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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느님 체험 - 2013.7.17 연중 제15주간 수요일,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3-07-17 조회수434 추천수7 반대(0) 신고

2013.7.17 연중 제15주간 수요일 탈출3,1-6.9-12 마태11,25-27

 

 


하느님 체험

 

 


“하느님, 당신은 저의 하느님, 저는 당신을 찾습니다.

   제 영혼이 당신을 목말라 합니다.”(시편63,2ㄱㄴ).

 

바로 이게 사람입니다.
하느님을 찾는 사람입니다.

 

하느님 체험은 우리 삶에 사치가 아니라 필수입니다.
하느님을 만나야 참 사람, 참 나가 됩니다.

하느님 체험 없으면 영원히 반쪽 인생입니다.
무의미와 허무에 영혼의 몸살을 앓는 것은 하느님 체험 부재에서 기인합니다.

오늘은 ‘하느님 체험’에 대한 묵상을 나눕니다.
두서없이 여러 예화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사제 생활 60주년을 맞이한 한국 나이로 85세 고령이나 영원한 청춘을 사는
두봉 주교님의 인터뷰 내용이 흥미진진합니다.

 

“사는 것이 참 기쁘다.
   사는 것 자체가 재미있고 오늘 이 시간이 행복이고 고맙다.”

 

하느님 체험의 생생한 증거입니다.

아침 성무일도 중,
‘내 마음이 당신을 향하여 있사오니, 주여 이 종의 영혼에게 기쁨을 주소서.’
시편구절 그대로입니다.

 

 

 

‘건반위의 구도자’ ‘음악의 순례자’ ‘학자와 같은 피아니스트’
‘완벽주의자’ 등 무수한 별명을 지닌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백건우 씨의
인터뷰내용도 그대로 하느님 체험의 반영입니다.

 

“연주자라면 당연히 연습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나는 매일 꾸준히 5-6시간 연습한다. 
  그 이유는
  수준을 유지하려는 것이 아니라 항상 음악이 새로워져야 하기 때문이다.”

 

음악을 통해 하느님을 만난 분이 분명합니다.

‘연주자’ 대신 ‘신자’로, ‘연습’ 대신 ‘기도’를 넣어
‘신자라면 당연히 기도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나는 매일 꾸준히 5-6시간 기도한다.
그 이유는 수준을 유지하려는 것이 아니라
항상 내가 새로워져야 하기 때문이다.’로 바꿔도 그대로 통합니다.

백 건우씨에게 피아노 연습은 일종의 기도와도 같습니다.
과연 하루 하느님 체험을 위해 5-6시간 기도합니까?

 

“음악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얼마나 깊이가 있는가?
인간의 힘으로 쓸 수가 있는가? 하는 느낌을 받곤 한다.
그런데 내 생각으로는 이런 음악은 인간의 힘만으로는 안 되는 것 같다.”

 

하느님은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얼마나 깊습니까?
그대로 백건우 씨의 음악을 통한 하느님 체험의 고백 같습니다.

 

 

 

어느 자매의 하소연도 생각납니다.

 

“주님을 만나고 싶은데 도저히 시간과 공간이 없습니다.
설상 시간과 공간이 나도 너무 피곤해 기도하기 힘듭니다.
매일 정오 12시에 마트에 출근하면 밤 12시까지 중노동입니다.
꼭 군대 같고 전쟁터 같습니다.
밤 12시에 마치고 집에 와 정리하면 새벽 3시쯤 잠을 자면 아침 9시쯤 일어나
이리저리 바삐 서둘러 매일 미사하고 그러다가 12시까지 출근합니다.

3일 만에 한 번 쉬지만 제대로 쉬지도 기도도 못합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어떻게 주님을 만날 수 있겠는지요.

흡사 현대판 노예의 삶 같습니다.
살기위한 자발적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모든 일을 혹독하게 시켜 히브리인들의 삶을 쓰디쓰게 만들었다’는
이집트인들의 박해가 생각납니다.

히브리인들을 노예처럼 부린 파라오와 이집트 백성들의 정체는 뚜렷한데
현대판 노예화를 이끄는 정체는 찾아내기가 참 힘듭니다.

거대한 '사탄의 시스템' 안에 노예가 되어 살아가는 우리들은 아닌지
깊은 성찰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 체험에 불리하기 짝이 없는 환경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기위해 하느님을 체험해야 합니다.

 

성경 묵상을 통해, 전례를 통해, 자연을 통해, 노동을 통해, 공동체를 통해
하느님을 체험해야 합니다.

망가져가는 자연, 노예화된 노동, 황량해진 내면 등
하느님 체험엔 정말 악조건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찾는 이에게 길은 열립니다.

하느님은 언제 어디에나 계시고 때가 되면 당신을 찾는 우리를 만나 주십니다.
마음 가난하고 순수해질 때 주님은 찾아오십니다.

 

 

 

모세와 예수님의 하느님 체험 장면이 참 고무적입니다.

 

광야에서 양떼를 치며 가난과 고독, 침묵의 여정 중에 마음 순화되어
때가 되었을 때 모세를 찾아오신 하느님이십니다.

 

“모세야, 모세야!”

 

“예 여기 있습니다.”

 

“이리 가까이 오지 마라.
  네가 서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

 

떨기나무 불꽃 속에서 모세를 만나는 주님이십니다.
흡사 광야에서 주님을 만났고, 또 주님과 씨름했던 야곱을 연상케 합니다.

 

눈만 열리면 지금 여기가 하느님을 체험하는 거룩한 땅입니다.

이어 하느님은 모세에게 이집트 파라오의 치하에서 종살이 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 사명을 부여하십니다.

하느님은 자신 없어 하는 모세를 격려하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네가 이 백성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면,
  너희는 이 산 위에서 하느님을 예배할 것이다.”

 

얼마나 가슴 벅찬 해방의 약속인지요.

파라오를 섬기는 종살이에서
하느님을 섬기는 자유인에로의 전환을 약속하십니다.

바로 미사와 성무일도의 공동전례를 통한 하느님 예배가
우리 모두 하느님을 체험하여 자유롭게 하는 은혜의 장임을 깨닫습니다.

 

 

 

오늘 복음은 그대로 예수님의 아빠, 하느님 체험을 반영합니다.
공관복음 안에 유일한 예수님의 찬양기도이자 감사기도입니다.

철부지 같이 순수한 마음의 예수님 안에 환히 계시된 진리입니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대우(大愚)가 대지(大智)라는 역설이 성립함을 봅니다.
정말 철부지 순수한 마음의 예수님과 제자들, 대우 같으나 대지의 사람들입니다. 대우의 철부지 순수한 마음일 때 주님을 만나 대지의 충만한 삶입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5,3).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마태5,8).

 

그대로 철부지 순수한 이들에 대한 주님의 축복 선언입니다.

 

 

 

이 거룩한 미사시간,
우리 모두 가난한 마음, 깨끗한 마음으로 좋으신 주님을 만나
새롭게 태어나는 복된 시간입니다.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내 안의 모든 것도 거룩하신 그 이름을 찬양하여라.
  …그 분의 온갖 은혜 하나도 잊지 마라.”(시편103,1-2).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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