 야곱이 베텔로 올라가는 길 안에서 어떤 사건이 생긴다.
바로 레베카의 유모가 죽었다는 소식이다.

"그때 레베카의 유모 드보라가 죽어, 베텔 아래에 있는 참나무 밑에 묻혔다. 그래서 그곳의 이름을
알론 바쿳이라 하였다."(창세 35,8)  '알론 바쿳'은 '통곡의 참나무'라는 의미이다.

여기서 이상한 의문이 들었다. 성경은 왜 야곱을 그토록 사랑했던 어머니 레베카의 죽음에 대해서는
한 마디 언급도 하지 않으면서 레베카의 유모의 죽음에 대해서는 전할까? 그것도 야곱이 통곡을
했다는 의미도 함께 전하는 의미는 도대체 뭘까? 참으로 궁금하다...

여기서 더 궁금한 것은 레베카의 유모는 언제 야곱을 만났고 함께 살게 되었을까?...
분명 레베카가 시집 올 때 함께 왔었다(창세 24,59: 그리하여 그들은 누이 레베카와 그의 유모를
아브라함의 종과 그 일행과 함께 보내면서)

그런데 레베카의 유모는 언제 야곱을 만났고 함께 살게 되었을까?
그리고 왜 야곱은 자신의 엄마 유모의 죽음 앞에서 그토록 통곡해야 했을까?
아버지를 바로 만나지 못하는 그 어떤 이유와 관계가 있지는 않을까?...

레베카와 야곱이 공모하여 이사악을 속여 축복을 받아 내고 야곱이 하란으로 떠난 그 후
이사악과 레베카의 삶은 어땠을까? 과연 행복했을까?...
왜 이사악과 에사우는 세이르로 이사를 했을까?...

야곱이 아버지 이사악을 언제 만났을까?
마침내 야곱은 마므레 곧 키르얏 아르바에 있는 자기 아버지 이사악에게 다다랐다.
그곳은 아브라함과 이사악이 나그네살이하던 헤브론이다. 이사악의 나이 백여든 살이었다.
이사악은 노인으로, 한껏 살다가 숨을 거두고 죽어 선조들 곁으로 갔다. 아들 에사우와
야곱이 그를 안장했다."(창세 35,27-29)

야곱이 형 에사우를 만난 그 후 몇년만에 아버지 이사악을 찾아왔는지는 정확한 햇수는
모르겠다. 그러나 그동안 야곱이 살았던 삶을 성경을 통해 유추해 보면 적지 않은 세월을
아버지를 만나지 못했다. 왜 그랬는지 성경은 말하지 않는다...

이 부분을 통해 깨달은 것은 성경은 인권을 보호하시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온 동네방네... 온 세상에 한 가정의 불행(성경에 적지 못할 사연?)을 소문내고 싶지 않으신 그 마음을
만날 수 있었다... 속속들이 다 말하지 않아도 성경이 전하는 내용으로만 유추해도 어느 정도 짐작은
할 수 있다... 사람이 사는 것은 도토리 캐지기이기 때문이다...

남편을 철저하게 속이고 살았던 여인 레베카...
과연 그녀는 야곱이 하란으로 떠난 후 이사악과 행복했을까?...
자신의 잘못과 허물을 다 털어 놓았다면 몰라도 ...

성경이 레베카의 죽음을 전하지 않는 이유는 그녀의 죽음이 결코 성경에 적을 만한
그런 죽음이 아니었다는 의미는 아닐까? 그러니 에사우와 야곱이 처음 만났을 때에
어머니 레베카의 소식에 대해서는 서로 말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을까?...

레베카가 했던 말들이다.
"내 아들아, 네가 받을 저주는 내가 받으마."(창세 27,13)
"나는 히타이트 여자들 때문에 살기가 싫어졌어요... 내가 어찌 살겠습니까?"(창세 27,46)

요즘 현실을 본다...
얼마나 여과 없이 타인의 불행...허물... 죄... 등을 여과 없이 인터넷에 적나라하게 공개하는가...

성경이 레베카의 죽음을 전하지 않는 그 마음을 들여다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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