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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네가 이웃이 되어 주어라, 너 자신을 위해서라도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3-07-13 조회수824 추천수8 반대(0) 신고




2013년 다해 연중 제15주일


<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


복음: 루카 10,25-37






예수님께서 부활하시다


 MEMLING, Hans 작, (1491)


     < 네가 이웃이 되어 주어라, 너 자신을 위해서라도 >

             제가 초등학교 2-3 학년 때의 일입니다. 어머니께서 갈 곳이 없는 집 없는 아이를 집 주위에서 발견하셨습니다. 옷도 더럽고 얼굴도 더러운 말 그대로 거지였고 나이는 제 또래 쯤 되어보였습니다.

길에서 서성이는 그 아이를 보고 어머니는 그 아이를 들어오라고 해서 밥을 배불리 먹였습니다. 그리고 불쌍했는지 목욕도 시켜주시고 입던 옷은 버리고 대신 우리 옷도 꺼내 입히셨습니다. 아이가 집을 나와 갈 곳이 없다고 하자 어머니는 갈 곳이 생길 때까지 우리 집에서 지내라고 배려까지 해 주셨습니다.

우리 남자 넷, 즉 아버지, 형 둘과 나는 어머니의 이런 배려에 반대를 했던 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그저 갈 곳도 없고 불쌍하니 도와주자고 하였습니다. 저희는 마지못해 그 아이를 맞아들였고 그렇게 며칠이 지났습니다.

학교 갔다가 집에 왔는데 어머니께서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저희를 맞아주셨습니다. 아이가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삼형제가 열심히 모으던 돼지 저금통도 같이 사라졌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집 뒤란에 돼지저금통들이 배가 갈라져서 뒹굴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 것을 바로 눈앞에서 보고는 화가 치밀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누가 나의 이웃입니까?’라고 물어보는 율법 교사에게 네가 이웃이 되어 주어라라고 하십니다. 즉 같은 동족 중 가장 사랑을 많이 실천해야 하는 사제나 레위인까지 지나쳐 버린 강도를 만난 사람을 그 사람들로부터 벌레취급을 당하던 사마리아 사람이 도와줍니다. 이 비유는 그 도움을 받은 사람이 사마리아 사람에게 어떻게 보답을 했는지 나오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예수님은 나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라고만 하십니다. 그러다가 피해만 당하면 그 도와주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실화를 바탕으로 한 라이언 일병 구하기란 영화를 볼 때도 비슷한 생각을 했었습니다. 미국과 영국군은 프랑스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시행합니다. 작전은 성공했지만 많은 군인이 죽었습니다. 이 때 군입대한 라이언 4형제 중 3형제가 전사했다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결국 오늘이면 아들 셋의 전사 통보를 받을 어머니를 위해 막내아들 라이언을 귀환시키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전투 베테랑인 밀러대위는 상부로부터 얼굴도 모르는 라이언을 찾으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그리고 경험 많은 동료들과 라이언이란 군인을 찾아 나서고, 그 찾기까지도 계속 매복해 있는 독일군들에게 형제와 같은 동료를 잃어갑니다. 그 중 독일군 포로 한 명을 사로잡는데 밀러 대위는 그를 죽이지 않고 포로의 눈을 가린 채 계속 가다가 미군을 만나면 그 곳에서 항복하라고 보냅니다. 업햄이란 병사는 이렇게 불평을 합니다.

아주 잘하셨습니다. 저러다가 독일군을 만나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포로를 놓아주다니.”

천신만고 끝에 라이언을 만납니다. 밀러대위는 라이언에게 형제의 전사소식을 알려주고 귀대하라는 명령도 내립니다.

전 갈수 없어요.”

자기가 가면 이 곳은 무너지고 동료도 다 죽게 될 거라는 것입니다. 그의 완강한 거부로 밀러대위는 다음 선택을 합니다.

여기에 남자!”

미군은 전투준비를 합니다. 곧 적이 오고 적이 사정거리에 오자 공격을 개시합니다. 그리고 독일군의 엄청난 공격으로 미군은 밀리기 시작합니다.

업햄은 너무 무서워서 숨어 있다가 낯익은 얼굴을 봅니다. 밀러대위가 보내준 그 독일군 포로, 그가 은혜를 원수로 갚고 있는 장면이었습니다. 밀러대위와 함께 왔던 모든 사람이 죽고 결국 밀러대위도 다리를 폭파하려다 총탄을 맞고 죽어갑니다. 그리고 자신의 결정 때문에 함께 왔다가 죽어간 전우들의 처참한 모습을 봅니다. 그리고 라이언에게 이 한 마디를 합니다.

라이언 잘 살아야 돼!”

밀러대위는 다가오는 탱크를 막기 위해 권총을 꺼내 힘없이 쏩니다. 예닐곱 발 째 쏘는데 탱크가 터집니다. 아군비행기의 P-51의 폭격이었습니다. 그리고 곧 아군의 모습이 보입니다. 아군의 지원 병력이 온 것입니다. 독일군은 후퇴하고, 라이언은 살게 됩니다.

