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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늘이, 사랑의 힘과 악에 의한 고통 의미 [기드온]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3-08-19 조회수367 추천수0 반대(0) 신고

2013년 2월20일 전까지
(10년 동안 보살핀 영원한 아기)

1. 선천성 소경 (두 눈의 시신경이 거의 없슴) 사물 및 상황 인식이 힘듦, 따라서 정서불안해 짐. 어떤 일을 하기 전에는 말로써 상황을 미리 설명해 주고 또한 손으로도 감지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갑자기 일을 진행하면 놀라서 자신을 때리기도 합니다. 예; 기저귀를 간다. 밥을 먹자 등등의 사전 식별을 할 수 있게 해 준다는 의미.
2. 선천성 중이염 (소리는 들리는 편, 음악이 나오면 몸을 흔듦, 운동 효과) 발병으로 진척 안됨, 하지만 귀 속에 심한 귀지로 위험 상태. 목욕할 때 귀 조심해야 함.
3. 상세불명 혈소판 감소증 (혈액종양) - 더 이상 암으로 악화되지 않고 정지되어 있슴.
4. 심한 변비 (변비해소를 위해 매주 노가다해서 유산균 음료 구입하여 식이요법과 물을 자주 먹임. 매일 저녁과 새벽 시간에 배마사지 병행) 식이요법; 식이섬유 반찬과 식이 섬유제(조이거트) 반포 정도 매일 저녁에 먹이며 물을 자주 섭취해 주고 등교하지 않는 날과 일찍 하교하는 날과 저녁과 새벽 시간에 장 마사지를 병행)
5. 선천성 탈골 (두 다리 근육통증을 완화시키려고 발마사지 - 매주 수, 토, 일요일, 매일 저녁. 기저귀 갈 때 통증 조심. 천천히 살살해 주면 자해하는 의사표현 하지 않음)
6. 저체온증 (아주 한여름철 7월8월 제외하고는 매일 전기장판 사용, 혈소판 감소증 에방, 저체온증과 혈소판 감소증 현상이 동시에 나타남을 오랜 경험에서 알게 되었슴)
7. 약간 갈은죽과 갈은 반찬 먹음 (1년간 처음엔 아주 곱게 갈은 죽만으로 1시간30분, 지금은 20분정도 소요, 가루로 된 유산균제 스틱형인데 죽을 먹이고 3초뒤 바로 혀 끝에다 약간 뿌려주면 입과 혀를 움직이면서 '얌얌' 함. 이것으로 5년이상의 습식훈련하여 밥(죽)은 잘 먹기는 하지만 훈련된 식습관을 잃어버릴 위험성은 항시 내재)
8. 자해 자기 의사 표현으로 소리는 내지 않고, 자기 입 혹은 얼굴을 때리면서 표현 함. (정신지체가 아님 - 여의도 성모병원에서 진단, 심한 스트레스 받으면 자해가 더 심해짐) 자기 마음을 몰라주면 스트레스를 받아 자해로 자기 의사를 표현해 내는 것. 예; 변비가 심하면 스트레스를 자해로 표현 하는 것. 왜냐하면 말을 하지 못하고 다른 아기들 처럼 소리를 내지 않고 자해로 표현 함. (아빠와 함께 하는 동안 거의 99% 자해 멈춤, 자해 예방 차원에서 아기의 마음을 잘 살핌) 엄청난 심한 자해에서 거의 자해를 안 하게 되었슴.
9. 잠 잘 때 바로 눕지 않음, 베개를 베고 옆으로 누워서 지냄 (깊이 잠잘 때에는 엎드려서 잠; 엎드려서 자면 가슴압박과 호흡이 약해지며 다리 혈액순환의 차질 그리고 오래 엎드리면 장 활동이 지장, 변비)
10 체위변경 잠들기 전까진 이쪽 저쪽 옆으로 체위변경 해 주어야 함. 한 쪽으로만 오래 치우치면 손발저림으로 자기 팔을 깨물기도 함. 이때, 혈관이 부어 오를 때가 있는데 혈관위험 때문. 제 스스로 반대로 눕는 체위변경 하도록 연습시켜 스스로 할 때도 있슴. 

 


지금 22살이지만 사진처럼 여전히 손가락 물고 노는 아직 아기와 같습니다. 겨우 5살 정도같은 여아 입니다. 발육장애아 이고 휠체어에 앉아 학교 생활도 합니다.말은 알아들으며 전문단어는 모를 것이지만 생활단어들은 알아 듣습니다. 2 ~ 3가지 문제를 가진 버려진 다른 아기들 보다 무려 10가지이고 이렇게 문제가 많았으니 누군가 사랑으로 지극히 보살펴 주지 않으면 또 다시 버려지고 아기 자기 자신은 무척 힘들었다고 하겠습니다.

