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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3-08-03 조회수719 추천수7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3년 8월 3일 연중 제17주간 토요일



"This man is John the Baptist.
He has been raised from the dead;
that is why mighty powers are at work in him."
(Mt.14,2)


제1독서 레위 25,1.8-17
복음 마태 14,1-12

날이 참 덥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더운 날이면 본당 주보에 기재가 되는 말들이 있지요. 바로 복장을 제대로 갖춰 입자는 말입니다. 저도 본당에 있을 때 보면, 잠옷 차림으로 미사에 오시는 분들을 종종 보게 됩니다. 민소매 티셔츠에 짧은 반바지, 때로는 체육복 차림 그리고 슬리퍼를 신고 성당 오시는 분들을 보면 눈살이 저절로 찡그러질 수밖에 없지요.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결혼과 같은 중요한 자리에서도 저렇게 입고 나갈까?’

만약 결혼하는 신랑, 신부가 잠옷 차림에 슬리퍼를 질질 끌면서 입장한다면 어떨 것 같습니까? 하객들을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결혼할 준비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면서 혀를 차며 손가락질을 하지 않을까요? 중요한 자리라면 제대로 된 옷차림을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주님을 만나는 그 자리는 얼마나 중요한 자리입니까? 자기 편한 대로 아무렇게나 옷을 입고서 가는 자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믿음에 따르는 희생은 치르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입니다. 믿음 안에는 희생도 함께 포함이 됩니다. 그런데 성당을 나가고 성당에서 활동을 하고는 있지만, 그냥 지금 살고 있는 그대로 놔두기를 원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희생이 전혀 없는 믿음만을 바라면서 전혀 변화하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싫은 소리 하는 것이 참 쉽지 않습니다. 혹시라도 구닥다리 소리를 들을까봐, 요즘의 패션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소리를 들을까봐, 이렇게라도 성당 나오는 것이 어디냐 등등의 이야기를 들을까봐 그냥 딴 곳만 볼 뿐입니다.

저 역시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면서 아무 이야기도 하지 못했습니다. 이 역시 희생 없는 믿음이 아니었을까 라는 반성을 하게 됩니다. 분명히 잘못된 것이라면 바르게 고치려고 노력해야 하는데, 다른 사람의 시선을 생각하면서 싫은 소리 하기 싫다고 말하지 않는 것 역시 희생 없는 믿음을 스스로에게 요구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헤로데 영주가 세례자 요한을 죽입니다. 바로 자신의 양딸이 손님들 앞에서 춘 춤 값으로 세례자 요한의 목을 건네주지요. 사실 그는 세례자 요한을 두려워했었습니다. 분명히 하느님과 함께 하는 예언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춤 값으로 청하는 대로 무엇이든 다 주겠다는 사람들 앞에서 한 맹세를 깰 수가 없어서 그는 아무런 죄도 없는 세례자 요한을 죽였습니다.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했던 그의 행동은 결국 역사적으로 계속 회고되는 악행으로 전해지게 됩니다.

희생 없는 믿음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나만을 위한 믿음이란 없다는 것, 믿음에는 늘 철저한 희생이 있어야 한다는 것. 그렇다면 지금 내가 원하는 것만을 요구하고 있다면 커다란 잘못이 아닐 수 없습니다. 희생이 동반하는 믿음을 간직하시길 바랍니다.

 
초보자의 머리에는 가능성이 많고, 전문가의 머리에는 가능성이 별로 없다(순류 스즈키).


다트의 정중앙에 세개의 화살을 명중시켰습니다. 주님의 일도 이렇게 정확해야 하는데요...



열린 마음
 

며칠 전, 점심식사 후 교구청의 한 신부님과 산책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신부님에게 문제가 생겼습니다. 항상 식사 후에는 담배를 태우는데, 글쎄 라이터가 없는 것입니다. 담배를 가지고 있지만 라이터가 없으니 그 좋아하는 담배를 태울 수 없는 것이지요. 지나가는 교구청 직원에게도 묻고, 관리실에 들어가서 라이터를 찾아도 봅니다. 또 마침 지나가는 사람도 없습니다.

담배를 태울 수 없으니 불안한 표정이 가득합니다. 담배를 태우려면 라이터도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불안함과 욕구가 커지기만 할 뿐이지요.

이렇게 여러 가지가 같이 맞아 떨어져야 만족감을 가질 수 있는 것이지요. 딱 한 가지만 가지고 있다고 만족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이런 예도 하나 들어 볼게요.

요즘처럼 더운 여름날에 시원한 음료수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음료수의 병뚜껑이 꽉 닫혀 있는 상태라면 어떨까요? 병뚜껑을 따지 않고서는 이 시원한 음료수가 자신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가지고 있어봐야 갈증만 날 뿐이라는 것이지요.

우리의 신앙도 이렇지 않을까요? 성당에 다니고는 있지만 마음을 열고 있지 않다면 어떨까요? 마지못해 성당에 나오는 사람이 얻을 수 있는 것이 과연 있기는 할까요? 마치 담배를 피워야 하는데 라이터가 없는 것이며, 시원한 음료수를 가지고 있지만 뚜껑이 꽉 닫혀 있는 것과 똑같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으며, 불안감과 욕구만 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 시대의 사두가이, 바리사이 등의 종교 지도자들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들은 정말로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닫혀 있었기에 예수님을 반대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 죄인이라고 평가받았던 세리, 창녀, 병자들은 어떠했습니까? 그들은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 마음이 활짝 열려 예수님을 열심히 따를 수 있었고 실제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활짝 열린 마음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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