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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무엇을 찾고 있느냐?
작성자이정임 쪽지 캡슐 작성일2013-07-11 조회수449 추천수0 반대(0) 신고

+샬롬(그리스도의 평화)

창세 37장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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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들은 여기서 떠났단다. '도탄으로 가자.' 하는 말을 내가 들었다. 그래서 요셉은
형들을 뒤따라가 도탄에서 그들을 찾아냈다. 그런데 형들은 멀리서 그를 알아보고, 그가
자기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그를 죽이려는 음모를 꾸몄다."(창세 37,17-18)

성경에서 말하는 도탄이라는 지명이 실지 지명인지는 잘 모른다. 그러나 신기한 것은
우리 말에도 도탄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 도탄이라는 말의 의미와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죽이려는 음모를 꾸미는 의미와 놀랍게도 통하고 있고, 또한 앞으로 요셉이 겪어갈
일들과도 그 의미가 통함이 놀라울 따름이다.

도탄의 국어사전의 의미는 이러하다.
"진흙탕에 빠지고 숯불에 탄다는 뜻으로, 생활()이 몹시 곤궁()하고
고통()스러운 지경()을 이르는 말"

아버지 야곱은 아들들이 스켐 근처로 양들에게 풀을 뜯기러 갔을 때에 요셉을 스켐에
보냈다. 그러나 요셉이 그곳에 도착했을 때 형들이 보이지 않아 헤메고 있었고, 그때에
어떤 사람이 "무엇을 찾느냐?" 하고 물었다. 이 질문은 참으로 의미 심장하게 들려 온다.
꼭 에덴동산에서 하느님께서 아담에게 하신 질문과도 같고 카인에게 하시는 질문과도
같은 느낌으로 들려온다는 점이다.

요셉에게 "너는 누구를 찾고 있느냐?"고 묻지 않고 "무엇을 찾고 있느냐?"는 질문은
요셉의 인생을 묻고 있는 것으로 느껴져 온다. 요셉, 그가 진실로 찾아야 하는 것은
무엇이냐고 물으시는 물음으로 들려 온다. 그러자 요셉은 이렇게 대답한다.

"저는 형들을 찾고 있습니다."(창세 37,16)

요셉의 이 대답의 의미는 무엇일까?
요셉은 이제부터 진짜로 형들을 찾기 위한 삶을 살겠다는 의지의 답은 아닐까? 하고
묵상해 본다. 사실 요셉은 형들을 잃어 버렸다. 아버지의 심부름을 왔으나 그곳에 형들이
그 현장에 없어서 찾는 찾음은 보이는 현상일뿐이지만 사실 요셉은 형들을 잃어 버렸다.
왜냐하면 성경은 이렇게 전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요셉을 늙으막에 얻었으므로, 다른 어느 아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였다.
그래서 그에게 긴 저고리를 지어 입혔다. 그의 형들은 아버지가 어느 형제보다 그를
더 사랑하는 것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정답게 말을 건넬 수가 없었다."
(창세 37,3-4)

형들은 자신들보다  더 사랑받고 있는 요셉을 미워하여 그를 사랑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요셉은 형들로부터 멀리 떠나 있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러니 요셉의
입장에서는 잃어버린 형들을 찾는 것이 그가 일생을 살면서 해결 해야할 숙제(?)
였을지도 모른다. 바로 그 고백을 요셉은 스스로 하고 있다고 느껴진다.

이렇게 묵상해 나아가는 가운데 놀라운 한 가지를 더 깨닫게 되었다.
사람에게 시기심이 들어오면 이미 그 시기심이 눈을 가려 더 이상 보지 못하는
장님이 되어 버린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사실 야곱이 요셉을 더 사랑한 것은 사실이다.
어찌 더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요셉은 야곱이 그토록 사랑했던 라헬의 아들이고 라헬은 이미 죽었다.
아주 많이 사랑하던 아내가 낳아준 아들이기도 하지만 생모가 없으니 더 마음이
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물론 더 불쌍한 베냐민이 있기는 하지만
사람은 그래도 첫 정이 더 있게 마련이다.

이러한 인간의 삶을 요셉의 형들이 이해할 수 있었다면...그러나 어찌하랴...
그러한 이해는 인생을 많이 살아보고 나서야 얻어지는 깨달음인 것을...
아무튼 요셉의 형들은 그러한 이해를 할 수 있는 철이 아직 들지 않았다.
그런데 성경을 통해 내가 본 야곱의 자식 사랑은 요셉의 형들이 본 사랑보다 더
많이 자식들을 사랑하고 있었다. 그것을 또한 요셉의 형들은 느끼고 깨달아야 할 것이다.

