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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설마 분열을 일으키러 오셨을까? / 반영억라파엘 감곡매괴 성모성당
작성자김세영 쪽지 캡슐 작성일2013-08-18 조회수782 추천수10 반대(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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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0주일


   <나는 평화를 주러 온 것이 아니라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 루카 12,49-53




설마 분열을 일으키러 오셨을까?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주님의 사랑은 언제나 변함이 없으십니다. 그분의 사랑은 크고 넓고 깊은 사랑입니다. 그 주님의 사랑을 살 수 있는 은혜를 입으시길 기도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에페소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몸으로 유다인과 이민족을 하나로 만드시고 이 둘을 가르는 장벽인 적개심을 허무셨습니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콜로새 신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그분 십자가의 피를 통하여 평화를 이룩하시어 땅에 있는 것이든 하늘에 있는 것이든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만물을 기꺼이 화해시키셨습니다(콜로1,20). 라고 주님의 참 평화를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친히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 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요한14,2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전혀 다른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루카12,51). 정말 주님께서는 분열을 일으키러 오셨을까요? 예, 그렇습니다.




저는 신부가 되겠다는 결심을 하고 신학교에 가겠다고 어머님께 말씀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어머님께서 반대하셨습니다. ‘학비도 안대줄 것이고 너와 나는 이제 끝이다.’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저와 어머니와의 사이에 갈등과 분열이 생겼습니다. 어느 날 친구 어머님을 만나게 되었는데 ‘신부가 되는 것도 좋지만 부모님에게 효도도 해야 되지 않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저와 어머님의 갈등이 다른 사람에게 전해졌구나 하는 생각에 저의 결심을 굳히고 더 확고하게 ‘신학교에 간다’고 선언하였습니다. 부모님께서 허락하시기까지 꽤나 오랜 시간을 부모님과 소원하게 지내야 했습니다. 이때의 갈등과 분열은 하느님을 선택하기 위한 진통이었습니다. ‘성장통’이었습니다. 어머님께서는 제가 미국 교포사목을 하는 동안 한 통의 편지를 보내주셨는데 신학교에 가는 것을 반대했던 미안함을 표현하셨습니다. 지금은 매일 저를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다.



사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멀리 있는 사람과의 관계는 원만합니다. 등을 지거나 원수 되는 일은 없습니다. 오히려 한솥밥을 먹는 사람이 원수가 됩니다. 그런데 집안 식구가 원수가 되는 이유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집착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각자의 탈란트에 따른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 것을 더 강하게 고집하기 때문입니다.
왜 너는 나의 말을 따르지 않느냐? 왜 내가 하라는 대로 하지 않느냐? 나의 뜻을 존중해 주지 않느냐? 하고 말하며 자기의 기대를 채워주지 않는 것에 실망을 갖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자기 나름의 기준에 따라 판단하고 평가하며 실망과 상처를 지니고 결국에는 네 마음대로 해봐라. 어디 잘 되나 두고 보자. 하는 마음을 품기까지 합니다.




여러분은 사자와 황소의 결혼 이야기를 아실 것입니다. 사자와 황소가 결혼하여 행복하게 사는 데 하루는 황소가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정성을 다하여 준비하였습니다. 그리고 사자는 큰 기대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먹으려 하니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황소가 여물로, 풀로 준비하였기 때문입니다. 사자는 화가 났습니다. 잔뜩 기대를 하였는데 그 기대의 욕구가 채워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황소도 화가 났습니다. 어떻게 준비한 것인데, 나를 무시하는 것인가? 왜 안 먹느냐? 정성을 기울이고 사랑을 쏟은 만큼 화가 났습니다. 다음날은 사자가 준비하였습니다. 고기를 마련하였습니다. 그것도 쇠고기로 준비하였습니다. 결국 황소와 사자는 서로를 위하여 정성과 사랑을 다하였으면서도 남은 것은 기쁨과 보람이 아니라 ‘화’밖에 없었습니다. 그야 말로
눈먼 최선은 최악을 낳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최선에 최선을 다하되 깨어서 해야 합니다. 제대로 된 사랑을 하지 않으면 결국은 분열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서로 맞서게 되는 이유는 잘못된 사랑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사랑을 받으면 행복합니다. 그러나 사랑을 주면 더 행복합니다. 사랑하면 풍요로워집니다. 부유해 집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이 소유하고 지배하는 것에서 행복을 찾으려 합니다. 사실 세상은 더 많은 소유와 지배,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에 우리를 유혹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그에 맞서야 합니다. 그러니 마음에 분열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선을 선택해야 하는 당연함 속에서도 불이익을 당할까 두려워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고 선언 하시는 것입니다. 어떠한 처지와 상황, 여건 안에서도 흔들림 없이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선택해야 하겠습니다.




