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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소나무 신부와 함께 하는 마음의 산책(7/18 연중 제15주간 목요일 복음묵상)
작성자신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3-07-18 조회수583 추천수7 반대(0) 신고
소나무 신부와 함께 하는 마음의 산책

2013년7월18일 연중 제15주간 목요일 복음묵상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마태오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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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복음과는 상관없는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작년 12월12일에 같은 구절을 묵상해서 올렸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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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칭(天秤)

10년이 넘은 일로 기억한다. 어느 TV 프로그램에서 본 내용이 떠오른다.
잠시 기억을 토대로 각색을 해본다.
어느 병실에 손발을 제대로 쓸 수 없는 환자 둘이 각각의 침대에 누워있다.
침대 하나는 창가 쪽에 다른 하나는 병실 문 쪽에 놓여져 있다.
두 사람은 열심히 무엇인가를 이야기하고 있다.
창가 쪽에 누워있는 환자가 바깥세상을 또 다른 환자에게 열심히 설명하고 있다.
“아름답게 꽃이 피었어요. 정말 대단해요. 엄마가 유모차를 끌고 오네요.
아아, 정말 다정해 보이는 연인들이 이야기를 주고받네요.
눈이 소복하게 쌓여있어요. 강아지들이 신나게 뛰어 노네요.”
그 이야기를 병실 문 쪽의 환자는 열심히 듣고 있다.
마치 이야기를 통해서 바깥세상을 구경이라도 하듯이 얼굴에는 여러 가지 표정들이 순간순간 지나간다.

이야기를 전해 듣는 환자는 속으로 생각한다.
“저 사람은 참 좋은 사람이야. 저 사람이 없었다면 참 힘들었을 거야.”
두 사람은 닫힌 공간 안에서 둘 도 없는 친구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이다.
갑자기 창가 쪽에 누워있는 환자가 고통스러운 신음소리를 낸다.
그 소리에 문 쪽에 누워있던 환자가 눈을 뜬다. 너무 고통스러워 보이는 소리다.
불편한 손을 움직여 간호데스크에 연결이 되어있는 비상벨 줄을 당기려고 한다.
그런데 웬일인가? 당기려고 하던 손이 이내 머뭇거리고 있다.
“사람의 명줄은 하늘에 달려있는 것이 아닌가? 내가 이 줄을 당긴다고 해서 죽을 사람이 살 것도 아니고
당기지 않는다고 해서 살 사람이 죽을 것도 아니잖아.
혹시 저 사람이 죽을 운명이라면 내가 저 침대를 차지할 수 있고
창문 바깥세상을 모두 차지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아니다. 그럴 수는 없어.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나는 최선을 다해서 저 사람을 살려야 한다. 줄을 당겨야 한다.
아니야. 좀 더 나에게 솔직 하자. 별 일 없을 거야. 아니라도 할 수 없는 일이고.”

날이 밝았다. 물건을 옮기는 듯 한 소리에 병실 문 쪽 침대에 자던 이의 눈이 떠진다.
간호사들과 병원직원들이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
하얀 시트에 덮인 무엇인가를 이동용 침대에 옮기고 있다.
창가의 환자가 이내 떠나가고 만 것이다.

하얀 시트에 덮인 체 문밖을 나서고 있는 주검을 바라본다.
“역시 갈 사람이었어. 운명인 것을 어쩌겠나?”
무의식적으로 죄의식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한다.

간호사가 비워진 침대 시트를 갈기 위해 들어온다.
“저~ 간호사님, 부탁이 하나 있는데요. 제가 그 침대를 사용하면 안 될까요? 바깥이 구경하고 싶어서요.”

간호사는 상큼하게 대답한다.
“그러세요. 알았습니다. 이 침대로 옮겨드릴게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사람들을 좀 불러와야겠네요.”

드디어 창가의 침대에 누워있다. 자신을 옮겨주고 뒷정리를 해주었던 사람들은 모두 나가고 없다.
텅 빈 병실에 홀로 누워서 천장을 바라본다. 고개를 창가로 돌리는 것이 갑자기 두려워진다.
크게 호흡을 한 번 해보고 고개를 돌려 창가로 향한다.

그런데…….
아무 것도 없었다.
피어있는 꽃들의 노래도, 하늘을 나는 뭉게구름도, 산보를 하며 깔깔대는 연인들도 없었다.
다만, 시커멓게 때로 얼룩진 빛 바랜 회색 담장과 바람에 굴러다니는 음료수 빈 깡통만이 바닥에서 소리를 내고 있었다.
“내가 그렇게도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 이것이었던가!”

거짓말을 한 것이다. 창가에 있었던 그 친구가 거짓말을 한 것이었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로 희망 없이 누워있는 방안의 동료를 위해
거짓말을 해서라도 희망을 갖게 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 사실을 깨닫게 된 그이의 마음은 표현 불가능한 감정에 휘말린다.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난다.
물론 꾸며낸 이야기일 것이다. 그래도 여운이 남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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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지나온 삶을 천칭(天秤) 위에 올려 놓아보자.
분명 창가 쪽의 사람과 병실 문 쪽의 두 사람 중 한 사람의 삶과 비슷한 모양의 삶으로 기울어져 있을 것이다.
희망을 주려 했고, 의미를 만들려 했고, 무엇인가를 줌으로써 스스로의 삶이 풍요로워진다는 것을 알고 지키려 했던 삶에 가까웠던 삶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병실 문 쪽의 사람처럼 늘 무엇인가를 부러워하며, 자신의 삶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 차 세상을 제대로 보지 못한 삶에 가까웠던 삶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진실을 이야기한다면, 우리 안에 두 가지의 삶이 함께 존재한다.
여기에 예외인 사람은 없다.
우리는 늘 자신 안에서 움직이고 있는 선과 악 중 하나를 선택하며 살아야 한다.
그리고 옳다고 여겨지는 창가 쪽의 환자의 삶을 닮으려는 자기싸움이 신앙인의 삶이다.

어쩌면 거짓을 사는 것은 창가 쪽의 사람이나 병실 문 쪽의 사람이나 마찬가지일 수 있다.
거짓을 섞어가며 살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한계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병실 문 쪽의 사람은 적극적으로 지은 죄는 아무 것도 없다.
창가 쪽의 사람의 목을 조른 것도 아니다.
하지만 본인만 아는 살인을 저지른 것이다.

평생 이러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불행한 이들이 많다. 해방될 일이다.
아름답게 살 일이다. 힘들더라도 그렇게 살려고 노력할 일이다.
누군가를 죽이거나 살리는 일은 아주 사소한 마음에서 갈려나감을 의식해야 한다.
선과 악을 재는 삶이라는 천칭 위에 옳음으로 기울어지는 우리이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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