요셉의 형들은 아직 어려(?)서 시기심으로 눈이 멀어 아버지 야곱의 그 사랑을 다
볼 수 없었다. 아마 성경은 이처럼 아직 어려(?)서 요셉의 형들처럼 아버지의 사랑을
다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는 형들의 상태에서 그것을 보고 느끼고 깨달아 가는 여정을
소개하고 있다고 느껴져 온다...

야곱이 요셉을 더 많이 사랑한 것은 사실이지만 야곱이 요셉을 스켐 근처에서 양 떼에게
풀을 뜯기고 있을 아들들에게 요셉을 보내면서 하는 말을 들어보면 얼마나 다른 아들들도
사랑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네 형들이 스켐 근처에서 양 떼에게 풀을 뜯기고 있지 않느냐? 자, 내가 너를 형들에게
보내야겠다." 그러시면서 요셉을 그 험하다면 험한 길로 떠나보내는데 아무도 딸려 보내지
않고 홀로 보낸다는 사실을 묵상해 보았다.

일단은 아버지 야곱은 요셉을 믿고 있다는 점이다. 요셉이 사나이다운 면모도 갖추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요셉의 나이 열일곱 살인데 먼 길을 혼자서 갈 수 있을 만큼 성숙하다는
의미도 있고, 길을 가면서 부딪치는 어려움을 극복할 힘과 능력도 있음을 아버지 야곱은
알고 있었고 믿고 있었기에 그 멀고 험한 길에 다른 종들을 딸려 보내지 않고 요셉만
보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아무튼 그렇게 길을 떠나 스켐에 도착했으나 형들은 그곳에 없었다.
그들은 여기서 떠났단다. 그리고 도탄(?)으로 가자고 했단다.
그들은 스스로 도탄(?)으로 갔단다.

"진흙탕에 빠지고 숯불에 탄다는 뜻으로, 생활()이 몹시 곤궁()하고
고통()스러운 지경()을 이르는 말"

드디어 요셉은 도탄에서 형들을 찾아내었다.
"그런데 그의 형들은 멀리서 그를 알아보고, 그가 자기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그를
죽이려는 음모를 꾸몄다."(창세 37,18)

그리하여 요셉은 어떻게 되었는가?
"이윽고 요셉이 형들에게 다다르자, 그들은 그의 저고리, 곧 그가 입고 있던 긴 저고리를
벗기고, 그를 잡아 구덩이에 던졌다. 그것은 물이 없는 빈 구덩이였다."(창세 37,24)

물이 없는 빈 구덩이는 어떤 의미일까?
사람이 죽었을 때에 묻는 구덩이와 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형들은 이미 요셉을 그들 마음에서 죽였다. 죽여서 물(생명)이 없는
빈 구덩이(무덤)이에장사지냈다는 느낌이 다가온다.

그리고 여기서 더 놀라운 것은 그 물이 없는 빈 구덩이는 죽음의 장소가 아니라
은총과 은혜의 장소가 된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의인이 팔려 갈 때에 지혜는 그를 버리지 않고 죄악에서 구해 내었으며
또 그와 함께 구덩이로 내려가고 사슬에 묶였을 때에 그를 저버리지 않았다."
(시편 10,13-14)

요셉이 고백하고 있듯이 요셉이 잃어버린 형들을 찾는 여정 안에서
요셉이 요셉다울 수 있도록 인도하신 분은 누구이신가?
성경은 직접적으로 요셉이 언제 어디시 어떻게 하느님을 체험했는지 전하지
않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형들이 던져버린 그 물이 없는 빈 구덩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이 처한 가장 비참하고 절박하고 처참하고 희망이 전혀 없이 이제는 죽음이다...
끝이다... 그렇게 느끼는 그 현장에서 우리는 주님의 현존을 가장 잘 체험할 수
있기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물이 없는 빈 구덩이에 던져진 요셉은 그 구덩이에서 주님을 만나 어떤 대화를
나누었을까?... 이곳에서 나눈 주님과의 대화는 이후 요셉의 삶이 되었을텐데...
요셉과 하느님의 대화를 들으러 가야지...

창세 37장을 통해 나의 인생 여정을 본다.
요셉의 형들과 요셉이 겪고 있는 그러한 갈등을 나 역시도 살고 있음을 발견한다.
그렇다면 나는 요셉의 여정을 살고 있는 사람인가, 아니면 요셉의 형들의 여정을
살고 있는 사람인가? ...

아직 난 요셉의 형들이 갈등하고 있는 여정에 헤메이고 도탄(?)으로 가고 있는
여정 중에 있음을 본다... 동생을 죽일 음모(?)를 꾸미는 여정 중에 머물러 있음을
본다...

아, 이제 나도 요셉처럼 물 없는 빈 구덩이에 들어가는 여정을 맞고 싶다.
그리고 이제 주님을 독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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