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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사랑의 소명과 승천
작성자전삼용 쪽지 캡슐 작성일2013-08-14 조회수674 추천수9 반대(0) 신고



2013년 다해 성모승천 대축일


<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습니다>


복음: 루카 1,39-56






성모자(聖母子)와 엘리사벳과 세례자 요한


바키아카(Bacchiacca) 작, (1530), 에스테르곰 크리스챤 박물관


     < 사랑의 소명과 승천의 영광>

       학교에서 집에 TV가 몇 대 있느냐, 차가 있는 사람 손들어 보아라, 부모의 직업이 무엇이냐는 둥의 설문조사를 받아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저의 아버지 직업은 미군부대에서 막일을 하시는 분이었습니다. 저는 처음 그 칸에 아버지가 일러주신 대로 말 뜻도 모른 채 노가다라고 써 냈습니다. 그랬더니 선생님이 웃으셨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창피해서였는지 그냥 회사원으로 썼습니다. 왜냐하면 막일꾼의 아들과 아이들이 놀아줄 것 같지 않아서입니다.

그러나 저와는 매우 다른 처지의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양옥집에 살면서 유치원을 다녀 이미 숫자와 한글을 섭렵한 아이들, 전기가 뭔지도 모르는 저에 비해서 텔레비전과 심지어는 차까지 있다는 아이들. 정말 저와는 다른 아이들이었습니다.

특히 한 아이는 코 질질 흘리는 나의 모습과는 다르게 공주처럼 예쁜 옷을 입고 깍두기공책에 한글을 예쁘게 쓰고 있었습니다. 그 때 그 아이는 머슴과 같은 제가 감히 더럽힐까봐 옷자락도 만질 수 없는 공주님이었습니다. 물론 그 아이와는 친해지거나 말을 붙일 엄두도 낼 수 없었고 그렇게 초등학교가 지나버렸습니다.

 

관계란 두 사람이 서로에게 합당하다고 생각할 때 끝까지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열등감이 많은 여자가 있다고 합시다. 그 자존감이 약한 여자는 남자들과 오래 사귀지 못합니다. 나중에 남자에게 버림받을 두려움을 가지게 되어 자신이 먼저 남자를 밀쳐내기도 하는 것입니다. 남자든 여자든 자신이 합당하게 무엇을 받아야 하는지 잘 압니다.

 

어떤 자매님이 이런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수십 년 전에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실 때 그 자매는 부모를 모시랴 자녀를 돌보랴 밭에서 일하랴 많은 고생을 하고 있었답니다. 물론 이런 집안으로 이사 와서 이런 고생을 하니 남편을 비롯해 다 싫어졌던 것 같습니다.

이것이 안타까워 남편은 세탁기나 전기밥솥이라도 사주고 싶었지만 아내는 그런 것이 다 무슨 필요가 있느냐며 거부하였습니다.

남편이 보기에 하도 안 돼서 몰래 세탁기를 사 놓고 하우스에서 일하고 있는 아내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세탁기를 사 놨다고 한 번 들어가서 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왜 시키지 않은 일을 했느냐며 화를 내고 세탁기를 쳐다보지도 않고 밭으로 다시 일을 하러 나갔습니다. 일주일 동안이나 그 세탁기가 어떻게 생겼는지 쳐다보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사람은 신기하게도 고생해야 합당하게 원망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미워하기 위해 상대의 호의를 무시하기도 합니다.

일주일이 지나서야 살짝 세탁기를 쳐다보았고 버튼 하나로 세탁이 끝나고 탈수까지 되는 것을 보고는 이렇게 편한 것을, 왜 진작 사용하지 않았을까?’하며 후회하였다고 합니다.

 

왜 그 때 그 자매는 남편의 호의를 받지 않으려 했을까요? 사실은 자신이 그런 것을 받을만하지 못하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이냐면 남편에 대한 미움을 가지고 있기에 남편이 주는 사랑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누구든 양심이 있기 때문에 자신에게 합당한 것을 받으려고 하는 본성이 있습니다.

마음엔 원망을 지니고 싶은데 감사가 들어오는 것을 허락할 수 없기에 축복도 거부하는 것입니다.

 

하늘나라란 하느님께서 주시는 복을 합당하게 받을 수 있을 때 이루어집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그러기에 합당하다고 생각해도 우리가 그렇지 못하면 하늘나라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성모승천은 바로 성모님께서 하느님께로부터 영혼과 육체, 모두 영원한 행복을 누리기에 합당하다는 축복을 성모님도 합당하게 받아들이는 순간입니다. 사실 우리들은 이런 축복을 감당할 능력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위의 자매가 남편에게 그랬듯이, 우리도 하느님께 어느 정도는 원망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원망에서 감사로 가는 것이 승천입니다. 그래서 승천은 마지막 때가 아니라 바로 이 순간부터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성모님은 하느님을 이렇게 찬미합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찬미하는 분은 이미 하느님께로 향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미 승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미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을 찬미하지 않는다면 아직은 승천할 준비가 되지 않은 것입니다. 그분이 주시는 영광을 주실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것입니다.

 

그분의 축복을 받기에 합당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 이것이 하늘나라입니다. 그러나 어떻게 그것을 스스로 느낄 수 있을까요? 바로 나에게 주어진 소명을 다 완수함으로써만 느낄 수 있습니다. 사람은 먼저 자기 스스로 무엇을 받기에 합당하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설득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가 자기에게 요구하는 소명을 이루어 냈을 때야만 그 사람과 관계를 이룰 수 있음을 스스로 이해시키게 됩니다.

사제가 되어 교의신학으로 바꾸고 처음부터 다시 하여 다 끝내고 비행기를 탈 때의 그 기분은 정말 하늘을 나는 것 같았습니다. 내가 공부를 한 것이지만 하느님께 감사했고 보내주신 주교님께 감사했습니다. 그러나 처음엔 왜 이런 고생을 시키시느냐고 원망도 많이 했지만 끝내고 나니 감사한 마음이 올라왔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늘을 날게 해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그러나 그것에 합당한 준비를 하는 것은 우리 자신입니다. 그분이 주신 소명을 완수해야만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늘을 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성모님이 그런 마음이신 것이고, 우리도 마지막 날에 성모님처럼 아멘!’하며 하느님의 뜻을 완수했을 때 그런 영광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밖엔 없습니다. 사랑은 자신을 제물로 십자가에 못 박아 상대를 위한 양식이 되어주는 것입니다. 사랑은 이렇게 자신을 불사르는 것입니다. 마치 물이 자신을 불사르면 수증기가 되어 하늘로 오를 수 있는 것처럼 우리도 성령의 불로 우리를 태우지 않고서는 하늘로 오를 수 없습니다. 우리의 소명이 그리스도의 소명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우리 십자가입니다. 김기희 선수는 올림픽 축구경기에서 단 4분을 뛰었습니다. 그래서 메달도 따고 군 입대도 면제 받았습니다. 아주 조금이라도 그리스도의 사랑의 소명에 참여하지 않고서는 그분과 함께 나누는 영광도 감사도 없습니다. 나의 소명,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이루라고 맡겨주신 나의 소명을 끝까지 이루는 것이 성모님의 승천에 참여하는 길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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