수십 년 후 백발노인이 된 라이언 그는 가족들과 함께 국립묘지에 왔습니다. 그는 밀러대위의 묘 앞에서 눈물을 흘립니다. 그리고 아내에게 묻습니다.

여보 나 잘살고 있지?”

그럼요.”

 

라이언 한 명을 위해서 수많은 사람이 희생됐습니다. 라이언은 그 희생을 잘 알기에 함부로 살 수가 없습니다. 사랑을 받아야만 그만큼 잘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웃이 되어주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 사람을 위해 죽어버린 수많은 이들은 무엇입니까? 또 살려주었더니 은혜를 원수로 갚는데 그 사람을 살려줄 필요가 있었을까요? 예수님은 도대체 손해 보는 이런 일을 왜 하라고 하시는 것일까요?

 

폼페이는 2000년 전 가장 부유했고 가장 타락했던 도시 중 하나였습니다. 화산으로 한 순간에 모든 도시 사람이 몰살 된 이 유적지에 가 보면 지금도 그들이 얼마나 향락에 취해 있었는지 똑똑히 볼 수 있습니다. 성적은 타락은 말할 것도 없고, 먹는 것도 즐기는 그들이었습니다. 귀족들이 파티 하던 방들의 바닥은 약간 기울어져 있습니다. 그들이 먹고 토해 낸 것을 하인들이 쓸어내리기 쉽게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그들이 건강하게 오래 살았을까요? 당시 평균 수명이 40이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향락으로 스스로를 망치고 있었습니다.

현대에도 가만히 보면 자신만을 위해 사는 사람들은 전혀 행복해 보이지 않습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우울증이나 불평으로 가득 찬 사람들은 남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들은 아닙니다. ‘마더 데레사 효과’(마더 데레사가 봉사하는 장면만 보아도 몸의 면역력과 행복이 증가한다는 이론)에서도 보듯이 오히려 이웃을 위해 살 때 나도 정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만약 부활이 없다면 그 죽음은 어리석음으로 남아있을 수밖에는 없었을 것입니다. 강도를 만난 사람을 도와 준 사마리아 인은 반드시 보상을 받아야 합니다. 그게 정의입니다. 다시 말해 이웃이 되어주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부활의 보상을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죽어야만 된다는 뜻이기도 한 것입니다.

 

어느 사람에게 하느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매일 저 바위를 굴려라.”

어느 날이었습니다. 깊은 마음속에서 심상찮은 불평이 치솟기 시작했습니다.

넌 왜 쓸데없는 일을 하니? 네가 그렇게 힘쓰고 애써도 결과가 무엇이니? 괜한 노력 낭비하는 것 아니니? 이 일을 계속한다는 건 의미가 없어.”

그래서 하느님 앞에 찾아갔습니다.

하나님, 이제 이 일을 포기하겠습니다. 이 일은 도저히 안 되는 일이네요.”

안 되지? 그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단다. 그러나 네 모습을 보아라. 너는 병약했지만 지금은 매우 건강하게 되었고, 내 뜻에 순종했으니 나의 사랑받는 아들이 되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도와주어서 그 사람으로부터 고마움을 받아야 보상을 받는 줄 알지만, 이미 가장 보잘 것 없는 형제 하나에게 해 주는 것들은 하느님이 직접 갚아주시고 계신 것입니다.

 

전신마비 아들 싣고 철인36차례 철인 3종 경기(3.9km 수영, 180.2km 사이클, 42.195km 마라톤)를 완주했고, 206차례 단축 3종 경기(1.5km 수영, 40km 사이클, 10km 마라톤), 64차례 42.195km 마라톤을 완주한 아버지. 마라톤 땐 휠체어, 수영 땐 고무보트, 사이클링 땐 보조의자에 아들 싣고 경기를 합니다. 은퇴한 지 오래인 아버지 딕과, 아버지가 미는 휠체어에 앉은 전신장애 아들 릭. 그러나 그들은 모두 철인입니다.

아들은 아버지가 없이는 할 수 없었다.”고 말합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없었다면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아들이 없었다면 아버지도 철인이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없었다면 그리스도도 구세주가 되실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이웃이 없다면 우리도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세상 모든 것은 정의롭습니다. 심은 대로 거두고, 잘 했으면 상을 받고 못 했으면 벌을 받습니다. 세상이 해결해주지 않는 정의는 각자의 마음 안에 있는 양심이 해결해 줍니다. 따라서 누군가 세상을 만들었다면 정의로운 분이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보상 받아야 할 행위를 하고 보상 받지 못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입니다. 지금은 손해 보는 것 같은 행위, 그것이 십자가의 죽음이고 이웃이 되어 주는 것이고, 또 속아주고 죽어주고 손해 보는 것, 이것이 이웃을 살리지만, 더 먼저 살리는 것은 바로 자신인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이웃이 되어 주기 위해 죽으셨다가 영원한 생명으로 부활하셨듯이, 우리도 그분 사랑을 본받아 모든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며 그분의 부활에 참여하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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