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7월24일(수) 聖女크리스티나, 聖女루도비카 님..등
작성자정유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3-07-23 조회수356 추천수1 반대(0) 신고



7월24일(수) 음6/17

聖女크리스티나, 聖女루도비카 님..등

 








크리스티나(7.24)

성인명

크리스티나(Christina)
축일 7월 24일
성인구분 성녀
신분 동정녀
활동지역  
활동연도 1150-1224년
같은이름 끄리스띠나, 크리스띠나


성녀 크리스티나(Christina)


 




벨기에 남동부 리에주(Liege) 근교 브루스템에서 태어난 성녀 크리스티나는
3세 때에 고아가 되었고, 21세 때에는 간질병을 앓은 병력도 있다.
또 그녀를 위한 미사가 봉헌되고 있는
성당의 지붕으로 갑자기 높이 치솟았을 때에는 마치 죽은 듯이 보였으나,
주임 사제가 아래로 내려오라고 명하자 그렇게 하였다.
또한 그녀는 지옥, 연옥 그리고 천국에도 다녀왔고,
연옥에서 고통을 받는 영혼을 위하여 기도하러
지상으로 되돌아오기도 하였다고 한다.






이 모든 사건들은 도저히 믿기 어려운 일들이지만,
그녀의 생애에서 실제로 일어났다고 보는 이들도 많이 있다.
그녀는 극도로 가난한 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녀를 이상하고 놀라운 사람(the Astonishing)으로 여겼지만
그녀를 공경하는 이들이 더 많았다.
그녀는 생의 마지막 해를 생트롱(Saint Trond)의
성녀 카타리나(Catharina) 수도원에서 지내다가 7월 24일에 운명하였다.


*
굿뉴스 자료에서 발췌






현세에서 지옥, 연옥, 천국을 다녀오고

공중부양의 신비를 경험하는 등

신비의 특은 가운데 사셨던

성녀 크리스티나 님이시여


확실한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천상의 기도로 저희를 이끌어 주옵소서!...아멘+


 

 

 






 


▶사르벨리오 마클루푸
(7.24)


성인명


사르벨리오 마클루푸(Charbel Makhlouf)
축일 7월 24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신부, 은수자
활동지역 레바논(Lebanon)
활동연도 1828-1898년
같은이름 마클루프, 사르벨리우스



레바논의 성 사르벨리오 마클루푸(Sarbellius Makhlouf)






성 사르벨리우스 마클루푸(Sarbellius Makhlouf, 또는 사르벨리오 마클루푸)
1828년 5월 8일 레바논의 베카아 카프라(Bekaa-Kafra)에서
노새를 끄는 아버지의 아들로 태어나
요셉 자룬 마클루푸(Josephus Zaroun Makhlouf)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는 3살 때 아버지를 잃고 삼촌에 의해 양육되었다.
어려서부터 신심이 깊었던 요셉에 비해 그의 삼촌은 그렇지 못했다.
소년 시절 그가 가장 좋아한 책은 토마스 아 켐피스(Thomas a Kempis)
“준주성범”이었다.
23살이 되었을 때 요셉은 집을 빠져나와 비블로스(Byblos) 북쪽에 있는
동정 성모 마리아 수도원에 입회하였다.
1853년, 2년간의 수련을 마친 그는 안나야(Annaya)에 있는
성 마로 수도원으로 보내졌다.
그곳에서 그는 첫 서원을 하며 2세기의 순교자
성 사르벨리우스의 이름을 자신의 수도명으로 선택했다.
그는 1853년 장엄 서원을 하고 1859년에 사제품을 받았다.

그는 모범적인 수도승으로 살았지만 그가 꿈꾼 것은
고대 사막의 교부들과 같은 삶이었다.
그래서 1875년부터 죽을 때까지 23년 동안 5세기의 수도원장
성 마로(Maron, 2월 14일)의 모범을 따라 은수자로서 매우 엄격한 삶을 살았다.
그의 성덕에 대한 명성이 커지자
점점 많은 사람들이 상담이나 축복을 청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그는 또한 성체성사에 대한 위대한 신심을 갖고 있었다.
가끔 수도원장이 인근 마을에 가서 성체성사를 집전하도록 했을 때
그는 매우 기쁘게 이를 받아들였다.

