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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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3-07-23 조회수899 추천수11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3년 7월 23일 연중 제16주간 화요일




For whoever does the will of my heavenly Father
is my brother, and sister, and mother.
(Mt.12,50)


제1독서 탈출 14,21─15,1ㄴ
복음 마태 12,46-50

어제는 인천교구 대학원 1학년 학생들이 한 달 피정을 마치는 날이었습니다. 그래서 주교님을 모시고 이 신학생들과 함께 파견미사를 봉헌했지요. 파견 미사를 하는데 이들이 부르는 성가 소리가 너무나도 아름다운 것입니다. 화음도 넣어가면서 부르는 성가 소리는 마치 오랫동안 입을 맞춘 중창단 같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신학생들이 한 달 피정 중에 성가 연습을 했을까요? 그럴 리가 없지요. 왜냐하면 이 한 달 피정은 대침묵 피정이기 때문에 아무리 친한 동창이라도 말 한 마디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바로 영적으로 하나를 이룰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 달 동안 신학생들이 얼마나 많은 영적 싸움을 했겠습니까? 정말로 무엇을 쫓아야 하는지, 정말로 중요한 것이 어떠한 것인지를 깊은 묵상을 통해 선택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과 더욱 더 가깝게 되었고, 모두가 주님 안에서 영적으로 하나가 된 것이지요. 그러다보니 성가 연습을 한 적도 없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성가 소리를 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성가 소리를 들으면서 함께 미사를 했던 신부들 중 한 명이 이렇게 말합니다.

“성가 잘 못 부르는 것은 아마도 기도를 하지 않아서인 것 같아요. 이제 성가연습보다도 기도를 더 많이 시켜야 하겠는데요?”

영적인 일치가 이렇게 실제로도 서로를 하나로 묶어 준다는 것입니다. 이 체험은 저 역시도 한 달 피정 안에서 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어떤 때에는 피를 나눈 형제보다 영적인 일치를 보았던 동창신부들이 더 편하고 가깝게 느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혈연관계로 맺어지는 것보다도 더 중요한 관계로 이어지기를 원하십니다. 바로 영적 관계입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도 어머니와 형제들이 예수님을 찾아오셨음에도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라고 반문하셨던 것입니다. 이러한 혈연관계보다 더 중요한 관계가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영적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맞습니다. 우리 모두가 주님의 뜻을 충실하게 실행하는 영적인 관계로 똘똘 뭉쳐져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 안에 가지고 있는 욕심과 이기심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또한 세상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많은 것들을 포기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오로지 주님의 뜻을 향해서 함께 걸어갈 때에 그 누구보다도 가장 가까운 영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이렇게 영적으로 하나 되는 신앙공동체. 지금 당장 만들 수 있도록 우리 모두 함께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바다는 비에 젖지 않는다(지셴린).


한달 피정을 마친 신학생들과 함께...



무엇을 좇을 것인가?
 

지난주에 어느 성당에 미사를 갔다가 있었던 일이었습니다. 미사가 끝난 뒤에 신자들에게 성당 뒤에서 인사를 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한 무리의 자매님들이 제 곁으로 오더니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신부님, 신부님 입술 옆에 밥풀 같은 것 묻었어요.”

무슨 소리인가 했습니다. 그리고 깜짝 놀라서 입술 옆을 만지는 순간, 자매님들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었지요. 사실 제가 피곤해서인지 입술 옆이 약간 찢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조그마한 상처가 생활을 무척이나 불편하게 하더군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 상처 위에 약을 발라놓았는데, 그 바른 약의 모습이 마치 밥풀처럼 보였나 봅니다.

저는 밥풀이 아님을, 상처가 나서 약을 바른 것임을 말씀드렸지요. 그랬더니 한 자매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세요.

“신부님, 저는 밥풀 붙은 줄 알고서 미사 시작하면서부터 얼마나 분심이 들었는지 몰라요. 계속 ‘신부님께서 떼셔야 하는데... 떼셔야 하는데...’ 만 생각했다고요.”

아픈 것도 제가 아픈 것이고, 또 창피를 당하는 것도 제가 당하는 것인데, 정작 미사를 제대로 봉헌하지 못한 것은 그 자매님들이었습니다. 미사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주님과 진정으로 하나 되는 것이 아닐까요? 그런데 다른 것에 관심을 쏟고 있어서 정작 주님과 하나 되지 못했던 것이지요.

쓸데없는 것에 너무나 많은 관심 속에 살고 있는 우리입니다. 그래서 정작 중요한 것을 행하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요? 이제는 정말로 주님의 뜻을 제대로 좇을 수 있는 우리가 될 수 있도록 다시 한 번 마음을 가다듬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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