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돈의 힘을 따르면 사업체로 변질되다 [자게판글 꽃00 보며]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3-07-26 조회수344 추천수0 반대(0) 신고

"나는 너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낸 주 너의 하느님이다. 너에게는 나 말고 다른 신이 있어서는 안 된다.......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이들에게는 천대에 이르기까지 자애를 베푼다...."  <제1독서 참조 /  금요일>

“너희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새겨들어라.누구든지 하늘 나라에 관한 말을 듣고 깨닫지 못하면 악한 자가 와서 (본문 아래)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아 간다.  길에 뿌려진 씨는 바로 그러한 사람이다....좋은 땅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듣고 깨닫는다.  그런 사람은 열매를 맺는데, 어떤 사람은 백 배, 어떤 사람은 예순 배, 어떤 사람은 서른 배를 낸다.”  <마태오 13, 18 - 23>

..........................................................................................


<율법은 모세를 통하여 주어졌다. (요한 1,17)> 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통하여 주어진 것은 무엇일까요.... "나는 너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낸 주 너의 하느님이다." 하십니다. 이집트는 어떤 땅이었는지, 지금의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굶주릴 때에 이집트로 보내셨지만 죄악의 고통과 죽음이 그들을 압제하자, 하느님께서는 불쌍한 그들을 해방시키시려고 모세를 통하여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십니다.

그들이 이집트에 적응되어 어둠 속에서 살 때,  모세는 이집트에서 벌어지는 죄악의 고통과 죽음에 묻혀만 있었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모세도 역시 '하느님의 마음'을 간직했었으며 결국 하느님께서는 '이 모세'를 부르시어 악의 고통과 죄의 죽음에서 신음하는 이집트 땅, 종살이하는 집에서 그들을 이끌어 내십니다. 잘 아시겠지만 하느님께서는 '죄악의 고통과 죽음의 편'이 아니십니다. 이집트로 보내셨지만 이집트에서 다시 건져내십니다.

이집트는 부강하여 <돈의 힘>이 있지만 이같은 <돈의 힘>은 절대로 죄악의 고통과 죽음을 막지 못합니다. <돈의 힘>은 지금 이 시대에서도 인간이 추구하는 절대적인 <신과 같은> 인간의 지배자가 되어 있습니다. <돈의 힘>으로 할 수 있다는 생각들입니다.  <하느님의 힘>과 <돈의 힘>은 정 반대의 측면입니다.정말로 돈이 필요한 것은 부인될 수 없지만 하느님 나라의 건설에 결정적인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벌써 일찌기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마태오, 루카) 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돈의 힘>이 인간을 어떻게 변질시키시는 지를 인간 그 자신들보다도 너무나 잘 아시는 것입니다. 인간은 <돈의 힘>에 지배를 당할 수 있는 존재임을 다 알고 계신다 할 것입니다. 인간이 <돈의 힘>을 떠받들고 거기에 의존하면, 그 반대의 <하느님의 힘>을 업신여기게 된다는 것을 이미 잘 아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게시글, '배 부르게 하시고 따르는지 아닌지를 지켜 보시다 [예수님의 땅]'  에서도
기록하고 있듯이 배 부르면 주님의 은총을 욕되게 하고 그로인해 하느님의 말씀(명령)에는 따르지 않게 됩니다. 배가 부르면 이집트처럼 죄악의 고통과 죽음으로 변질되는 것을 경계해야 했습니다.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남겨서 축적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오병이어 기적에서 마찬가지로 남는 것들은 축적해서 가지지 말도록 했습니다.생존하는데 필요한 저축을 부정하신 게 아니라, <돈의 힘>을 숭배하게 변질되어지는 것을 경계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도 하느님의 명령에는 따르지 않는 이들이 있습니다.

<돈의 힘>에 따라서 돈을 축적하기 위한 규정들과 방침들을 정하는 짓들은 <돈의 힘>을 숭배하기 때문에 그같은 규정들과 방침들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명령하시는 말씀 <하느님의 힘>에 따르고자 하는 마음은 <돈의 힘>에 죽어 버립니다. <하느님의 힘>은 무엇일까요. 예수님을 통해서 주어진 것은 무엇일까요.<하느님의 힘>이신 그리스도(1코린토 1, 24 참조)를 통해서 주어진 것은 무엇일까요.율법(규정들과 방침들)은 모세를 통해서 주어졌지만 하느님께서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시듯 예수님을 통해서 죄악의 고통과 죽음에서 이끌어 내시고자 한 것은, 바로 <사랑의 힘>입니다

<
하느님의 힘>은 다름아닌 <사랑의 힘>이신 것입니다. 주님의 은총은 '사랑의 힘'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의 힘에는 무기력하고 돈의 힘을 따른다면, 거기에는 은총의 힘이 죽은 것입니다. 은총의 힘이 사랑의 힘이다는 것을 깨닫지 못함입니다.주님의 은총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면 결코 사랑의 힘에 무기력하지는 못 했을 것입니다. 주님의 은총이 내려졌다면 율법의 규정들과 방침들이 아니라 사랑의 힘 따라야 했습니다.

