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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자신을 비우거나 자신을 버리지 못하는 영성적 고찰 [다른 측면]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3-07-14 조회수461 추천수1 반대(0) 신고

버림과 따름 (마태 10,37-38)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루카 14, 26> /  “제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나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마태 10, 39> /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나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어머니나 아버지,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토지를 백 배나 받을 것이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 <마르 10, 29 -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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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림 혹은 비움>에서 지난 어떤 사람의 일들을 하나 기억합니다. 물론 그 사람에게만 국한되는 일들이다 하고 지금 말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은 자주 어떤 일들에 있어서 '자기 비움'을 이야기 합니다. 무슨 일에서나 자기 자신에게 '자신을 버려야 한다' 라고 자신에게 말을 했었다고 할 것입니다.그래서 어느 누구보다도 <나 홀로 수덕>에 열정적으로 매진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그런데 자기를 버리기(비우기) 위해서 그가 <나 홀로 수덕>하는 대단한 것들은 보았지만, 일상의 삶에서 나타나는 수덕의 열매는, 볼 수가 없었습니다. 도리어 온갖 규정들이 그 자신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서의 그 규정들이란, 자기 버림을 가능하게 해 주는 자기 비움의 규정들이었다 싶습니다.자기 버림을 위해서 자신이 설정한 <자기만의 비움 규정들>인 것입니다.쉽게 말하면 온갖 <비움의 율법> 속에 자기 자신이 얽매여 갇혀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하니 모든 자신의 일상적인 삶은 '사람의 냄새가 나지 않는' 성전주의 였으며 율법주의적 말씀의 행동으로 살고자 하는 것들이었다 할 것입니다. 은총의 삶이 아니라 행위의 삶이 그 자신을 이루었습니다. 말씀은 은총의 삶인데 도리어 율법의 삶이 되었습니다. 

그가 지향하고 있는 자기 비움(자기 버림)의 <나 홀로 수덕>의 노력은 누구라도 쉽게 따라가지 못한다고 할 수 있지만 그것이 자신에게 대하여서는 '의인'이라 여기게 하고 남들에게 대하여서는 '자기 규정'(율법)들에 따른 '자기 판단'이 무엇보다도 우선시 됩니다.즉 남들에게 비인간적인 지적을 많이 한다는 뜻입니다. 사랑도 연민의 마음에서 사랑한다고 말하기 보다 행위 측면에서 보여주려고 하는 사랑이었습니다. 열매는 다같은 열매인데도 잘 익은 좋은 열매가 있지만, 속이 썩은 나쁜 열매도 있는 것이다라는 표현이 적절하였습니다. 온갖 규정들만 따지니 사람의 냄새는 나지 않고 규정을 갖고 형제들간의 다툼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아뭏든 사람은 자기 비움 혹은 자기 버림에서 <나 홀로 수덕>으로써는 자신을 버리지도 혹은 자신을 비우지도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자기를 버린다거나 자신을 비운다거나 하는 생각에는 <버리고자 혹은 비우고자 하는 자아>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버리고자 (비우고자) 하는 자아> 마저도 없을 때에, 진정 자기 버림이며 자기 비움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자기 안에는 '또 다른 자기' 다시 말하면 내면의 '다른 자기' 곧 '자아'라는 것이 있습니다모든 것을 버렸다고 하는 자기 안에는 실제로 <버리지 못한 자아>가 여전히 남아있기도 하는 것입니다. 자기 겉으로는 모든 것을 버렸다고 혹은 비웠다고 하여도 자기 안으로는 오직 <버리지 못하는 자아>가 남아 있기가 마련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본래 모습입니다.

모든 것을 버렸다고 할지언정 자아 마저도 버리지 못하면 참으로 버림(비움)이 아닙니다인간은 고유한 자신의 본래 모습이 되는 내면의 모습인 자아를 버릴 수 없습니다.우리는 이를 어쩌면 자기 영혼이다고 말하기도 합니다."영혼은 육체의 형상"(교리서 365)입니다

