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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3-08-04 조회수689 추천수5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3년 8월 4일 연중 제18주일



"Be on your guard
and avoid every kind of greed, for even though
you have many possessions,
it is not that which gives you life."
(Lk.12,15)


제1독서 코헬렛 1,2; 2,21-23
제2독서 콜로 3,1-5.9-11
복음 루카 12,13-21

나이가 많은 사람과 나이가 젊은 사람의 차이는 시간을 느끼는 방식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이들을 보세요. 1년 차이만 나도 엄청난 사이가 나는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나이 많은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1~2년 차이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말합니다. 잘 생각해보니 그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똑같은 일 년인데, 네 살짜리 아이에게는 자기 인생의 4분의 1이지만 여든 살 어른에게는 자기 인생의 80분의 1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시간을 느끼는 마음이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문제는 누구나 이렇게 나이를 먹어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어리다고 영원히 어릴 수가 없으며, 또한 나이를 거꾸로 먹어 젊어질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당연한 진리를 감추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언젠가 외출을 하지 않는다는 할머니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건강이 나쁜 것도 아닌데, 할머니께서는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물으니 늙은이가 돌아다니면 사람들이 흉볼까봐 그렇다고 말합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당연한 진리인데 스스로 인정하지 않고 감추고 싶은 것이지요. 하지만 이렇게 세상 사람들의 시선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어떻게 나를 보실 지를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시선만을 생각하는 것 역시 또 하나의 욕심입니다. 이 시선 때문에 더 많은 돈과 명예를 요구하고 있으며, 이 시선 때문에 더욱 더 내 자신을 감추려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오늘 복음을 통해 탐욕이라는 세상의 기준들을 경계하라고 말씀하시지요. 자신을 위해서 재화를 모으려하지 말고, 하느님 앞에서 진정으로 부유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우리가 나이를 들어가는 것처럼, 언젠가 하느님 곁으로 가는 것도 당연한 진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 앞에서 누릴 그 시간을 기다리면서 제대로 된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세상의 기준이 하느님의 기준보다 늘 앞에 놓이는 것은 왜 일까요?

몇 해 전에 아주 힘든 일이 제게 다가왔습니다. 도저히 저의 힘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지요. 매일 시간이 날 때마다 성당에 가서 십자가 아래에서 간절히 기도를 했습니다. 그때 얼마나 큰 힘을 얻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때 이러한 묵상을 할 수 있었지요.

‘십자가 아래에 있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커다란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는데, 십자가의 삶을 산다면 얼마나 커다란 행복을 얻을 수 있을까?’

사람들이 행복하지 못하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십자가 아래를 떠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삶을 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시선과 그 기준만을 따르려고 하다 보니 십자가가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아래에 있어야 합니다. 또한 십자가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러한 삶만이 진정한 행복을 얻는, 진정으로 하느님 앞에서 부유한 사람의 모습입니다.

 
비록 잃은 것도 많지만 아직 남은 것도 많다(알프레드 로드 테니슨).


가족이 함께 하는 소중한 주일이 되시길 바랍니다.



인디언 계산법
 

어느 책에서 본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하고 있었는지를 반성하게 되네요.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기준이 아닌, 정말로 사람을 위하고 사랑하는 기준이 필요한 세상이 아닐까요?

백인들이 인디언 땅을 차지하고 미국식 교육을 주입할 때였다. 오지브와족 출신 아이가 백인들이 가르치는 학교에 들어갔다.

그들의 교육 방식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아이는 수업 시간에 입을 열지 않았다. 그래서 공부 못하는 학생에게 벌로 씌우는 고깔모자를 쓰고 교실 구석에 앉아 있곤 했다.

어느 날, 덧셈 뺄셈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그날도 아이는 고깔모자를 쓴 채 창문 너머로 도토리를 물고 장난치는 다람쥐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문득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질문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과를 네 개 가졌는데, 친구에게 한 개를 주면 몇 개 남지?”

늘 묵묵부답이던 아이는 처음으로 손을 들고 말했다.

“선생님, 한 개가 아니라 두 개를 줘야 해요. 친구와 뭔가를 나눌 때는 똑같이 반씩 갖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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