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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소나무 신부와 함께 하는 마음의 산책(8월7일 연중 제18주간 수요일 복음묵상)
작성자신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3-08-07 조회수628 추천수8 반대(0) 신고
소나무 신부와 함께 하는 마음의 산책

2013년8월7일 연중 제18주간 수요일 복음묵상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마태오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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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하나.

병든 자식 때문에 예수님을 찾아온 이방인 여성.
어떻게 해서라도 그분을 만나 그분께 자신의 소망을 전하고자 했다.
“주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이외의 말씀으로 그녀를 대하신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

이러한 모멸적인 답변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인은 그 뜻을 굽히지 않고 예수님을 설득시킨다.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이 여인의 마음을 확인하신 예수님께서는 감동하시며 그녀의 딸을 치유하신다.

예수님께서는 왜 여인에게 그토록 모진 말씀을 하셨을까?
나름대로 짐작해본다.
예수님의 움직임에 군중들은 모여들었고, 제자들은 신경 쓸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그런데 한 여인이 계속 소리를 지르면서 선생님의 움직임을 방해한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의도적으로 아무 반응을 보이시지 않는다.
제자들의 반응을 기다리신 것이다.
제자들이 그 여인을 어떻게 좀 해달라 하자, 그제서야 예수님께서는 여인에게 말을 거신다.
그렇다. 예수님께서는 여인의 마음을 이미 읽고 계셨고, 그녀가 보여줄 태도도 알고 계셨음이다.
이 여인의 아름다운 모습을 통해 제자들을 비롯한 군중들에게 메시지를 전하시고자 한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을 얻기 위해서는 너의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어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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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둘.

엄마들의 자식에 대한 마음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굳이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
모성(母性, Maternitas)이라는 말을 우리는 잘 안다.
그런데 이 말에 대해 오해를 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서 평소 가지고 있던 생각을 나누어 본다.

모성이라는 말은 완성된 개념의 단어가 아니다.
오히려 원초적 본능에 가깝다.
즉 모성이 완전에 가까운 사랑이라던가 숭고함으로 이해하는 것은 잘못이다.

모성이란 하느님께서 여성에게 심어주신 하나의 커다란 힘이다.
그리고 그 힘은 자식에게 집중되는 힘이다.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고 목숨까지 내놓을 수 있는 힘이다.

하지만 그 힘은 자녀를 향한 올바른 사랑이 될 수도 있고,
일그러진 형태의 애착이나 집착으로 변할 수도 있다.
요즈음 아이들의 학교를 들여다보면 선생과 제자의 관계가 아닌 고용주와 고용인의 관계를 보게 된다.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무색하다.
너무도 이기적인 아이들이 만들어져 세상에 던져지고 있다.
더욱 빠른 속도와 더한 무게를 갖고 이기적인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그 배경에는 엄마들의 길을 잘못 찾은 모성이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훌륭한 이들 뒤에는 훌륭한 어머니가 있다는 말이 있다.
그렇지 못한 이들 뒤에는 그렇지 못한 어머니가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모든 여성이 자녀에 대한 모성은 가지고 있지만,
그 모성이 꽃을 피우느냐 마느냐는 모든 엄마 자신에게 달려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녀에 대한 삐뚤어진 감정 세계를 가지고 있는 여성들이 너무도 많은 세상이다.
물론 그 여성들도 그 어머니들에게 잘못 해석된 모성으로 사랑을 받은 결과일지도 모른다.

자식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어야 한다.
가장 좋은 것이란 무엇인가?
졸업장도 든든한 경제적 배경도 아니다.
유전적 뛰어난 외모도 아니다.

그것은 삶의 가치이다.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마음이다.
신앙인이라면 그 가치는 무엇보다도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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