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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칼을 주러 왔다 / 반영억라파엘 감곡매괴 성모성당
작성자김세영 쪽지 캡슐 작성일2013-07-15 조회수1,050 추천수12 반대(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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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보나벤투라 주교학자 기념일

 
 
    < 나는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 마태오 10,34─11,1

     
 
 

        칼을 주러 왔다

 
칼은 좋은 것입니다. 꼭 필요합니다. 주방에서도, 과일이나 연필을 깎을 때에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사람을 위협하는 엉뚱한 일에 쓰이기도 합니다. 좋은 것이지만 잘못 쓰임을 받으면 좋지 않은 것이 되고 맙니다. 칼은 칼로 존재하는데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서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만들어진 목적에 따라 잘 사용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를 당황하게 만듭니다. 더군다나 아들이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갈라서고 집안 식구가 바로 원수가 된다고 하니 정말 귀가 막힐 일입니다. 어찌 구원자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나요? 사랑 자체이신 분이 이리 무서운 말씀을 하시나요?
 
그러나 하느님의 나라는 이렇게 옵니다. 죄악을 거부하는 결단의 칼을 써야 합니다. 매 순간 선을 선택하는 결단의 칼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운명은 분명 다르게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주님께서는 구원을 원하시지만 칼을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서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한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칼의 의미를 잘 알아야 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구원의 투구를 받아쓰고 성령의 칼을 받아 쥐십시오. 성령의 칼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에페6,17) 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4장 12절에서는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찔러 혼과 영을 가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냅니다. 하느님 앞에서는 어떠한 피조물도 감추어져 있을 수 없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말씀 받아들여 참된 경외심과 두려움을 갖는 사람과 그릇된 욕망을 가진 사람을 갈라놓는다는 말씀으로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로 향할 것인가? 아니면 돌아설 것인가? 이에 대한 태도는 집안 식구가 다 각각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서로의 견해가 다르고 받아들이는 믿음의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원수가 될 수도 있습니다. 특히 집안 식구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집착’에 빠져 옭아맬 수 있어 서로의 마음이 상하고 적대감을 지닐 수 있으며 큰 원수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할 것은 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 라고 해야 합니다. 갈라진 마음이나 어정쩡한 결단으로는 결코 아무것도 얻을 수 없습니다. 다른 무엇에 앞서 주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다음이 사람입니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마태10,37).
 
결국은 성령의 칼을 선택함으로써 그 모든 것이 하느님 안에서 열매 맺게 되고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로 넘쳐 나게 될 것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 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요한 14,27) 하느님을 우선 선택하면 다른 모든 것은 덤으로 얻게 됩니다. 하느님을 얻으면 부모와 형제와 이웃을 새로운 양식으로 사랑하게 되고 결코 원수가 될 수 없습니다. 하느님 안에서 하느님을 위하여 더 큰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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