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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된 죄(Felix culpa)
작성자양승국 쪽지 캡슐 작성일2013-07-26 조회수413 추천수12 반대(0) 신고

복된 죄(Felix culpa)

 

밀농사에 도움이 안 되는 가라지들을 보는 족족 솎아낼까요?”라는 질문에 수확 때 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수확 때에 내가 일꾼들에게, 먼저 가라지를 거두어서 단으로 묶어 태워 버리고 밀은 내 곳간으로 모아들이라고 하겠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처음에는 섬뜩한 느낌과 함께 와 무서운 분이다.’는 생각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그릇된 길을 걷고 있는 자녀에게 호통을 치면서 빨리 그 길에서 벗어나라고 말해주는 것이 바람직한 아버지의 모습일 텐데, 잘못을 저지르는 그 순간에는 가만히 있다가 나중에 한꺼번에 모아서 대박으로, ‘보란 듯이크게 손 좀 봐주겠다는 의도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 말입니다.

 

그러나 좀 더 곰곰이 생각해보니 뱁새가 봉황의 뜻을 어찌 알리오?’였습니다. 제 생각이 짧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수확 때 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는 예수님의 말씀에는 정말이지 큰 뜻, 엄청난 배려가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교육 현장에 몸담고 있다 보면 자주 느끼는 바입니다. 한 청소년의 인생을 동반해주는 데 있어 기다림’ ‘인내처럼 중요한 것은 또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때의 실수를 기다려준 것이 나중에 얼마나 놀라운 결과를 낳게 하는지 모릅니다. 부족함과 미숙함 앞에 인내하고 또 인내한 결과가 큰 인물이라는 결실로 열매 맺기도 합니다.

 

정말이지 여러 유형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모태 모범생들이 있습니다. 잔소리 하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 자기 길을 걸어갑니다. 그러나 아무리 귀에 대고 외쳐도 듣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한동안 오류에 빠져 속고 나서 나중에 진리의 진가를 깨닫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가면 뒤에 숨어있는 악 실체를 확인한 뒤에야 참 아름다움을 깨닫습니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지어서는 안 될 죄를 짓고, 죄의 악함을 깨달은 뒤에야 하느님의 은총을 겸허하게 수용합니다. 이런 연유로 어떤 죄에 한해 복된 죄(Felix culpa)라고 까지 이야기했습니다.

 

때로 아닌 것에 대해서 애초부터 원천을 근절시키기 위한 노력도 중요합니다. 잘 짜인 모범 정답 틀 안에서 살아가게 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더불어 필요한 노력이 있습니다. 기다려주는 것입니다.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배울 수 있도록 시간을 주는 것입니다.

 

우리의 하느님은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셨는지 우리 각자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당신 의도대로 우리 인간 역사를 하나하나 끌고 가지 않으십니다. 모범 답안을 제시하고 무조건 그 길을 걷게 하지 않으십니다. 우리 각자의 판단, 가치관, 인생관, 결정을 존중해주십니다. 스스로 선택하고 깨닫도록 우리에게 모두 맡겨주십니다.

 

그리고 다른 무엇에 앞서 우리의 모든 죄나 실수 앞에서 한없이 기다려주십니다. 참 가치를 깨달을 때 까지, 당신께로 돌아설 때 까지 무조건 인내하십니다.

 

많은 경우 우리 인간들은 이런 기대를 합니다. 정의의 하느님께서 세상 안에 존재하는 악의 원천들, 그릇된 지도자들을 지체 없이 공격하여 하루 빨리 진리와 정의가 승리하는 날을 오게 하라는 기대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하느님은 보다 깊게 호흡하시며 보다 큰 걸음을 옮기시는 분입니다.

 

교회를 바라보는 신자들의 바램도 너무 기대치가 높습니다. 천사 같은 교황님의 얼굴만을 추구합니다. 착한 목자의 화신과도 같은 주교님을 찾습니다. 2의 예수 그리스도 같은 사제만을 원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합니다. 교황님도 주교님도 사제들도 육을 지닌 한 나약한 인간일 뿐입니다. 정신으로는 분명히 또 다른 예수 그리스도를 추구하지만 구체적인 삶 안에서는 방황하고 괴로워하는 한 인간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노력이 기다림입니다. 기다린다는 것은 될 대로 되라는 식의 방관이 절대로 아닙니다. 인내의 한계에 도달해 포기해 버리는 것도 아닙니다. 무관심의 표현도 아닙니다.

 

기다림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종교적인 표현입니다. 기다림은 가장 그리스도적인 삶의 방법입니다. 언젠가 도래할 하느님 나라, 언젠가 분명히 우리에게 주실 구원을 기다리며 오늘 우리의 이 고통, 이 부족함, 때로는 참혹함을 견뎌내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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