그는 기도 중에 몸이 공중에 뜨는 은총도 받았다.
성 사르벨리우스 마클루푸는 1898년 12월 24일,
예수 성탄 대축일 전날 늦은 오후에 안나야에서 선종하였다.
그의 사후 몇 차례의 치유 기적이 일어나면서 그의 무덤은
레바논 사람이건 아니건,
그리스도인이건 아니건 수많은 사람들의 순례하는 장소가 되었다.
그는 1965년 교황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77년 10월 9일 같은 교황으로부터 성인품에 올랐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는 종종 교회는
두 개의 허파(동방 교회와 서방 교회)를 갖고 있는데,
우리는 그 둘로부터 호흡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성 사르벨리우스 마클루푸 같은 성인이야말로
가톨릭 교회의 다양성과 일치의 참된 가치를 깨닫게 해주는 좋은 예이다.
사르벨 마클루푸(Charbel Makhlouf)로도 불리는 그의 축일은
12월 24일에 기념하기도 한다

*굿뉴스 자료에서 발췌

 

 



준주성범을 읽으며 성소의 꿈을 키웠고
공중부양의 현존 체험을 겪으며
영성체에 대한 위대한 신앙을 지니셨던

19C 레바논의 성 사르벨리오 마클루푸 님이시여
천상의 기도로 저희를 이끌어 주옵소서!.....아멘+





 

 

 

 
 

루도비카(7.24)

성인명

루도비카(Louise)
축일 7월 24일
성인구분 복녀
신분 과부
활동지역 사보이아(Savoia)
활동연도 1462-1503년
같은이름 루도비까, 루이즈
 



사보이아의 복녀 루도비카(Ludovica)


 

 

 




상류사회의 우아한 귀부인이던 루도비카(Ludovica)
클라라 회원이 될 은혜를 미리 하느님으로부터 받았던 것 같다.
그녀는 사보이아 공국의 공작인
복자 아마데우스의 9세(Amadeus IX, 3월 30일)의 딸로 태어났다.
아홉 살 때에 부친을 여의었지만 어머니에 의하여 훌륭히 자랐으니,
특히 뛰어난 영적 지위에 있었다.
18세 때에 그녀는 위고 드 샬롱과 결혼하였는데
남편은 열렬한 그리스도인이었으므로,
그들의 집은 마치 수도원처럼 거룩하였고 부부생활은 사랑으로 가득하였다.

그녀는 최초로 자선함을 설치한 인물로 기록된다.
자선함에 모인 기금으로 그녀는 고아와 과부 특히 나환자들을 돌보았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 남편과 사별한 그녀는 이제 완전히 세속과 결별하였다.
그녀는 재속 프란치스코회의 수도복을 입고 성무일도를 바쳤으며,
밤중에 일어나 새벽기도를 바치기 시작하였다.
이윽고 그녀는 오르베(Orbe)의 클라라 수녀회에서 살게 되었다.
비록 귀족 출신이었지만 그녀는 수녀원 내의 부엌일을 비롯하여
온갖 집안일을 도맡아 하였다.
이처럼 그녀는 철저히 겸손하고 거룩한 삶을 살다가 1503년 7월 24일
“우리 사부 성 프란치스코여, 하느님의 자비를 빌어주소서” 하며 선종하였다.
그녀에 대한 공경은
1839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16세(Gregorius XVI)에 의해 승인되었다.

 
*굿뉴스 자료에서 발췌

 

 

 

 

 



상류사회의 유복한 가정을
수도원처럼 거룩한 분위기로 바꾸고
고아, 가난한 이, 나환자들을 돌보는 기쁨의 가정으로 만드신 님

남편 사후에는 프란치스코회 제3 회원이 되어
수도원에서 부엌일 등 온갖 잡일을 도맡았던


겸손의 성녀 루도비카님이시여

저희를 위하여 천상의 축복을 보내주옵소서!......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