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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소나무 신부와 함께 하는 마음의 산책(8월12일 연중 제19주간 월요일 복음묵상)
작성자신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3-08-12 조회수595 추천수9 반대(0) 신고
소나무 신부와 함께 하는 마음의 산책

2013년8월12일 연중 제19주간 월요일 복음묵상

“여러분의 스승님께서는 성전 세를 내지 않으십니까?” (마태오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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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금이나 봉헌은 절대로 강요되어서는 안 된다.
즉, 마음에서 우러나오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기에 의무 봉헌금인 교무금도 당사자가 책정하고 비밀에 부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금액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순수한 신앙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니라면 진정한 의미의 봉헌이라 할 수 없다.
우리는 동전 두 닢밖에 안되지만 전 재산을 봉헌한 가난한 과부의 헌금을 알고 있다. (루카21,1-4)

교회 살림을 함께 책임지려는 것은 신자들의 당연한 도리이다. .
나눔을 위해 가진 것을 봉헌하는 것 역시 교회의 이유이며 아름다운 일이다.

하지만,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이들의 경제적 차이도 고려해주여야 하는 것은 교회의 의무이자 배려이다.
교회 안에도 사람들 사이에 경제적 차이는 당연히 존재한다.
그 경제적 힘이 신자들의 자리를 가르는 기준이 된다면 그것은 악마의 짓이다.

돈이 없어서 신앙생활을 할 수 없다고 하는 이들이 있어서는 안 된다.
돈이 없어서 교회로부터 받아야 할 신자로서의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이들이 있어서는 안 된다.
돈이 없어서 혼배성사를 할 수 없다거나, 장례 미사를 치를 수 없다면
그것은 교회의 정신에 정면으로 거스르는 길이다.
그리고 그런 교회는 없다고 믿고 싶다.
그리스도는 분명히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중심으로 교회를 세우셨다.
그런데 그것을 잊고 살아간다면 모순도 그런 모순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경제적으로 여유 있다는 것이 죄나 악을 의미하지 않는다.
경제적으로 가난하다는 것이 선이거나 자랑거리도 아니다.
부유함이든 가난이든 서로 나누어야 하는 것이 복음이다.

교회가 건축헌금이니 뭐니 하면서 헌금을 강요한다면 그것은 분명히 옳지 않은 일이다.
교회의 경제적 유지를 위한다는 명목 하에서도 교회가 헌금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어떤 명목의 헌금이나 봉헌도 자발적이어야 한다.
헌금이 왜 필요한지 교회 안의 신자들이 인식하고 십시일반의 기적을 이끌어 나아가면 된다.

때로는 경제적으로 힘든 일에 부딪힐 수도 있다.
하지만 기억해야 한다.
예수님의 일행은 허기가 져서 밀이삭을 잘라먹다가 바리사이의 비난을 받은 적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마태오12,1)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예수님께서는 머리 두실 곳조차 없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마태오8,20)
그 흔한 참새보다 훨씬 귀한 너희들을 그냥 내버려두시지 않겠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한다. (루카12,6-7)

한국 가톨릭은 제법 오래 전부터 성직자들의 소득이 과세 대상일 때, 그 의무를 실천하고 있다.
개신교를 비롯한 불교계에서도 납세의 의무에 동참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는 듯 하다.
무척 고무적이고 바람직한 일이다.
교회가 속한 세상의 의무를 평등하게 함께 지어야 함은 누구보다도 모범을 보여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오늘 복음에서 나온 성전세는 유대인들이 성전을 유지하기 위해서 바친 의무적인 봉헌금과 같은 것이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교무금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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