<돈의 힘>을 숭배하면 <돈의 힘>으로 또 다른 돈을 벌고자 (축적하고자) 사랑의 힘은 업신여기게 됩니다.인간은 이렇게 변질되어 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과 재물의 두 주인을 섬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하지만 <돈의 힘>에 따르다 보면 <돈으로 돈을 벌고자> 합니다. <하느님의 힘>을 업신여긴다는 분명한 뜻입니다. 사랑의 힘에는 무기력해 지고,  돈으로 돈을 벌고자 하는 사업체로 변질되어져 악의 고통과 죄의 죽음이 멈출 수 없게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함은 예수님의 공동체가 사업체로 변질되어 <사랑이 살아있는 성 가정의 집>이 아닌 <사랑이 죽어있는 수용소>로 만들어 내어 이집트 처럼 죄악의 고통과 죽음이 거친(악한) 삯꾼들에 의해서 (악한 자가 와서) 설치게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이를 용납하지 않으시고, 당신께서 자비를 베푸시어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시듯이 버려진 이들을 <죄악의 고통과 죽음의 땅에서 구원>해 내십니다.

하느님께서 주님의 은총을 시작하셨고, 이를 시작하신 당신께서는 <주님의 은총을 반드시 완성되게 하신다>는 강력한 뜻이 있습니다.'사랑의 힘이 있는 예수님의 공동체'를 바라신다 할 것입니다.돈의 힘을 따르는 가짜 제자들은  <사랑의 힘>을 없애어 버립니다. 그들은 사랑의 힘에 무기력하여 거친 삯꾼은 자리잡게 하고 사랑을 죽입니다. 회개하지 못하면 돈의 힘을 쫒는 가짜 제자들은, 자기 심판에서 결코 살아남지 못합니다. 돈으로 돈을 벌고자 한 세속을 따르고자 했으니 세속의 지배를 당하게 됩니다. 세속은 그리 간단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세상 영광(돈)의 유혹을 끊어 내셨습니다.
하느님의 힘이신 사랑의 힘만이 주님의 은총의 힘을 욕되게 하지 않습니다. 누가 주님께 도전할 수 있을까요. 하느님께 도전한 존재는 누구였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공동체는 더러운 영들의 지배를 받고 있기에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면 결국 황폐해 집니다. 보라,너희 집은 버려져 황폐해질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너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어라.’ 하고 말할 때까지, 정녕 나를 다시는 보지 못할 것이다.”(마태오, 루카)

<사랑의 힘(사랑)은 복되어라> 하기 전까지
예수님을, 사랑을 다시는 보지 못할 것입니다. 죄악의 고통과 죽음이 멈추지 않고 그것들이 가짜 제자들을 결국 삼키게 된다는 것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좋은 열매는 마음 땅 안에 예수님이 사시어,  사랑의 힘에 무기력하지 않을 때입니다. 주님의 은총의 힘은, 돈의 힘이 아니고 사랑의 힘이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면 회개하지 못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참 고>
사랑은 힘들고 고생하며 고난을 겪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을 선택하기에는 쉽지 않습니다. 사랑을 거스리고 싶지 않지만, 사랑을 거스리게 됩니다.'사랑이 살아있다'는 것은 이를 극복하는 사랑의 힘입니다. 사랑의 힘에 무기력하지 않다는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사랑이 죽어있다'는 것은 이를 극복하지 못하여 사랑의 힘에 무기력하다는 것을 뜻합니다. 사람은 힘든 것 보다는 편리함을 택합니다.  그리고서는 사랑(예수님)을 미워합니다.  육적인 감흥에 맛들어지면, 영적인 나태함에서 이와같은 흐름을 분명하게 식별하지 못하게 되어집니다.  주님의 은총의 힘은 사랑의 힘이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 그리스도의 고통에 결합하지 않으면, 사랑의 힘을 도무지 지니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사랑의 고통은 힘들고 고생하며 고난을 겪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