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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20주일/나는 평화를 주러 온 것이 아니라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작성자원근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3-08-17 조회수546 추천수3 반대(0) 신고

 

루카 복음. 12,49-53 나는 평화를 주러 온 것이 아니라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참 평화 "평화! 평화! 평화를 주옵소서. 그 영원한 참 평화를 우리게 주옵소서."  우리가 자주 부르는 성가 44번 ‘평화를 주옵소서.’의 한 구절입니다. 우리의 간절한 소망을 잘 표현하고 있지요. 그런데 우리의 이런 바람과는 달리 예수님께서는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아들이 아버지에게, 어머니가 딸에게, 딸이 어머니에게, 시어머니가 며느리 에게,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맞서 갈라지게 될 것이다"(루카 12,51-53)고 악의가 가득 찬 듯한, 말씀을 하십니다.   처음 성당에 나온 사람이 이 말씀을 들으면 깜짝 놀라서 금방 돌아서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듣기에 충격적인 말씀입니다. 오랜 신앙생활을 해왔던 신자들 역시 오늘 말씀을 들으면 어떤 의도로 이렇게 강하게 말씀하시는지 의아해할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바라는 것은 '평화'이고 집안 식구들과의 '일치'인데 평화가 아니라 분열을 일으키러 오셨으며 집안 식구들이 맞서 갈라지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니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선뜻 이해가 되지 않지요.   오늘 복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카 예언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북 이스라엘이 멸망하고, 풍전등화의 신세였던 남 유다도 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미카 예언자는 이렇게 경고합니다.   "친구를 믿지 말고 벗을 신뢰하지 마라. 네 품에 안겨 잠드는 여자에게도 네 입을 조심하여라. 아들이 아버지를 경멸하고 딸이 어머니에게,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대든다. 집안 식구가 바로 원수가 된다"(미카 7,5-6).   가장 가까워야할 부부 간에, 또 부모 자식 간에,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 불신과 분열, 악이 끼어드는 이러한 세상은 망할 수밖에 없고 하느님의 진노가 내릴 수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하루라도 빨리 회개하지 않으면 망할 수밖에 없다고 미카 예언자는 호소합니다. 또한 이렇게 악이 기승을 부리는 시대에도 주님만을 바라보고 의지하는 자는 주님께서 몸소 원수를 갚아 주시고 빛을 보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심어줍니다(미카 7,8-10 참고).   오늘 예수님 역시 너무나도 가까워서 악이 감히 끼어들 것 같지 않은 인간관계 에도 악이 끼어드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언하십니다. 그러나 그런 일들이 일어난다면 어떠한 경우에도, 비록 부부 사이나 형제 사이일지라도 그냥 넘어 가지 말고 싸워 분열을 일으켜서라도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씀하시지요.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남편이 도둑인 가정이 있었습니다. 아내는 남편이 도둑인 것을 알고 있었지만 생활을 꾸려가야 한다는 이유로 쉬쉬하며 방관하고 지냈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예수님을 알게 되었다면 상황은 달라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는 말씀은 싸워서라도 그러한 불의한 것에 대항하여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참 평화는 잠시의 혼란이 두려워 덮어두는 것이 아니라 싸워 갈라지더라도 정의를 세워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싸워서라도 도둑질을 못하게 바로잡는 것, 그래서 바르게 살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것이 예수님께서 오늘 '분열을 일으키러' 왔으며 집안 식구끼리 '맞서 갈라지게 될 것이다'라는 말씀의 의미입니다.   우리가 깨어있지 않으면 부모와 자식 간이나 형제 간, 부부 간처럼 가까운 사이여서 도저히 끼어들 수 없을 것 같은 관계 곳곳에 악이 끼어듭니다. 먼 옛날 미카 예언자 시대만의 말씀이 아닙니다. 가슴이 아프지만 그것이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복음적인 것과 비복음적인 것, 또 해야 될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을 놓고 갈등합니다. 어둠과 죄가 나날이 득세하는 세상을 살면서 노력은 하지 않고 "평화! 평화! 평화를 주옵소서"하고 노래만 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세상이 다 그런 거지 뭐'하며 덮어둔 채로 두루뭉술하게 살아가지 말고 힘들더라도 싸워서 바로잡아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노력하면서 '평화를 주옵소서'라고 기도하고 노래할 때에야 참 평화가 올 수 있지요. 