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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경의 주인공은 누구...
작성자이정임 쪽지 캡슐 작성일2013-07-10 조회수548 추천수2 반대(0) 신고

+샬롬(그리스도의 평화)

창세기 36장은 통째로 에사우의 자손에 관한 이야기이다. 성경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고
싶으셔서 이렇듯 36장 전체를 에사우의 족보에 할애하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맏아들의 권리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불콩죽 한 그릇에 팔아넘긴
에사우가 정작 야곱이 자신을 가장해서 아버지의 축복을 받아내고 나자 사실 제 정신이
들었습니다. 그러자 에사우도 이사악에게 진심으로 축복을 해 달라고 울었습니다.
그러자 아버지 이사악이 그에게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네가 살 곳은  기름진 땅에서 저 위 하늘의 이슬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리라.
너는 칼을 의지하고 살면서  네 아우를 섬기리라. 그러나 네가 뿌리칠 때
네 목에서 그의 멍에를 떨쳐 버릴 수 있으리라."(창세 27,39-40)

에사우가 아버지 이사악에 들은 이 말씀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요?
일종의 예언 형식의 말씀으로 들려 옵니다.
그런데 그동안 제가 성경을 묵상하며 깨달은 이러한 예언 형식의 말씀들은 그 말씀을
듣는 사람이 미래에 그렇게 확정된  또는 예정된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예언적 말씀이
아니라 지금 그 말씀을 듣는 사람이 처해 있는 현실, 곧 그 사람의 마음자리를 보시고
해 주시는 말씀으로 그 진정한 의미는 결국 그 사람이 생명의 길을 선택하길 바라시는
말씀이심을 어느날 깨닫게 되었습니다.

에사우는 야곱이 자신이라고 속여 축복을 가로채자 어떤 마음이 들었습니까?
"에사우는 아버지가 야곱에게 해 준 축복 때문에 야곱에게 앙심을 품었다. 그래서 에사우는
'아버지의 죽음을 애도하게 될 날도 멀지 않았으니, 그때에 아우 야곱을 죽여 버려야지.'하고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창세 27,41)

아버지 이사악은 분명 에사우가 어떠한 마음을 먹으리라고 이미 짐작할 수 있지 않는지요?
그러하매 이사악은 에사우에게 지금 현재 네가 마음속에 품고 있는 마음(창세 27,41)을 가지고
산다면, "네가 살 곳은 기름진 땅에서 저 위 하늘의 이슬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리라. 너는 칼을
의지하고 살면서 네 아우를 섬기리라"고 알려 주는  것으로 느껴 옵니다.

"그러나 네가 뿌리칠 때 네 목에서 그의 멍에를 떨쳐 버릴 수 있으리라." 고도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에사우는 야곱이 20년간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살았던 세월 동안 어떤 마음으로
살았을까? 하고 그것이 궁금해집니다.

처음에는 야곱을 죽이고 싶도록 미워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이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떠나고 자신 혼자 살아가면서 칼(?)에만 의지했을까하는 생각입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에사우가 정말 축복을 받기를 간절히 원했고 축복을 받기 위해 애썼음을 보았습니다.

에사우가 처음에는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리며 사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멋대로
히타이트 여인을 아내로 맞아 들였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진정으로 축복을 받기를
원하고 나자 부모님이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를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야곱이 떠나고 나서 에사우는 바로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의 딸이며 느바욧의 누이인
마할랏을 아내로 맞아들였다는 사실입니다. 곧 자신의 동족에서 아내를 맞아 들이고 싶어하는
아버지의 뜻을 스스로 실천했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로 비추어 유추해 볼 때에 에사우는 이후 아버지의 뜻을 잘 헤아렸을 것이고 아버지의
뜻을 살려고 애쓰는 삶의 모습으로 변하여 살았다고 느껴집니다. 그렇지 않고서 어떻게 야곱과
화해를 그렇게 쉽게 할 수 있었겠는지요?

