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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세례자 요한의 희생과 봉헌/신앙의 해[255]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3-08-03 조회수424 추천수0 반대(0) 신고

                                                                      그림 : [죽산] 십자가의 길
  

세례자 요한의 죽음은 억울하다.
그는 평생을 의롭게 살면서 구세주의 오심을 준비했다.
그런데 한 헤로디아라는 여인의 증오를 받아 어이없이 죽는다.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예수님도 억울하게 운명하셨다.
그러므로 답답하고 안타까운 모습이 많을수록 예수님의 죽음을 닮는단다.
안타까움이 있었기에 예수님을 따르는 죽음이라나. 
 

억울함이 깊으면 희생도 깊다.
허나 억울함만 생각하면 어린이 마냥 철부지 신앙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게다.
억울함에서 ‘감사’를 찾아낼 때 아름다운 신앙으로 승화될 수 있다.
예수님의 죽음도 마찬가지이다.
자신들의 권위와 기득권을 지키려고 예수님을 죽일 계략을 꾸민 대사제와 원로들,
여기에 동조한 유다의 배신, 영문도 모르고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친 군중,
정치적 이해로 사형 선고를 내린 빌라도 총독, 예수님을 조롱한 병사들,
이 모든 이가 예수님 수난과 죽음에 관여한 이들이다.

의인을 희생시킨 이 모든 이가 오늘의 우리의 모습일 수 있다.
우리가 늘 자신을 돌아보고 무엇이 옳고 그런지를 묵상하지 않으면
의인을 죽게 하는 동조자로 전락하게 될 게다.
지금도 우리의 속 좁은 말과 편견 때문에
누군가가 또 하나의 희생을 겪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입조심하면서 하루하루 잘 살피며 살아야 하리라.
 

사실 세례자 요한의 죽음은 참으로 억울하기 짝이 없다.
인간적으로 뛰어났던 분이 어이없는 종말을 맞이하였던 게다.
요한은 구세주의 등장을 미리 준비한 분이다.
그러기에 광야에서 회개를 부르짖었고 강가에서 세례도 주었다.
그는 지도자들의 위선을 과감하게 꾸짖었다.
헤로데 왕에게까지 직언을 하다가 결국은 죽음을 맞았다.

예수님 말고 세례자 요한보다 더 억울한 죽음이 있을까?
그는 하느님의 구원 계획으로 오시어
예수님께 영광을 드리고 잔치의 재물로 떠나셨다.
이런 슬픈 죽음일수록 예수님과 연관되어야만 억울하지 않을 게다. 그렇다.
그의 탄생과 죽음은 하느님 영광 드러냄에 필수이며 온전한 희생이었다.
그의 죽음은 그 자체가 하느님께 드리는 봉헌이었다.
그러한 그의 희생이 있었기에 믿음이 신비로 자리매김 했다.
신앙의 해를 보내는 우리도
신앙인으로서의 억울함을 희생과 봉헌으로 감수해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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