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누구도 업신여기지 마라
작성자전삼용 쪽지 캡슐 작성일2013-08-12 조회수944 추천수12 반대(0) 신고
 



2013년 다해 연중 제19주간 화요일


<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복음: 마태 18,1-5. 10. 12-14






성전에서 토론하는 어린 예수


조토(Giotto) 작, (1302-1305), 파도바 아레나 경당


     < 누구도 업신여기지 마라>

          
 







 



 

1941127, 하와이 주재 일본 총영사가 동경에 보고한 정기 보고서가 있습니다. 그 보고서에는 진주만에 거하는 미해군 전함의 동태가 자세히 적혀 있습니다. 이러한 비밀 내용을 탐지한 연방수사국(FBI)은 정부 당국에 긴급히 보고서를 올렸습니다.

진주만 근처를 배회하는 일본 어선들은 스파이선이므로 경계 요함.’

그러나 정부 당국은 이 긴급 보고서에 귀 기울이지 않고, 그냥 흘려버렸습니다.

또한 당시 동양에 선교사로 갔다가 막 돌아온 월터 저드 박사도 일본이 전쟁 준비에 광분해 있다고 되풀이하여 경고하였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한낱 선교사의 말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습니다.

127일 월터 저드 박사는 미네아폴리스에 있는 한 교회에서 설교할 때 또 한 번 경고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설교를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일본이 선전 포고도 없이 하와이 진주만을 무차별 공격하기 시작했다는 뉴스를 들었습니다.

 

진주만 폭격에 대한 많은 보고들이 수없이 많았지만 미국은 그것들을 무시했습니다. 일본이 감히 그렇게까지 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매우 심각한 수준이었습니다.

그렇게 커보이던 초등학교 운동장이 어른이 되어 방문해보면 매우 작아 보이는 이유는, 운동장이 작아진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내가 커졌기 때문입니다. 내가 대단하다고 느낄 때 남을 판단하게 되지만 어린이처럼 겸손해지만 모든 이를 존중하게 됩니다.

우리도 다른 사람들의 말을 무시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말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온 우주보다 크신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실 때는 눈에도 보이지 않을 정도의 작은 하나의 세포로부터 출발하셨음을 잊지 말아야합니다. 또한 지금도 성당에서는 가장 좁은 곳에 가장 작은 모습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는 것도 알아야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은 남을 무시하는 어른이 아니라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사람이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하늘나라에서 가장 작게 되신 그리스도가 가장 큰 분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이것을 가르치기 위해서 당신을 세 번씩이나 부인하는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교회의 수장으로써 모든 사람을 받아들이는데 장애가 있었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교회의 수장으로써 세상 사람들을 작게 보는 교만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도 큰 죄를 저지르고 나서는 누구도 자신보다 작게 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어린이와 같은 시선을 지니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아주 옛날 산골,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 아이가 하나 있었습니다. 아이는 배가고파 온 종일 우는 게 일이었지요. 아기의 부모는 우는 아이에게 회초리로 울음을 멎게 하곤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이는 하루에도 몇 번씩 매를 맞을 수밖에.

그날도 부모는 우는 아이에게 매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집 앞을 지나던 노스님이 그 광경을 물끄러미 보다가 불연 무슨 생각이 난 듯 집으로 들어와서 매를 맞고 있는 아이에게 넙죽 큰절을 올렸습니다.

이에 놀란 부모는 스님에게 연유를 묻습니다.

스님! 어찌하여 하찮은 아이에게 큰절을 하는 것입니까?”

... 이 아이는 나중에 정승이 되실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곱고 귀하게 키우셔야 합니다.”라고 답하고 스님은 홀연히 자리를 떴습니다.

그 후로 아이의 부모는 매를 들지 않고 공을 들여 아이를 키웠습니다. 훗날 아이는 정말로 영의정이 되었습니다.

부모님은 그 스님의 안목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지요. 감사의 말씀도 전할 겸 그 신기한 예지에 대해 물어보고자 스님을 수소문하기 시작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스님을 찾은 부모는 웃음을 띠며 감사의 말을 건네고 바로 궁금했던 점을 묻습니다.

스님, 스님은 어찌 그리도 용하신지요. 스님 외에는 어느 누구도 우리 아이가 정승이 되리라 말하는 사람이 없었거든요.”

빙그레 미소를 띠던 노승은 차를 한 잔씩 권하며 말문을 엽니다.

이 돌중이 어찌 미래를 볼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세상의 이치는 하나이지요. 모든 사물을 귀하게 보면 한없이 귀하지만 하찮게 보면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는 법이지요. 마찬가지로 아이를 정승같이 귀하게 키우면 정승이 되지만, 머슴처럼 키우면 머슴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어머니와 스님의 시선은 확실히 달랐습니다. 어머니는 무시했고, 스님은 존중할 줄 알았습니다. 우리는 스님처럼 가장 작고 보잘 것 없는 이에게도 넙죽 절할 수 있는 작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저에게도 나는 커지고 있는가, 작아지고 있는가?’를 두고 혼자 고민할 때 해답을 준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고해성사였습니다. 사제가 되고 처음엔 고해성사 주는 것이 참 힘들었습니다. 마음속으로 왜 저런 죄를 짓지?’, 혹은 왜 저렇게 살지?’하며 판단을 하니까, 고해를 몇 명만 들어도 힘이 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 저 처지였다면 더 큰 죄를 지었을 수도 있을 거야.’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니 죄를 용서해 주는 것도 쉽고 고해를 듣는 것도 크게 어렵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런 면에서는 조금씩 어린이가 되어간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해집니다.

내가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그 사람들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다면 내가 어린이가 아니라 어른이 되어 있어서 그런 상태로 죽으면 하늘나라에서 결코 큰 사람이 될 수 없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