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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3-07-17 조회수909 추천수15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3년 7월 17일 연중 제15주간 수요일



I give praise to you, Father, Lord of heaven and earth,
for although you have hidden these things
from the wise and the learned
you have revealed them to the childlike.
(Mt.11,25)


제1독서 탈출 3,1-6.9-12
복음 마태 11,25-27

어떤 신부님께서 자신의 은퇴 미사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사제생활을 하면서 꼭 지키려고 노력한 것 중 하나가 돈에서 멀어지려는 노력이었다.”

그 이유가 자신이 사제서품을 받을 때 은사 신부님께서 “자기 지갑에 정확히 돈이 얼마나 있는지 세지 말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 말씀을 잊지 않고 지켜왔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사제가 돈에 대해서 신경을 쓰고 집착을 하면 영적인 삶에 자유롭지 못하게 됩니다. 이는 일반 사람들도 마찬가지이지요. 매일 ‘돈, 돈, 돈’만을 외치는 사람은 기도 중에도 똑같이 ‘돈’에 대한 이야기를 주님께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의 일을 하는 것보다 세상의 돈에 대한 관심이 주님으로부터 더욱 더 멀어지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책에서 ‘조금만 덜 원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라는 구절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일생을 살아가면서 돈이 얼마나 많아야 만족할 수 있을까요? 돈이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 아닐까요? 그래서 지금보다 더 많이 모으려는데 온 관심을 집중합니다. 하지만 잘 생각하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데 큰 불편함이 없을 정도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여기에 남을 도울 수 있는 여력까지 있다면 더욱 더 좋은 것이고요. 그 이상의 돈은 어쩌면 필요 없는 돈이 아닐까요?

물론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필요 없는 돈에 신경을 쓰는 사람들이 지혜로운 사람으로 취급받습니다. 그에 반해서 그냥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데 큰 불편함 없다면서 지금의 삶에 욕심 없이 만족하는 사람들을 향해서는 철부지라는 말까지 이야기하지요. 그러나 과연 누가 더 행복할까요?

예수님께서 오늘 복음을 통해 하느님 아버지께 찬미와 감사의 기도를 바치십니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여기서 철부지는 나이가 어려서 철부지라고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철부지라는 것이지요. 세상의 것보다는 주님의 뜻을 따르려는 사람, 이 세상 것에 대한 욕심보다는 주님께 대한 사랑이 가득한 사람,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것을 최우선에 두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최우선에 두는 사람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향해 세상은 “아직 철이 들지 않았나봐, 저렇게 세상을 몰라?”라는 말을 던지거든요. 그러나 어떠한 사람을 주님께서는 더욱 더 좋아하십니다.

바로 이러한 철부지들에게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졌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모습은 세상 사람들이 원하는 물질을 쫓는 지혜로운 사람일까요? 아니면 주님께서 원하시는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철부지라고 말하는 그런 삶을 쫓고 있을까요?

비록 세상 사람들에게는 철부지라는 말을 들어도 주님으로부터는 인정받았으면 합니다.

 
배우자나 자녀한테는 기대가 아니라 희망을 지녀야 한다. 기대는 나를 위한 것이고 희망은 상대를 위한 것이다(송봉모).


철부지 어린아이. 주님께서는 이런 어린이를 더 사랑하십니다.



주님의 일에 있어서 더 이상 타협하지 맙시다

언젠가 어떤 분과 대화를 나누다가 이런 말씀을 들었습니다.

“신부님, 먹고 살려다보니 어쩔 수 없이 주일미사를 지킬 수가 없네요.”

그래서 제가 이야기했습니다. “아니 새벽부터 일하세요? 정 주일에 바쁘시면 토요일 저녁미사라도 참석하시죠? 또 주일 늦은 시간에 미사를 하는 곳도 있으니 그곳에 가셔도 되잖아요.” 그러자 “피곤해서 새벽과 저녁에 나갈 수가 없어요. 저도 좀 쉬워야지요.”라고 말씀하시네요.

많은 분들이 어쩔 수 없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타협을 하시고 변명을 늘어놓습니다. 그런데 왜 주님의 일에서만 타협해야 할까요? 세상의 일에 대해서는 주일에도 일해야 할 정도로 타협하지 않으면서, 주님의 일에서는 끊임없이 타협하는 우리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주님께 충실하면서도 일을 할 수 있는 상황은 찾지 않으면서 무조건 이해해 달라는 뻔뻔함만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주님과 이런 식으로 타협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대신 주님께 충실하고 주님의 일을 하는데 최선을 다하는 우리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비록 세상 사람들에게는 ‘철부지’라는 말을 듣게 되겠지만, 주님으로부터는 가장 큰 사랑을 받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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