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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3-07-13 조회수818 추천수10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3년 7월 13일 연중 제14주간 토요일



No disciple is above his teacher, no slave above his master.
It is enough for the disciple that he become like his teacher,
for the slave that he become like his master.
(Mt.10,24-25)


제1독서 창세 49,29-31.33; 50,15-26ㄱ
복음 마태 10,24-33

스티븐 호킹 박사를 아십니까? 영국의 우주 물리학자로 빅뱅이론, 블랙홀 이론 등등 현대 물리학의 혁명적 이론을 제시했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갈릴레이, 뉴턴, 아인슈타인 다음으로 그를 물리학의 계보로 꼽습니다. 이렇게 대단한 업적을 이룬 스티븐 호킹 박사입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말하지요.

“내가 이룬 업적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살아 있다는 것이다.”

그가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하고 케임브리지 대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준비하고 있던 중에 몸속의 운동신경이 차례로 파괴되어 전신이 뒤틀리는 루게릭병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게 됩니다. 병원에서는 그에게 앞으로 1~2년밖에 살지 못한다는 시한부인생을 선고했지요.

그러나 그의 학문 인생은 이러한 진단을 받은 다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병 때문에 모든 것을 포기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자신의 병과 적극적으로 싸우면서 동시에 더욱 더 연구에 몰두해서 70세인 현재(1942년생임)까지 살아있는 것은 물론 세계적인 물리학자로 이름을 세상에 날리고 있습니다.

만약 그가 포기했다면 어떠했을까요? 그의 이름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한 주님께서 주신 그 놀라운 재능을 세상에 펼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이와는 달리 우리들은 얼마나 쉽게 포기하는지 모릅니다.

요즘 세상을 보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희망을 잃어버리고 절망을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주시는 희망을 받아들일 때, 이 세상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유보다 살아야 할 이유가 더 많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이 점을 힘 있게 말씀해주십니다.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

어떤 사람이 엄마에게 반지를 잃어버려서 속상하다는 말을 합니다. 그러자 엄마가 “괜찮아. 손가락은 그냥 있잖아.”라고 말씀하셨답니다. 반지를 잃어버리는 절망의 순간, 그녀는 반지를 다시 낄 수 있는 손가락을 보며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우리도 이렇게 희망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를 위해 세상의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창조하시고 이 땅에 보내신 하느님 아버지를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그분의 뜻을 거부하지 않으며, 그분께서 주신 삶을 절대로 소홀히 하지도 또 포기하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과연 누구를 두려워하고 있을까요? 썩어 없어질 세상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을 두려워하면서 지금의 삶에 충실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분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희망의 삶을 적극적으로 사는 것입니다.

 
시간은 세 가지의 걸음걸이를 가지고 있다. 주저하면서 다가오는 미래, 화살처럼 날아가는 현재, 그리고 멈춰 서서 영원히 움직이지 않는 과거가 그것이다(실러).


어제 점심식사 후 차 한 잔 마시는데 누가 찍어주셨어요.



죽을 날짜를 향해 걸어가는 우리

어느 왕이 매일 권력을 이용해서 사리사욕만을 채우는 자신의 동생을 불러 명했습니다.

“네 죄가 너무 크다. 일주일 뒤에 사형을 시키겠다. 그러나 특별히 불쌍히 여겨 일주일 동안이라도 왕처럼 즐길 수 있도록 해주겠다.”

동생은 이왕 죽을 바에야 왕처럼 실컷 즐기다가 죽자는 생각이 들어서 왕처럼 즐기면서 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이 되자 험상궂게 생긴 장사 한 사람이 그를 찾아와 외칩니다.

“이제 죽을 날이 엿새 남았습니다!”

장사는 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찾아와 외쳤습니다.

“이제 죽을 날이 사흘 남았습니다!”

동생은 장사가 찾아와 매일 이렇게 소리를 치니 얼마나 불안했겠습니까? 드디어 사형 집행 날이 되었고, 왕은 동생에게 “그래, 그동안 잘 즐겼느냐?”라고 물었습니다. 동생은 “저 장사가 눈을 부릅뜨고 시시각각 남은 시간을 말하는데 어떻게 즐길 수가 있겠습니까?”라고 대답했지요.

그러자 왕이 말했습니다.

“보이지 않을 뿐이지 누구나 하루하루 죽을 날짜를 향해 가고 있다. 그러니 어찌 시간을 헛되이 낭비하겠느냐?”

우리 역시 죽을 날짜를 향해 가고 있습니다. 혹시 이 죽을 날짜를 향해 가지 않는 사람이 있기는 할까요? 그 누구도 죽음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습니다. 그런데 매일 매일 얼마 남았다고 주님께서 이야기를 해주지 않아서 그럴까요? 하루하루를 무의미하게 보낼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 모두가 죽을 날짜를 향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면, 시간을 헛되이 낭비하는 어리석은 모습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인생의 시간이 한정되어 있는데도 나만은 영원히 살 것처럼 여기고 있는 내 자신의 모습을 반성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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