집회서 15장 15절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네가 원하기만 하면 계명을 지킬 수 있으니 충실하게 사는 것은 네 뜻에 달려 있다. 그분께서 네 앞에 물과 불을 놓으셨으니 손을 뻗어 원하는 대로 선택하여라. 사람 앞에는 생명과 죽음이 있으니 어느 것이나 바라는 대로 받으리라.” 우리는 분명 생명을 선택해야 합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할 때 눈앞에 보이는 축복이 다인 것 같지만 주님의 눈으로 보면 그 축복이 저주요, 오히려 지금의 저주가 축복이요, 영원한 선물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어떠한 처지에서든지 하느님을 선택하기를 두려워 마시기 바랍니다.




부모가 아기를 낳게 되면 탯줄을 잘라야 합니다. 그래야 아기가 삽니다. 아기가 어머니의 품에 있고 싶다고 해서 탯줄을 그냥 둘 수는 없는 법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났다면 혈육으로 된 핏줄도 중요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육적인 관계보다 영적인 새 생명의 관계를 단호히 선택해야만 합니다. 혹 인륜의 도리에 소홀한 것처럼 여겨지더라도 주님을 먼저 택하면 그 다음은 주님의 풍요로 채워지게 됩니다. 부모 형제, 이웃을 더 깊이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혈육을 먼저 택하게 되면 하느님을 잃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길도 널찍하여 그리로 들어가는 자들이 많다.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얼마나 좁고 또 그 길은 얼마나 비좁은지, 그리로 찾아드는 이들이 적다”(마태7,13-14).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어떠한 상황 안에서도 천상과 연결된 결정을 내려야 하고 좁은 문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러니 세상의 요구와 대결을 하며 분열을 가져올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은 사랑이시고 우리 모두를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당신이 사랑한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하라고 명하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택하면 나머지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넉넉함을 얻게 될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로마서 15장 13절에서
희망의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믿음에서 얻는 기쁨과 평화로 채워 주시어 여러분의 희망이 성령의 힘으로 넘치기를 바랍니다.하고 기도하였습니다. 진정한 평화는 바로 주님께 대한 믿음에서 오는 것임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옛말에
너,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도 주님께서 주시는 참 평화를 얻기 위해서는 나 자신과의 싸움, 불의와의 싸움을 해야만 합니다. 이 과정에서 오는 분열은 참 평화를 위한 불가피한 과정입니다. 진정한 평화를 위해서는 이분열의 과정을 거쳐야만 합니다. 그러나 이 분명한 것은 하느님을 선택하면 모든 것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 정화의 모습을 보여 주셨는데 그때에 환전상들의 가판대를 둘러엎으시고 누가 기도하는 아버지의 집을 도둑의 소굴로 만들었느냐며 화를 내셨습니다. 사랑을 강조하신 분이지만 예상하지 못한 행동도 하셨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불의와 죄악으로 얼룩진 거짓 평화와 맞섬으로써 분열을 가져 왔지만 그 분열은 멸망을 전제로 한 것이 아니라 참 평화를 전제로 한 분열이었습니다.




가정 안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믿지 않는 분이 있다면, 특별히 자녀가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고 있지 않다면 신앙생활을 하도록 권해야 합니다. 역작용이 날까 두려워하며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급급해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영생을 위한 값진 보물을 발견 하였으면서도 그것을 자기 혼자만 가지고 있다는 것은 결코 잘하는 일이 아닙니다. 더 큰 것을 주기위한 갈등, 분열은 감수해야 합니다.




어제는 감사한 날이었습니다. 한 형제님의 팔순을 맞이하여 본인의 뜻에 따라 가장 귀한 선물을 주문하였는데 가족 모두가 함께 미사를 봉헌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18명의 가족이 미사참례를 하였습니다. 그중에는 쉬고 있는 자녀도 있었습니다. 미사봉헌을 마친 후 한 자녀가 말했습니다. “신부님, 오늘 강론은 제에게 하시는 말씀 같았습니다. 이제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자녀들이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기를 소망한 형제님의 뜻이 이루어졌습니다. 여러분도 자녀들에게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십시오. 하늘을 차지할 수 있는 은총의 기회를 만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비온 뒤에 땅바닥이 단단해 지는 것처럼 어떤 풍파가 있은 후에 일이 더 단단하게 여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사안일, 허위나 부정,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하느님의 정의와 사랑을 선택하는데 주저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주님께서 주시는 참 평화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참 평화를 위한 분열을 감당하는 가운데 행복한 한 주간 보내시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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