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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3-07-11 조회수1,156 추천수10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3년 7월 11일 성 베네딕토 아빠스 기념일



As you go, make this proclamation:
‘The Kingdom of heaven is at hand.'Cure the sick, raise the dead,
cleanse the lepers, drive out demons.
Without cost you have received; without cost you are to give.
(Mt.10,7-8)



제1독서 창세 44,18-21.23ㄴ-29; 45,1-5
복음 마태 10,7-15

어제 재미있는 유머 하나를 보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도 한 번 맞춰 보세요.

“노처녀들이 가장 싫어하는 말은 무엇일까요?”

저는 시집가라는 말, 늙어 보인다는 말 등을 예상했지요. 그런데 정답은 다음의 말이라고 합니다.

“아줌마! 꼭 처녀 같아요!!”

어때요? 정말로 싫어하는 말이 될 것 같지 않습니까?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듣기 싫은 말이 있습니다. 또 반대로 들으면 기분 좋아지는 말도 있지요. 그런데 반드시 내가 듣고 싶은 말만 들어야 할까요? 기분이야 좋을 수 있겠지만 그러한 말이 꼭 내게 좋은 것이 아닐 때가 더 많습니다. 반대로 그 순간에는 듣기 싫은 말이지만 결국은 내게 도움이 되고 커다란 힘이 되기도 합니다. 따라서 듣고 싶은 말만 들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게 필요하고 유익한 말을 들을 수 있는 넓은 마음이 필요합니다.

어떤 청년은 자기 부모가 이야기하는 성당 가라는 소리가 그렇게 듣기 싫다고 합니다. 강요의 목소리로 들려서 성당이라는 소리만 들으면 짜증이 날 정도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부모가 왜 성당에 가라고 하는 것입니까? 자기 자신에게 무슨 혜택이 주어져서 하는 말일까요? 아니지요. 다 사랑하는 자녀 영혼의 구원을 위해서 싫어해도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제자들을 세상에 파견하시지요. 솔직히 당신이 뽑은 제자들의 모습은 그리 대단하지 못합니다. 부족함이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은 것들을 필요로 할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가지고 가지 말라고 하지요. 돈도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말라고 합니다. 그리고 받으려고만 하지 말고 거저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을 듣고 기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아무것도 주지 않고 파견하시고, 고생길이 훤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이렇게 파견을 했을 때 하느님의 권능과 사랑을 확실하게 체험할 수 있기 때문에 제자들이 듣기 싫어할 그러한 명령을 내렸던 것입니다.

결국 제자들은 이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따릅니다. 그리고 그들은 커다란 기쁨을 얻게 됩니다. 몸은 힘들지만 마음으로는 주님께 대한 사랑으로 더 큰 열정을 갖게 되었음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우리 삶 안에서도 주님의 이 명령은 계속됩니다. 정말로 따르고 싶지 않고, 듣고 싶지 않은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를 따를 때 과거의 제자들처럼 큰 기쁨과 행복을 얻게 될 것입니다.

 
다시 도전하라. 또다시 실패해도 좋다. 이번엔 한결 성공에 가까워져 있을 테니까(사뮈엘 베케트).


교구청 사제관 성당의 모습입니다.



노르웨이의 어느 어부의 이야기

노르웨이에서 있었던 어느 어부의 이야기입니다. 이 어부는 두 아들과 함께 바다로 나갔지요. 그런데 갑자기 세찬 바람이 불고 먹구름이 끼더니 폭풍우가 몰아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열심히 육지를 향해 노를 저었지요. 그러나 파도가 너무 거세서 방향을 잃고 만 것입니다. 더군다나 어두운 밤이 되니 더욱 더 어느 쪽이 육지인지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 불기둥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어부는 ‘저 불기둥 쪽이 육지일 거야.’라는 생각으로 이 불기둥만을 바라보면서 노를 저었습니다.

드디어 부두에 도착했고, 이들은 서로 부둥켜안으면서 살았다고 기뻐했지요. 바로 그 순간 아내가 울면서 다가와 말하는 것입니다.

“여보. 큰 일 났어요. 집에 불이 나서 홀라당 다 타 버렸어요.”

맞습니다. 먼 바다에서 보았던 그 불기둥은 바로 자기 집이 타면서 생겼던 것이었습니다. 물론 집이 전소된 것은 아내의 입장에서는 아프고 슬픈 일이지만, 자기와 아들들을 살릴 수 있었던 기쁜 일이 되었지요. 한쪽에서는 재앙의 불기둥, 다른 쪽에서는 희망의 불기둥인 것입니다.

어느 쪽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지금의 상황이 바뀔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고통도 선택적이 아닐까요? 이 선택은 바로 내 자신의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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