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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수님이 자기 안에 사신다는 게 무슨 말인지 웃긴다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3-07-14 조회수374 추천수0 반대(0) 신고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 또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제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나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너희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이고, 나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그가 제자라서  시원한 물 한 잔이라도 마시게 하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 <마태오 10, 34 - 11, 1  /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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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떤 경우에 <예수님께서 자기 안에 혹은 예수님께서 공동체 안에 사시는지>에 대하여 잘 이해하지 못하는 때가 있었습니다.이 가르침은 마치 현실적이지 않고 추상적으로만 여기고 있었던 때가 있었다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안에 사신다'고 하는 가르침이거나 '예수님께서 공동체 안에 사신다'고 하는 가르침은 도대체 무엇을 두고 하는 말씀이신지, 도통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살아 가기도 합니다. 어쩌면 예수님께서는 저 멀리 떨어져 계시는 듯이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자기 밖에서' 그리고 예수님을 '공동체 밖에서' 찾는다는 표현이 어울리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표현이 전혀 올바르지 않다 하고 말할 수도 없는 것은,  또한 분명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내면에 그리고 우리를 초월해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내면에 혹은 예수님께서 공동체 내면에 사신다,는 말이 뜻하고 있는 바는 초월화의 추상적이지 아니하고 실제로 현실화를 설명하고자 나타낸다고 할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과의 친밀한 결합을 의미하며 예수님과의 일치된 삶이다고 말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 저편이거나 바다 저편에 머무르시지 아니하시고 자기 자신이나 혹은 공동체로써의 우리 마음 안에 곧 우리의 내면 속에 머무르신다는 뜻을 표현해 내고자 함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눈에 보이시지 않으므로' 상당히 이해하기가 힘든 것입니다.

여기에서 오해할 수 있는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다시말하면 예수님과의 친밀한 결합과 예수님과의 일치된 삶은 눈에 보이시는 예수님과의 결합되어진 일치된 삶을 뜻하고있는 것을 말함이 아닙니다. 어떤 환시에 사로잡혀서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안에, 공동체 안에 사신다 혹은 머무르신다고 하는 예수님과의 결합 내지는 예수님과의 일치된 삶은, 예수님 말씀의 가르침과 사랑의 행적을 밝혀준다고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그 가르침의 사랑이 자기 안에 그리고 공동체 안에서 활동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자기 안에 그리고 공동체 안에 사신다고 말하는, 예수님과의 결합된 말씀의 삶이며 또 한편 예수님과의 일치된 사랑의 삶입니다. 이는 추상적이지 않고 현실적인 것이 분명한 일입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사랑에서 결합이고 일치인 것입니다.

자기 안에서 '말씀'이 살아 있는지 또 자기 안에서 '사랑'이 살아 있는지 그리고 공동체 안에서 '말씀'이 살아 움직이고 있는지 또 공동체 안에서 '사랑'이 살아 움직이고 있는지, 하는 점에서 예수님과의 결합과 일치. 곧, 예수님께서 자기 안에 혹은 공동체 안에 사신다는 것을 밝혀 줍니다.

자기 안에서 예수님의 <말씀과 사랑>이 살아 숨쉬지 않고, 공동체 안에서 예수님의 <말씀과 사랑>이 살아 움직이지 않는다면 자기 안에, 공동체 안에 예수님께서 사시는 게 아닌 것입니다. 자기 및 공동체는 예수님과 결합하지도 일치되지도 않은 것입니다.

그러한 까닭으로 자신과 공동체는 예수님의 사랑을 행동할 수 없게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실행할 수가 없게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실행하는 사람이 행복하다 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예수님의 사랑을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 진정한 '하느님 나라의 공동체'가 되어 집니다. 

"이제는 내 안에 내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사신다"는 성경 말씀이 있습니다.  자신과 공동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다는 것은, 자신과 공동체의 제자들이 예수님 안에 있을 때입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사랑 안에 있을 때입니다. [내 안에 머물러라.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요한 15, 4 참조)]  말씀하신 예수님이십니다.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요한 8, 31)  너희가 내 안에 머무르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무르면 너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청하여라.(요한 15, 7)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요한 15, 9)]고 가르침을 주셨는데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음은 누구의 권세에 따르려고 하는 것입니까. 

자기 혹은 공동체는 예수님의 말씀 안에 있고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이 자기 혹은 공동체 안에 살아 있는지요. 그리고 또 한편으로 자기와 공동체는 예수님의 사랑 안에 있으면서 자기 및 공동체 안에 예수님의 사랑이 살아 움직이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자기 안에, 공동체 안에 사시지 않을 때에는, 먼저 자기와 공동체가 예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사랑 안에 머무르지 않았다는 것을 심히 깨달아야만 합니다. 그래야지 회개를 할 수 있게 되고, 예수님의 말씀과 사랑 안에 머무르도록 노력할 수 있는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순종하는게 쉽지않다 하거나, 사랑을 행동하는게 어렵고 힘들다고 하는 것은 자신과 그 공동체가 예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사랑 안에 머물지 않고 그런 까닭에 예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사랑이, 자기 안에서 및 공동체 안에서 살아 움직이지 않는 이유 때문입니다. 그러하기에 쉽지않고 힘들며 어려운 것이 됩니다.

인간의 자기 능력의 힘으로써 말씀의 순종과 사랑의 행동이 가능했다면, 예수님 곧 그리스도께서 오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악에 의해서 고통이 일어나고 죄에 의해서 죽음이 벌어지는 것은 인간에게 그런 능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것이 자기와 공동체를 구원하는 일입니다. 그리스도는 이미 끝난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는 이제 없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여전히 살아 움직이시며 우리 안에서 사신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인간의 힘이 아니라,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힘이시다는 말씀(1코린토 1, 24 참조)을 온전하게 받아들여야만 합니다.그래서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자신과 공동체는 예수님의 사랑을 행동할 수 있으며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지혜이십니다.(상동 참조) 그래서 지혜의 말씀인 예수님의 말씀을 실행할 수가 있게 됩니다. 

여기서 혹시 <그리스도가 어디에 있느냐>고 물으십니까.여기에 저기에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예언해 주셨습니다. 말씀이 무엇이며 성체가 무엇인지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오심을 헤로데 처럼 부정하지 아니하고, 또 고통과 죽음의 죄악을 범하지도 않으며 그 반대로 오히려 예수님 따라 성체성사적인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하셨습니다. '예수님과의 일치'로 말씀과 사랑의 삶을 산다고 하여도 인간의 고통에 밀접하게 결합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적 고통에 결합되지 않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길을 따르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십자가의 길은 그리스도 고통의 길인 것입니다. 

인간의 고통 그것도 인간에 의해서 버려진 인간의 고통에 결합하지 못하면 예수님과의 진정한 결합이 아닙니다. 특히, 버려진 이들 중에서 거친 삯꾼들과 가짜 제자들에 의해서 또 다시 버려지는 가장 보잘것 없는 한 형제 인간(아기, 노약자)의 고통을 모른다면 그리스도의 고통에 결합하지 않음이며 예수님의 십자가 길을 따르지 않음 입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사랑 안에 머물지 못한 관계로, 예수님의 말씀과 사랑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예수님의 말씀과 사랑을 없애어 버리며, 인간의 불행을 안겨주는 악의 고통과 죄의 죽음을 자신과 공동체 안에 자리를 잡도록 만듭니다. 행복한 성가정의 집을 만들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사랑이 그들 안에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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