정신 병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해한다고 해서 아빠와 만나기 이전까지(아빠와 만난 몇년 동안에도) 정신 약을 많이 오랫동안 복용시켰습니다.그 이유로 불필요한 약물 과다에 의한 상세불명 혈소판 감소증이라는 혈액 종양 질병의 고통을 앓아 왔습니다. 피를 흘리면 응고않고 멈추지 않는 흔히 말하는 일종의 혈루병인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관리에 열중하여 그 진행이 일시 정지되어 있습니다.소아 혈액 종양 분야에서 권위있는 여의도 성모병원 전문의께서는 뇌성마비에서의 한가지 특징으로써 자기 의사 표현을 소리가 아닌 자해 형태로 나타낸다고도 하셨습니다.바이러스가 아닌 약물복용인 정신약 때문에 혈소판 감소증을 앓는 것인가를 증명하기 위해, 여의도 정신과의 도움으로 병동 간호사를 통해서 '하늘이'를 관찰했지만 정신 병이 아니다는 판정을 내렸습니다. 나를 만나기 전까지 '하늘이가 자해한다'고 삯꾼들의 말에 따라 무조건 정신 약을 복용시켜서 하늘이는 고통을 겪었다 할 것입니다.돈받는 삯꾼들은 자해하는 골치아픈 한 아기에게 자신들이 편리하고자 정신 병으로 몰고서 '조용해지라'고 투약을 해 갔던 것이었습니다.아빠는 편리보다는 그 대신 '사랑으로' 말하지 못하는 답답한 자기 심정의 '하늘이'가 자해하지 않도록 '하늘이'의 마음을 살펴서 스트레스 받는 그 부분을 어루만져 주었습니다. 그러자 당연히 너무도 심한 자해는 99% 현격하게 멈추어 졌습니다.(1%는 자기 답답한 문제 표현 방식)

두 눈도 보이지 않기에 '아빠'는 하늘이의 두 눈이 되어 주면서 (상황 인지를 위해 사전에 상황을 미리 설명) 하늘이의 마음을 보살펴 주는 것이 다름아닌 사랑이 되었던 것입니다 예를들면 ; 변비가 심해 고통스러운 것을 하늘이는 말로써 표현을 다하지 못하므로 자해해서 아파야 소리내는 방법으로 표현하기 때문에 자해를 막으려면 미리 식이요법으로써(물과 식이 섬유로) 변비를 예방시켜 주는 단순한 일 등등이 사랑이 되었다 할 것입니다돈을 벌기 위한 삯꾼들은 그저 자해하지 말고 조용해지라며 자신의 일이 편리해지려고 약물 투여 방법을 사용했던 것과는 다른 '사랑'이었습니다. 하늘이의 몸과 마음과 정신은 당연히 맑아지기 마련입니다.사람을 살리는 사랑은 엄청난 일이 아닌 것입니다.삯꾼들에게는 돈벌이가 먼저였고 그래서 자기 일이 수훨해 지고 좀 더 편리해지기를 바랬다 할 것입니다.그러자 삯꾼들은 행하기가 어렵고 힘들기만 사랑을 미워하게 됩니다.어떻게하면 이런 사랑을 없애어 버릴까를 작정합니다. 마치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과 같이 예수님을 죽일 생각을 가졌듯이 그러합니다. 이는 시대가 변하여도 결코 달라지지 않는 인간 안에 내재된 악한 속성들이기도 합니다. 

양순한 삯꾼(직원)은, <아이야, 내가 몰랐구나 너를 아프게 했구나 미안하다>하며 자신의 행동을 시정하지만 거친(악한) 삯꾼은 <원래 이 아이는 그런 아이다>라며 자신의 거친 행동에 대하여 반성하지 않습니다.오히려 자기와 같은 삯꾼들에게 자기 변명을 말합니다. 모두 힘없고 나약한 (말 못하는) 아기 잘못으로 돌리게 만듭니다.이렇게 악한 (짓)들을 여러 삯꾼들에게 공유하게 합니다.사랑이 되는 것들을 공유하는 게 아닌 것입니다. 거친(악한) 삯꾼은 악에 의한 고통과 죄에 의한 죽음을 불러 일으키고 악한 짓들을 공유하게 함으로써 '사랑의 토양' 대신에 '악의 토양'을 뿌리내리게 합니다.'성인들의 통공'이란 거룩한 것들(사랑스런 것들)의 공유 및 친교이다는 성 교회의 가르침을 <가짜 예수의 공동체>는 따르지 않습니다. 버려진 이들 때문에 삯꾼들은 직장을 얻었고, 국가로부터 봉급을 잘 수령하면서 자기 행복을 가꾸지만, 버려진 이들의 평화와 행복에는 관심 밖입니다. 가짜 제자들이 <삯꾼의 지배 체제>를 동조해 주기 때문입니다.가짜 제자들도 예수님 처럼 고생하고 예수님과 결합하여 그리스도적 고난을 겪고자 하는 게 아니라 제 십자가에서 도피하고자 하는 무기력함과 자기 편함을 위해서 '삯꾼들을 위해 주는' 탓입니다.