어떻게 보면 에사우는 이미 야곱을 용서하고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됩니다.
야곱이 자신보다 먼저 심부름꾼들을 에사우에게 보냈고 그 소식을 듣고 에사우가 장정 4백명을
거느리고 그를 맞으러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만나자마자 그저 껴안고 울었습니다.
둘은 그렇게 화해를 했습니다. 그러니 에사우는 이미 용서하고 동생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느끼게 된 것이지요.

에사우는 아버지 이사악의 말씀을 새겨 듣는 사람으로 거듭 났다고 봅니다.
아버지의 한 말씀을 기억하고 그 말씀을 살아낸 사람이라고 묵상해 봅니다.
"그러나 네가 뿌리칠 때 네 목에서 그의 멍에를 떨쳐 버릴 수 있으리라."
에사우가 야곱을 향해 품고 있는 현재의 생각(죽이고 싶은 생각으로 칼을 의지하고 사는
마음) 을 뿌리칠 때에 그는 자신의 목에서 야곱을 향해 있는 미움과 증오(그의 멍에)를
떨쳐 버릴 수 있지 않았겠는가... 그는 아버지의 말씀을 이미 살았다고 보여집니다.

여기서 구약성경이 말하는 축복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며 약속하신 내용이 바로 축복(땅과 후손)이 아닌지요?
결국 자손이 많이 불어나고 가진 재물이 많아지고 이러한 것들이 축복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창세 36장은 한 장을 할애해 온통 에사우의 자손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의 자손이 얼마나 많이 불어났는지요?

그냥 단순하게 자손만 불어 난 것이 아니라 어떤 지역의 족장들까지 생겼습니다.
이미 여러 민족들이 형성되었다는 것이 아니겠는지요? 그러면서 그의 재산은 또 얼마나
불어났는가?

"그 뒤에 에사우는 아내들과 아들딸들, 자기 집에 딸린 모든 식구들, 그리고 가나안 땅에서
얻은 가축 떼와 모든 짐승들과 재산을 거두어, 자기의 아우 야곱에게서 좀 떨어진 땅으로
갔다. 함께 살기에는 그들의 가산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가축이 너무 많아 그들이 머물던
땅이 그들을 다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에사우는 세이르 산악 지방에 자리를
잡았다. 이 에사우가 곧 에돔이다."(창세 36,6-8)

보십시오!
형 에사우가 먼저 양보를 하지 않습니까?
그 땅이 좋았지만 에사우는 산악 지방으로 자리를 잡았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자 세이르에서도 엄청난 자손들이 태어났습니다.
이렇게 에사우 또한 결국 하느님의 축복을 받고 살았다는 의미가 아니겠는지요?

저는 여기서 이렇게 묵상해 봅니다.
야곱의 속임수는 아주 좋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 속임수도 속임수로
끝을 내지 않으시고 결국 에사우와 야곱이 함께 축복 받은 사람들이 될 수 있도록
역사하셨음을 발견했습니다.

맏아들의 권리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살았던 에사우였습니다.
만약 야곱이 맏아들의 권리를 그토록 얻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맏아들의 권리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에사우가 자동적으로 맏아들의 축복을
받았던들 그 축복을 누릴 수 있었겠는가? 하고 생각해 봅니다.

야곱의 방법은 참으로 옳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 옳지 않은 행위를 한
야곱조차도 버리지 않으시고 그를 도우셨습니다. 그 결과 현재 창세 36장에서 어떤 꽃이
피었습니까?

또한 에사우는 맏아들의 축복을 잃고 나서 그 축복을 갈망하게 되었지 않습니까?
이렇게 하느님께서 에사우와 야곱의 부족하고 못난 모습을 나무라지 않으시고 끝까지
돌보셨기에 에사우와 야곱 모두 함께 하느님의 축복을 받은 꽃이 피었지 않습니까?

그래서 성경의 주인공은 하느님이시라고 하시는가 봅니다.
부족하고 못난 인간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고 사랑하시는 사랑인가 봅니다.
그 사랑에 그저 머리숙여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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