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3-08-18 조회수1,570 추천수12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3년 8월 18일 연중 제20주일



Do you think that I have come to establish peace on the earth?
No, I tell you, but rather division.
(Lk.12,51)


제1독서 예레 38,4-6.8-10
제2독서 히브 12,1-4
복음 루카 12,49-53

스페인의 멜리데(Melide)라는 작은 성당에는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는 십자가가 하나 있습니다. 글쎄 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오른팔이 못에서 빠진 채 밑으로 내려져 있기 때문이지요. 여기에는 이러한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옵니다.

옛날에 이 십자가 아래에서 어떤 형제님이 진심으로 뉘우친 뒤, 고해소에 들어가 신부님께 자신의 모든 죄를 눈물 흘리며 고백했지요. 사제는 그에게 사죄경을 외워주면서 다시는 죄를 지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당부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정말로 열심히 살았습니다. 죄를 짓지 않으려 했고 또 주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살기 위해 철저히 살았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이 완벽하겠습니까? 죄를 지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과 결심을 하지만 돌아서면 다시 똑같은 죄를 짓고 마는 것이 우리 인간의 나약함과 부족함이겠지요. 이 형제님 역시 결국 죄에 다시 걸려 넘어졌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다시 사제를 찾아가 고해성사를 청했지요.

지난번과 똑같은 죄를 고백하는 이 형제님의 죄 고백을 들은 신부님은 순간 그의 진정성을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죄를 용서할 수 없다는 말을 하시지요. 바로 그 순간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 당신 오른손을 못에서 빼내서 이 사람에게 직접 십자가를 그어주시면서(사죄경을 외울 때 십자가를 긋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직접 이 사람의 죄를 용서하시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이 신부님께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그를 위해 피를 흘린 것은 그대가 아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보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어쩌면 이 말씀은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 모두를 향한 주님의 메시지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너무나 쉽게 다른 이들을 판단하고 단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말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실 수 있는 분은 십자가를 통해 피를 흘리신 주님뿐이신데, 우리들은 내 자신이 용서할 수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어떻게든 용서하시는 주님의 사랑과 욕심과 이기심으로 가득차서 잘못된 판단을 하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은 커다란 차이를 보입니다. 그래서 당시의 사람들은 주님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주님을 가까이 할수록 자신들이 더욱 더 초라해지고 비참해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에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불을 지르시고 분열을 일으키신 것입니다.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는 사람과 주님의 뜻과는 정반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서로 갈라지도록 만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삶이 과연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줄까요?

내가 다른 이들을 위해 피를 흘린 것이 아닙니다. 오로지 주님만이 우리를 위해 피를 흘리셨습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면서 우리도 주님의 뜻을 따라야 할 것입니다. 섣부른 판단과 자신만의 생각을 내세우면서 주님의 뜻과 정반대로 걸어가는 어리석은 행동은 이제 버려야 합니다. 그러한 삶만이 주님의 반대편이 아닌 주님과 같은 편이 되어 참 행복의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 제2독서에 말하듯이, 우리가 꾸준히 달려야 할 길입니다.

 
과학은 정리된 지식이다. 지혜는 정리된 인생이다(임마누엘 칸트).


스페인의 멜리데 성당의 십자가를 그대로 재현한 수원교구 상현동성당 십자가.



다섯 페이지
 

프랑스의 문호 에밀 졸라. 어느 날, 그는 파리에서 허름한 집을 찾아낸다. 주변에는 철길과 숲이 있었으며 집 앞에는 잔잔한 강이 흐르고 있었다. 졸라는 이곳에서 사망할 때까지 24년 동안 살았다. 그가 친한 기자에게 보낸 편지에는 평온하면서도 규칙적인 일상이 잘 표현돼 있다.

“아침 일곱 시쯤 일어나면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지. 머릿속을 선명하게 하는 데 목욕만 한 것이 없다네. 아침 식사를 하고, 강변을 15분 정도 산책한 다음 책상에 앉지. 아홉 시부터 오후 한 시까지 글을 쓴다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고 말이지.”

졸라는 네 시간 동안 꼬박꼬박 다섯 페이지를 썼다. 하루도 빼놓지 않았기에 무시할 수 없는 양이었다. 이것은 평생을 지킨 맹세나 다름없었다.

졸라의 작업실 벽난로 위에는 아래 문장이 새겨져 있다.

“Nulla dies sine linea(한 줄도 쓰지 않는 하루는 없다).” (‘Ambler’ 중에서)

다섯 페이지. 작가들에게 어떻게 보면 적은 양일 수도 있지요. 그러나 이 양이 매일매일 계속되어 쌓였을 때에는 그 어떤 사람도 무시하지 못할 양이 되는 것입니다. 작은 한 걸음, 한 걸음이 모여서 원하는 목적지에 도달하게 만들지요. 우리 역시 그 작은 한 걸음을 무시하지 말고, 내디딜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