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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두려움이여 이젠 안녕/신앙의 해[234]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3-07-13 조회수378 추천수0 반대(0) 신고


                                                                         그림 : [공세리 성당] 입구

예수님은 전혀 두려워하지 말라신다.
하찮은 참새도 주님의 허락으로 땅에 떨어진단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두려워만 한다.
정체도 모르는 ‘막연한 두려움’에 열정을 빼앗긴다.
대부분은 ‘몰라도 되는 정보’를 너무 많이 알고 있는 탓일까?
주님께서는 우리의 머리카락까지도 다 세어 두셨단다.
그만큼 관심을 갖고 계신다는 거다.
그만큼 ‘나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는 말씀일 게다. 그분은 우리의 아버지이시기에.
 

아버지는 자식이 아무리 짜증내고 불평해도 마음속을 뚫어 보신다.
우리는 주님 앞의 어린이일 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두려워만 한다.
갈수록 어려워지는 경제적 빈곤을 염려한다. 돈 없는 미래가 될까 봐 전전긍긍이다.
이에 보험 광고는 틈새를 비집는다.
다들 이름값 하는 보험 하나만 들면 미래는 걱정이 없단다. 정말 그럴까? 
 

노후를 돈에만 의지한다는 건 잘못된 판단이다.
많은 이가 돈 없이도 건강한 노년을 산다. 행복한 노후는 돈이 좌우하지 않는다.
평소의 생활이 그대로 노년의 삶이 되는 게다.
그러니 돈과 재물이 부족하다는 이유만으로 위축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한 위축을 풀지 않으면 그대로 움츠린 노년을 맞는다.
사실 재물의 부족을 느끼지 않고 사는 이가 몇이나 될지?
모두가 현실을 받아들이며 사는 게 아닐지?

그렇지만 실상은 다소 두렵다. 위협받는 생명에 목숨 빼앗기는 일이 이어진다.
예전의 두려움보다 보다 지금은 만나는 게 더 무서운 세상이란다.
왜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영화나 각종 컴퓨터 게임에서 죽음의 테마가 너무 많이 다뤄진다.
생명의 존엄성은 무시된다.
참새 한 마리라도 그분의 허락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는데. 
 

이렇듯 생명은 우리 게 아니다. 움직이는 모든 것의 목숨은 주님께서 좌우하신다.
하느님만이 우리 영혼을 어루만지는 유일한 분이시다.
그래서 내 모든 걸 아시는 주님과 정직하게 대면하는 연습이 꼭 필요하다.
과장되고 왜곡된 내가 아닌 비천하고 죄스러운 그대로의 만남이
주님께는 더 아름다울 게다.
주님은 잘나고 죄 없다는 나를 사랑하시는 게 아닌,
죄인임을 고백하는 나를 더 사랑하시리라.
신앙의 해를 보내는 우리가 이렇게 주님을 만나면
두려움은 자연 저 멀리로 사라질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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