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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맹꽁이를 넘어서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3-08-02 조회수667 추천수7 반대(0) 신고



2013년 다해 8월 첫 토요일 성모신심 미사







세졸라의 성모


라파엘로 작, (1514),  피렌체 팔라티나 미술관


     < 맹꽁이를 넘어서 >

         연인이 싸웠습니다. 싸우다가 여자가 남자에게 앞으로 다시는 연락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는 그냥 화났다는 표현입니다. 그런데 남자는 알았어. 안할게.” 이렇게 대답합니다. 이 사람은 그냥 맹꽁이입니다. 어쩌면 자신이 그렇게 헤어져 주어야 하는 당연한 이유가 있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맹꽁이 남자에게 계속 연락오기를 기다리며 핸드폰을 바라보면서도 자신이 먼저 전화하지 않는 여자도 맹꽁이입니다.

이런 두 맹꽁이 같은 행동으로 작게 시작한 싸움이 큰 이별을 맞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맹꽁이처럼 답답해지는 것은 두려움 때문입니다. 두려움은 자존심에 상처가 날 것 같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애초에 맹꽁이가 되는 것은 자아가 크기 때문인 것입니다. 저 사람에게 차이느니 내가 먼저 차야겠다는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 하면서도 결국은 자기 것을 챙기기 바쁜 것입니다.

 

어제 맹꽁이 같다라는 말의 의미를 연세가 있으신 큰 수녀님에게 여쭈어 봤더니, ‘앞뒤가 꽉 막힌 답답한 사람이란 뜻일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김창옥 교수의 강연 중 한 지인이 도시 하수구에 사는 맹꽁이들을 구출하는 봉사를 하고 있다는 말을 해 주었습니다. 맹꽁이들은 습지에 살아야 하는데 습지가 점점 사라지자 하수구에 들어가 나오지 못하여 죽고 마는 맹꽁이들이 많다고 합니다. 하수구에 들어가 있는 맹꽁이들은 대부분이 수컷들인데 암컷은 하수구에 잘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이들은 암컷을 하수구에서 기다리기만 하다가 그 안 좋은 환경에 못 견디고 죽고 만다는 것입니다.

이런 맹꽁이들을 구출하기 위해 그들의 울음소리를 듣고 하수구로 구하러 내려가면 맹꽁이들은 울음을 멈추어버린다고 합니다. 사람이 자신들을 죽이러 온 줄 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피부를 시멘트 색으로 변화시켜 사람이 찾기 어렵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이런 답답한 맹꽁이들!’

 

그러나 우리도 이런 맹꽁이 짓을 할 때가 있습니다. 두렵기 때문입니다. 두려워서 도움까지도 거부하는 것입니다. 두려워서 자신이 먼저 전화도 못하고, 두려워서 자신이 먼저 화해도 못 하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두렵겠습니까? 자존심과 자아가 상처받는 것을 못 견뎌하는 것입니다.

어제 아이들이 풍선껌을 주어서 오랜만에 씹어보았습니다. 그리고 아이들 앞에서 풍선을 불어보았습니다. 그러나 조금 부풀더니 이내 터져버렸습니다. 완전히 단물이 빠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 자존심이란 불순물이 끼어있는 한 나는 유연하지 못한 맹꽁이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사랑엔 자존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요한 사도는 사랑엔 두려움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성모님은 예수님께서 아직 때가 이르지도 않았고 술이 떨어진 것이 지금 성모님과 당신에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반문하십니다. 이는 분명 첫 기적을 술을 만드는데 쓰지 않으시겠다는 명백한 표현입니다.

그러나 성모님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당신 아들이 시키는 대로 하라고 하인들에게 지시합니다. 하지 않으시겠다고 하면 그러시라고 포기하는 맹꽁이 같은 분이 아니셨던 것입니다. 이는 그만큼 당신 안에 자존심이나 자아, 혹은 죄의 찌꺼기조차도 없었음을 말해줍니다. 완전한 믿음과 신뢰, 그것이 없었다면 성모님은 당장 포기하시고 말았을 것입니다. 성모님의 이 두려움 없음은 죄 없이 깨끗한 순결함과 직결되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남의 부모님에게는 떼를 못 쓰지만, 자신의 부모에게는 무엇을 사달라는 둥의 떼를 씁니다. 그만큼 성모님도 예수님께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거부하는 말에 맹꽁이처럼 움츠려들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옛날 어떤 왕이 전쟁 중에 성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전세는 이미 기울었고, 그래서 상대편 장군이 성을 점령하기 전에 여자들만 자신이 들 수 있는 만큼만 짐을 가지고 빨리 성을 빠져나오면 그 뒤에 남아있는 남자들은 모조리 죽이겠다고 하였습니다.

여자들이 각자 짐을 최대한 싸들고 성문 밖으로 줄지어 나왔습니다. 그런데 어떤 여자는 자신의 등에 누군가를 업고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여자는 왕비이고 남자는 임금이었습니다. 그 여인의 지혜에 감탄한 장수가 그 왕비와 임금, 또 그의 군사들을 살려주었다고 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 어머니와 시장에 가면 콩나물 한 줌이나 백 원, 이백 원 깎으려고 보는 제가 창피할 정도로 물건을 파시는 분들과 실랑이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성모님도 오늘 복음에서처럼 교회에 성령이 오시기를 너무나 절실히 원하셨기에 당신 자존심을 내세울 수가 없으셨습니다. 성모님이 교회를 당신 자녀처럼 사랑하시지 않으셨다면 하느님이신 당신 아드님이 원하시지 않는 것을 하시라고 강요하는 모험을 무릅쓰실 필요는 없으셨을 것입니다.

우리도 어쩌면 하느님께 도움을 청하면서도 막상 그분이 앞에 오시면 그 두려움 때문에 맹꽁이처럼 목소리를 내지 않고 숨어버리려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에는 자존심도 두려움도 없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맹꽁이가 되지 않는 길은 성모님처럼 자신을 비운 깨끗한 사랑의 마음을 지니는 것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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