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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관심’과 ‘사랑’의 차이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3-07-19 조회수627 추천수10 반대(0) 신고



2013년 다해 연중 제15주간 토요일


< 예수님께서는 예언을 이루시려고, 당신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엄중히 이르셨다. >


복음: 마태오 12,14-21







성체성사 제정


안젤리코 작, (1450), 프레스코, 186x234 cm, 피렌체 성마르코 박물관


     < 관심사랑의 차이 >

     한 남자 청년이 고민이 있다며 저를 찾아왔습니다. 지금 사귀고 있는 여자 친구와 헤어질 처지에 놓였다는 것입니다. 자신은 지금 대기업에 취직하였지만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자격증 공부를 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직장도 다니랴 시험공부도 동시에 하다보니까 자연적으로 만나는 시간이 줄어들어 조금씩 소원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도 포기할 수 없고, 저것도 포기할 수 없어서 고민이라는 것입니다.

김창옥 교수의 강의에서 들은 것인데, ‘좋아하는 것관심 있는 것의 차이를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좋아한다는 것은 그것을 얻기 위해 내가 지불(pay)’할 수 있는 것이고, 무언가를 지불하기를 원치 않는다면 그냥 관심만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정말 좋아한다면 그것 때문에 포기해야 하는 것은 가차 없이 포기할 수 있어야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냥 관심만 있는 것입니다.

루치아노 파바로티는 교육학을 전공하였습니다. 그러나 졸업 때 성악을 해 볼까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아버지는 의자 두 개를 서로 떨어뜨려 놓은 다음 말하였습니다.

사람은 두 의자에 동시에 앉을 수 없다. 한 의자에만 앉을 수 있고 한 의자에 앉으면 다른 의자는 비워놓아야 한다. 두 의자를 놓고 갈등하지 말고, 네가 다른 의자를 버려도 될 만큼 가치 있는 것을 선택하려무나.”

파바로티는 교육을 내려놓고 성악을 잡았습니다. 교육을 버렸으니 이젠 성악을 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저도 그 청년에게 너는 꿈이 더 소중하냐, 아니면 여자가 더 소중하느냐고 물었습니다. 둘 다 포기할 수 없다면, 어쩌면 그 어떤 것도 사랑하지 않는 것일 수 있습니다.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다 놓치는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도 당신에게 오는 사람에게도 이런 어정쩡한 모습의 사람을 별로 좋아하시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인기가 날로 높아지자 바리사이들은 그 두려움과 질투의 대상을 없앨 궁리를 합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알아차리시고 한적한 곳으로 숨어드셨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예수님을 찾아왔고, 예수님은 당신이 있는 곳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엄중히 이르셨습니다.

알리지 않았는데 어떻게 찾아올 수 있었겠습니까? 알지 못해서 찾아오지 못한 사람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래도 찾아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기다리는 사람은 당신을 찾아오기 위해 다른 것을 포기할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당신께 관심있는 미지근한 사람들을 싫어하십니다.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 후에 당신을 쫓아온 사람들에게 성체성사의 신비를 설명해 주십니다. 결국 그 사람들은 말씀이 어렵다고 다 예수님을 버리고 자기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저 예수님께 관심만 가졌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해가 안 돼도 믿을 마음이 있는 사도들만이 그분과 함께 남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께 관심만 있는 사람이 아니라 당신을 뜨겁게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십니다.

 

모바일에서 작성된 글인데 소개하겠습니다.

경남 함양에 성수스님이 계셨습니다. 그 분은 토굴을 지어서 도를 닦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수행자와 지인들이 너무 자주 찾아 와서, 그 분은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혼자 조용히 공부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제일 높은 산골짜기에 칩거해 좌선을 하니 너무나 좋았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어떤 여자가 나물을 캐러 왔다가 스님에게 물었습니다.

이 깊은 산중에 왜 혼자 와서 사십니까?”

스님이 답했습니다.

조용한 곳에서 공부 좀 실컷 하려고 왔습니다.”

그러자 여자가 되물었습니다.

물소리는 안 시끄럽습니까?”

스님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 여자가 가고 나서도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물소리, 새소리는 안 시끄러운가? 이 세상 어딘들 시끄럽지 않는 곳이 있겠는가?’

산꼭대기에 숨는다고 시끄러움을 벗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시끄러운 곳이더라도 내가 정하면 고요한 것이고, 아무리 조용한 곳이더라도 마음이 번잡하면 시끄러운 것입니다. 모든 것이 마음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스님은 다시 하산하여 누가 뭐라 하건 자신의 일에 정진하여 큰 스님이 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 여인의 물소리, 새소리는 안 시끄럽습니까?’라는 말은 평생의 스승이 되었다 고 합니다.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더 좋은 조건이 만들어지면 더 잘할 수 있다고 믿지만 환경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 의지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기도할 시간이 없다거나, 일 때문에 바빠서 미사에 빠졌다거나, 같은 신자나 성직자 수도자에게 상처 받아서 성당에 못 나오겠다고 하지는 않습니까? 시골에 들어가서도 당신을 알리지 말라고 하신 그리스도의 의도를 잘 묵상해보도록 합시다. 결국 그분은 당신께 흔한 관심만 두는 사람이 아니라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는 사랑을 지닌 사람을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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