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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환대(歡待) 영성 예찬` - 2013.7.21 연중 제16주일(농민 주일),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3-07-21 조회수290 추천수4 반대(0) 신고

2013.7.21 연중 제16주일(농민 주일)

 

창세18,1-10ㄴ 콜로1,24-28 루카10,38-42

 

 

 


환대(歡待) 영성 예찬`

 

 


오늘은 ‘환대’에 대한 묵상을 나눕니다.

환대란 말만 들어도 기분이 좋습니다.

 

이렇게 좋은 말뜻을 다시 확인하고 싶어 사전을 찾아보니
‘기쁘게 맞아 정성껏 대접함’이라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환대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13년 전에 써놨던
‘환대는 꽃처럼 하는 것이다’란 글을 나눕니다.

 

 

-환대는 꽃처럼 하는 것이다
한 번이라도 찌푸린 적이 있더냐.

 

하루 이틀 몇 날이든

언제나
활짝 핀 환한 얼굴로

 

오가는 이들
맞이하고 떠나보내는

 

주차장 옆 코스모스 꽃무리들
피곤한 모습 전혀 없다.

 

볼 때마다 환해지는 마음이다
환대는 꽃처럼 하는 것이다-(2000.9.27)

 

 

 

환대 받은 감미로운 체험은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입니다.

저 역시 아주 오래 전 분도수도자 모임에 참석했을 때 배정 받은 방에 안내되어 들어서는 순간 온 몸으로 환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정갈하게 정리된 참 넓은 공간의 맑고 환한 방이었습니다.
흡사 제가 왕자라도 된 듯 업그레이드 된 느낌이었습니다.

 

이런 사랑의 환대 체험은 그대로 구원체험이요 자존감을 드높입니다.

반면 우리를 위축시키고 자존감을 약화시키는
냉대(冷待)의 상처 체험 역시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과연 나는 환대의 사람인지,
또 내가 살고 있는 집은 환대의 집인지 성찰케 합니다.

 


오늘은 환대의 세 측면을 나눕니다.

 

 

 

 

 

첫째, 우리를 환대하시는 주님이십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환대의 사랑입니다.

가슴 활짝 열고 차별 없이 모두를 반가이 맞이하는 하느님이십니다.

 

성경도 온통 우리를 환대하시는 하느님의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우리를 환대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눈 만 열리면 곳곳에서 환대하시는 주님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아갈 수 있는 것도 환대하시는 주님 덕분입니다.
주님의 환대를 실감나게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환대의 집'인 여기 수도원이요 '환대의 사람들'인 여기 수도자들입니다.

 

언제나 활짝 열린 수도원 정문,
언제나 가슴 활짝 열고 찾아오는 모든 사람들을 맞이하는 불암산,
때 따라 활짝 피어나는 꽃들,
모두가 하느님 사랑의 환대를 상징하는 표지들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잔치를 통해 여러분을 환대하십니다.

얼마 전 주님께 환대 받은 체험도 잊지 못합니다.
피정지도 차 수녀원에 갔을 때 수녀원 식당에 붙어있던 글귀였습니다.

 

“일어나 먹어라. 갈 길이 멀다.”

 

엘리야가 이제벨의 보복을 피해 달아나던 중 기진맥진하여
싸리나무 아래 누워 잠들었을 때 주님의 천사가 깨우며 한 말입니다.

피정은 바로 주님의 환대임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환대를 받고 있다는 깨달음이 전율처럼 온 몸에 와 닿았습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주님은 갈 길이 먼 우리를 환대하시며
당신의 말씀과 성체의 은총으로 우리의 기력을 북돋아 주십니다.

 

 

 

 

 

둘째, 주님을 환대해야 합니다.

 

주님을 환대함이 환대의 절정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체험할 때 저절로 주님을 사랑하게 되고
주님의 섬김을 체험할 때 저절로 주님을 섬기게 되고
주님의 환대를 체험할 때 저절로 주님을 환대하게 됩니다.

성경 역시 주님을 환대했던 분들의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오늘 복음의 마리아는 물론 자캐오를 비롯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이
특히 주님을 환대했습니다.

 

분도 수도원을 일컬어 ‘주님을 섬기는 배움터’라 하는데
‘주님을 환대하는 배움터’로 바꿔 말해도 무방합니다.