참 평화를 위해서는 일시적 분열이나 누군가와 맞서는 일까지도 불사해야 한다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정의를 바로 세우고 참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어느 누구와의 갈등이라도 개의치 말고 바로잡아야 글 : 이 기양 신부 ======== ☆ ===== ☆ ===== ☆ ======== 거짓 평화를 깨뜨리자 기원 전 586년경에 유다왕 시드키야는 나라가 위태로운 때에 정세를 잘못 판단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예루살렘은 바빌론의 포위를 받고 있었는데 이집트의 파라오 왕이 이에 맞서서 군대를 이끌고 출동하자 바빌론군이 일시 포위를 풀고 후퇴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것을 보고 유다의 왕과 대신들이 손뼉을 치며 상황 은 이제 끝났다고 착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유다는 부패와 부정이 판을 쳤으며 정치와 사회는 물론 종교까지도 속속 들이 썩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강대국들의 침공은 이를테면 하느님의 경고요 회초리였습니다. 바로 이때 예언자 예레미야가 나타나서 왕에게, 절대로 형세를 쉽게 판단하지 말라고 하면서 차라리 바빌론에게 항복하는 것이 유일한 살 길 이라고 충고했습니다. 나라가 바빌론의 위험에서 풀렸는데 퇴각한 바빌론을 쫓아가서 항복을 한다는 것은 누가 생각해도 그것은 바보요 미친 짓이었습니다. 그리고 왕과 대신들이 볼 때 예레미야는 국가 반역자요 또는 국가 전복의 기도 자였습니다. 그래서 대신들이 왕을 설득하여 예레미야를 죽이기 위해 깊은 구덩이에 내던졌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레미야의 말을 끝까지 거부하던 유다는 크게 망했으며 왕자들은 모두 살해되었고 왕도 눈알이 뽑힌 채 바빌론으로 끌려갔다가 거기서 비참하게 죽었 습니다. 사필귀정이었습니다. 썩으면 스스로 망하게 되어 있고 또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런 어둡고 혼란한 세상에서 예언자는 실로 외로운 투쟁의 길을 걸어가야 했습니다. 예언자의 길은 참으로 고달픕니다. 말하자면, 독재 국가에서는 양심 있는 목소리를 싫어하며 썩은 사회일수록 진리와 정의를 외면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시대의 예언자는 기존의 질서와 평화를 깨뜨리는 자로 간주됩니다. 그놈들(?) 때문에 나라가 시끄럽고 그놈들 때문에 백성들 사이에 분열을 조장시킨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오늘의 복음과도 연결이 됩니다. 예수께서는 오늘 "내가 이 세상을 평화롭게 하려고 온 줄로 아느냐? 아니다. 사실은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고 하심으로써 우리에게 커다란 충격을 안겨 주었습니다. 예수님은 평화 자체이십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평화를 위해 오셨으며 또 평화 때문에 죽으셨습니다. 그런데 왜 평화를 뒤집는 말씀을 하셨습니까? 그렇습니다. 예수님 이 주시는 평화와 세상이 말하는 평화는 다릅니다. 아주 다릅니다. 주님이 주시는 평화는 우리가 받아들이기가 참으로 부담스럽습니다. 대단히 거북하고 귀찮을 때가 많습니다. 반면에 세상이 주는 평화는 아주 달콤하게 보입니다. 그것은 너무 쉽고 또 편안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세상이 주는 평화는 결국 인생과 세상을 파괴시키는 거짓되고 환상적인 평화인 것입니다. 오직 주님만이 주시는 평화가 세상을 구합니다. 일제 식민지 시대부터 비롯하여 자유당 독재, 군사 독재 정권시대를 경험하면서 우리는 여러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나라가 썩거나 말거나, 망하거나 말거나 자기 몸만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서 처신을 합니다. 아부도 하고 굴욕적인 삶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말하자면 거짓 평화입니다. 언젠가 신문 보도를 보니까 깡패 두 명이 대로상에서 대낮에 흉기를 휘두르며 여인의 가방을 강탈해 가는데 지나가는 행인들이 멍하니 쳐다만 보고 아무도 손을 쓰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남자만도 수십 명이 있었다는데, 여차하면 자기들도 다칠지 모르니까 모두가 외면하는 바람에 강도들은 아무 제지도 받지 않고 유유히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거짓 평화입니다. 우리가 비록 손해를 본다 해도 그가 진정 정의와 진리를 위해 투쟁을 했으며 악과 싸우기 위해 성실한 노력을 했다면 그는 평생 떳떳합니다. 그러나 그가 그 어려운 때에 자신만의 이익과 신변의 안전만을 위해서 불의에 눈감고 악과 타협하려 했다면 그는 평생 비굴하고 떳떳하지 못한 인생이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참 평화를 알아야 하며 참 평화를 위해서 거짓 평화를 과감하게 깨뜨릴 수 있는 용기와 신앙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참 평화는 거저 오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에 못 박혀 고난을 받으셔야 했듯이 우리도 부서지고 깨지는 아픔을 감수해야 합니다. 그러나 예언자가 걸어간 길은 가시밭 길이지만 그러나 그가 걸어간 길은 꽃길이 됩니다. 오늘 예수님은 당신이 세상에 불을 지르러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다시 말해 거짓 평화를 부수고 깨뜨려서 불 질러 버리러 오셨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도 참 평화를 위해 노력합시다. 썩은 평화는 모두 끄집어내어 불살라 버리고 바람이 불어도 날아가지 않고 비가 쏟아져도 떠내려가지 않는 생생하게 살아 있는 참 평화를 구하도록 합시다. 글 : 강 길웅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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