자기 안의 '자아'라고 할 수 있는 자기 내면의 마음속에 깊은 영혼은 바로 '자기'가 됩니다
따라서 '자기 비움과 자기 버림'이라는 것은 실제로 자기를 비운다거나 또는 자기를 버리는 게 아니라 <자신을 내어 준다>는 의미가 더 합당하다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당신 자신을 내어 주셨습니다. 자신을 버린(비운) 상태에서, 자신을 내어 줄 수 있는 당신 자신 자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하느님이 될 수 없기에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자신을 내어 주셨습니다. 인간은 예수님이 될 수 없기에 예수님께서 인간에게 자신을 내어 주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몸과 영)를 받은 이들은 하느님의 신성에 참여하고 하느님의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는 것입니다.하느님 자신이 자신을 버렸거나 자신을 비웠다면 "하느님이 없는" 구원의 생명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 가고 마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도 그리고 예수님께서도 우리에게 자신을 비우거나, 자신을 버리지 아니하신 것을 두고 인간이 <나 홀로 수덕>으로 자신을 비우거나 자신을 버리고자 성취하려고 하려는 의도는 부작용만 초래하기에 당연한 것입니다.하느님께서도 예수님께서도 당신 자신을 내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그리스도의 몸)을 모시는 우리 자신도 고유한 자기 자신을 내어 줄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성체성사적인 사랑의 예수님 삶입니다.  

여기서도 다시 강조됩니다. 자기 안에 혹은 공동체 안에 <예수님께서 사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몸과 영을 내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자기 버림이며 자기 비움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 안에 그리스도로만 존재하시고 우리에게 '내어 주시지' 않았다면 자기 버림이 아니고 자기 비움이 아닌 것입니다. 성체성사는 존재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자기 비움과 자기 버림은 <자기 소멸이 아니고 자기 내어 줌>이다 하겠습니다. 

자기 안에 자아가 있을 때 이 자아의 모습이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아" 갑니다.자기가 비워지고 자기가 버려진 상태에서는 "예수님의 힘으로" 자기가 변화될 수 없습니다.자기가 비워지고 자기를 버려야만 예수님을 모실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나 홀로 수덕인 자신의 힘으로 그리스도를 닮고자 하는 일입니다. 허나 자기를 비우거나 결코 버리지 못합니다. 

예수님과 결합한다거나 혹은 그리스도와 일치한다는 것은 '자신의 힘'이 아니라 "예수님의 힘"(하느님의 힘)으로 자기 안에 혹은 공동체 안에 예수님께서 사시며 자기 자신과 예수님과의 결합과 일치인 것입니다.그리하여 자기 및 공동체는 그 자신이 그리고 그 공동체가 존재의 실체를 지니고 예수님을 따르는 (예수님처럼) 곧 자신을 내어 주는 사랑의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을 내어 줄 때, 자신을 완전하게 비웁니다. 자신을 내어 줄 때, 자신을 완전하게 버립니다. 자신을 내어 주지 않으면 자신 안에 자기가 있을 뿐입니다. 이것은 하느님에게서 온 사랑이신 예수님의 사랑이 아닙니다.하느님께서는 자신을 내어 주신 사랑이십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자기 안에 및 공동체 안에 사시면서 예수님을 따라 사랑으로 자신 및 공동체를 내어 줄 때가 참으로 자신을(공동체를) 버리거나 비우게 됩니다 이 말의 뜻은 소멸이 아니고, 자기 및 공동체 자신의 탐욕을 없애 '예수님의 사랑을 참으로 행동하게 되어진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를 비워서 (버려서) 예수님의 말씀과 사랑을 행동할 수 없으며, 이런 이유 때문에 말씀의 순종은 쉽지 않고 사랑은 힘들고 어렵다라고 말하게 됩니다. 자신을 버리거나 비운다는 것은 인간 자신의 본래 모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영혼은 하느님에게서 창조되었듯이, 인간 본래의 모습은,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아 자신을 내어 주는 것입니다. 그분의 내어 주시는 모습을 자신 안에 담아 '내어 주면' 완전하게 비워집니다

자기 십자가에서 자신을 내어 주는 그리스도 십자가 삶입니다. 우리는 이를 '예수님의 자기 비움'이라고 말하지만 실상은 성체성사에서 분명하게 보듯이 '자신을 내어 주심' 입니다. 자신을 내어 주시는 예수님께서 자기 안에 오시면 우리는 예수님의 힘으로 자신을 비우게 됩니다. 반대로 자신을 비워서 예수님께서 자기 안에 오실 수 있는 게 아닌 것입니다.

그리스도란 무엇일까요. 인간이 할 수 없기에, 그리스도께서 오신 것입니다. 이것이 은총의 힘입니다. 수덕이 필요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먼저는 은총이고 다음은 수덕이다 할 것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은총의 힘으로> 속이 썩지 않은 '좋은 열매'를 맺게 한다 할 것입니다.  

집이나 형제나 자매, 어머니나 아버지,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이 모든 것들을 소멸시킨 것들이 아니라 이 모든 것들을 '사랑 때문에'(나와 복음 때문에) 내어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께 봉헌한다고 말합니다. 하느님께 이 모두를 봉헌으로 내어 드립니다
그리고 사랑으로 자신을 자기 십자가에서 고통 당하는 이웃에게도 내어 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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