환대로서 주님을 섬기기 때문입니다.

환대 중의 환대는, 환대의 원천은 주님의 환대입니다.
우선적인 환대의 대상은, 우리가 환대해야 할 최고의 분은
사도 바오로가 고백하는바 ‘영광의 희망이신 그리스도’입니다.

 

오늘 복음의 마리아가 주님 환대의 모범입니다.

마르타 역시 음식준비로 주님을 환대합니다만
주님의 심중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경청하는 것이
진정 주님의 마음에 드는 최고의 환대였음을 몰랐습니다.

마르타는 열심히 음식을 만들며 주님을 환대했지만
자기 식대로의 환대였지 주님이 원하시는 환대가 아니었습니다.

오늘 복음은 관상과 활동의 우열을 말하는 게 아니라
주님을 환대하는 일에 무엇인 우선적이고 본질적인지 가르쳐줍니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늘 들어도 경각심을 일깨우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경청하는 것을 잊고 활동에 매몰된 이들에 대한 경고입니다.

주님과 우리의 환대는 상호적입니다.

일방적인 환대는 없습니다.

우리를 환대하시는 주님이요 주님을 환대하는 우리들입니다.
바로 우리가 늘 바치는 성무일도와 미사의 공동전례기도가 그러합니다.

우리를 환대하는 주님과,
주님을 환대하는 우리가 만나는 은총 충만한 일치의 시간입니다.

이 거룩한 미사시간,
우리 모두 복음의 마리아처럼 주님의 말씀을 경청하며
주님을 환대하는 시간입니다.

 

 

 

 

 

셋째, 이웃을 환대해야 합니다.

 

주님과의 환대체험의 진위는 이웃의 환대로서 검증됩니다.
아무리 주님과의 환대체험이 많아도 이웃을 환대하지 않는다면
그 주님과의 환대체험은 가짜의 환상일 뿐입니다.

모든 영성가들이 이 진리를 깨달았고 이웃을 그리스도처럼 환대했습니다.
진정 주님의 환대를 체험한 이들이 이웃을 환대하는 것은 필연입니다.

불가의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이란 말도
똑같은 이치를 말해줍니다.

위로 지혜를 구하고 아래로 중생의 구원을 위해 힘쓴다는 말인데,
우리식으로 말해 위로 주님의 환대를 체험했으면
아래의 현실에서 이웃의 환대로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환대는 영성의 진위를 판가름 하는 잣대입니다.
오늘 창세기의 아브라함은 과연 환대의 모범입니다.

복음의 마리아는 주님을 직접 환대 했고,
창세기의 아브라함은 찾아 온 세 사람을 온갖 정성을 다해 환대했는데
실은 삼위일체 하느님을 환대한 것입니다.

평소 하느님을 극진히 환대 했기에 이렇게 찾아 온 이웃을 극진히 환대했고,
이들을 통해 하느님을 환대했으며 이어 주님의 크나큰 축복도 받았습니다.

아마 아브라함의 환대 영성을 시험하기 위해
사람으로 가장해 방문한 하느님 같습니다.

 

하여 분도 성인도 찾아오는 모든 손님들을 그리스도처럼 환대하라
당신 수도승들에게 명령하셨고
우리 분도수도승들은 이 말씀을 금과옥조로 삼아
환대로서 선교 사명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환대를 통해 서로 안에 계신 주님을 만나게 되니
환대보다 더 좋은, 효과적인 선교도 없을 것입니다.

분도수도승뿐 아니라 믿는 이들 누구나 지녀야 할 환대 영성임을 깨닫습니다.

 

 

 

 

 

오늘은 농민주일입니다.
농사를 통해 역시 주님을, 이웃을, 피조물을 환대하는 농민들입니다.

 

우리를 환대하시는 주님이십니다. 환대의 사랑입니다.

 

주님을 환대해야 합니다. 환대의 섬김입니다.

 

이웃을 환대해야 합니다. 환대의 선교입니다.

 

이래야 환대의 완성입니다.

우리 삶은 주님을 섬기는 배움터이자 주님을 환대하는 배움터입니다.
평생 섬김과 환대를 배워야 하는 배움터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마음 활짝 열어 당신을 환대하는 우리를 환대해 주시며
온갖 필요한 은혜를 내려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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