그리하여 <삯꾼들이 예수님의 공동체를 지배하도록 일부 규정들과 방침들>을 정하였습니다. 사랑과 삯꾼이 싸우면 삯꾼 편을 들도록 한 지배 체제입니다.당연히 예수님시대에서도 율법 체제의 지도자들을 위한 지배 체제 하에서, 예수님께서는 버려진 가난한 이들과 동일시하였고 이들과 함께 했습니다.이같은 사랑을 미워하고 결국 사랑을 십자가에서 없애는 일은 그들이 그리스도 밖에서 떨어져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이런 불완전한 규정들과 방침들에서 극복하라고 하느님에게서 온 사랑이셨습니다. 그렿지만 가짜 제자들은 이를 부정하고 세속을 따르게에 재빠르기만 합니다. 그런 까닭에 악에 의한 고통과 죄에 의한 죽음은 멈출 수 없습니다. 이것이 이집트입니다.하느님께서는 아십니다. 마침내 버려진 이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실 것입니다. ( "나는 있는 나다" )

내가 하느님의 영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먼저 힘센 자를 묶어 놓지 않고서, 어떻게 그 힘센 자의 집에 들어가 재물을 빼앗을 수 있겠느냐? 묶어 놓은 뒤에야 그 집을 털 수 있다.(마태오 12, 28 - 29 참조)거친 삯꾼과 가짜 제자들이 사랑을 묶어 놓아야 사랑의 집을 털 수 있습니다. 악한 짓들을 계속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예수님과 결합한 참된 제자들이 <악한 삯꾼들과 가짜 제자들에게 묶이면> 마귀들이 집을 차지하여 사랑의 나라, 하느님 나라를 오게 할 수 없습니다.안타깝게도 참됨과 거짓됨을 식별하지 않고 항상 죄악의 편을 드는 이들은 있기 마련입니다.나와 함께하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 버리는 자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사랑을 부정하고 반대해 왔습니다. 예수님의 사랑 보다는 거짓된 현실을 따르려는 (거짓을 인정하려는) '이집트'와 같았습니다. <참고> 버려진 아기들 뿐만아니라 어른들 그리고 노약자들에게도 있는 현실들입니다.  




<게시글 1, 2 참조>

(게시글 1)  죄와 악의 두 가지 위치 [두 마음의 정결]

(게시글 2)  '하늘이' 오하늘 요세피나 

삯꾼은 이런 어린아기를 더 싫어합니다. 다른 아이들에 비해 까다롭기 때문입니다. 보살펴 주는게 (신경 쓰이는게) 한 두가지가 아니라 무려 10 여가지나 넘는 것입니다. 또같은 봉급을 받는데 이런 '하늘이 같은 아기'들은 삯꾼들에게 버려집니다. 그러면 아기는 더욱 스트레스가 쌓여 자해가 심해지게 되지요. '악에 의한 고통'을 당하기도 합니다. 버려진 사람이기에 또 다시 버린다고 해서 눈 하나 깜짝거리지 않지요. 삯꾼은 자신들도 고통없이 살기를 바라면서도, 버려진 이들이 고통없이 사는 것은 바라지도 않습니다. 사랑은 힘들고 고생하며 고난을 겪는 것입니다. 하지만 봉급받는 삯꾼들은 이런 사랑 보다는 자신의 편리성을 찾습니다. 삯꾼들과 한 통속이 되는 가짜 예수님의 제자들은 사랑을 미워하고 사랑을 반대하는 <악한 것들>의 공유가 공동체 안에서 판을 칩니다. 사랑스러운 것들이 공유되지 않습니다. 거룩한 것들의 공유와 친교라는 <성인의 통공>이 없는 가짜 예수의 공동체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사랑의 힘에는 무기력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언제나 소수의 참된 예수의 제자들에게 희망은 남아 있으며 그들에 의해 인류는 평화를 찾게 됩니다.



<교황님의 교서 참조>

복자 요한바오로 2세 교황님의 가르침의 일부입니다 (출처; 구원에 이르는 고통)

[ 구원은 악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며 또 그렇기 때문에 구원은 고통의 문제와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에 따르면
인간을 악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하여 하느님께서 세상에 당신 아들을 주셨습니다. "주신다"는 말씀 자체가 이 해방은 외아들 그분에 의하여 그분 자신의 고통을 통하여 성취되어야 한다는 것을 지적해 주고 있습니다. 당신 아들을 "주시는" 아버지 하느님의 무한하신 사랑이며 인간을 위한 사랑, 구원적인 사랑입니다. 그리스도의 구원적 고통은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고통의 의미가 있습니다. 외아들 그분이 인류에게 주어진 것은 일차적으로 결정적인 악에 대항하고 결정적인 고통에 대항하여 인간을 보호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구원의 사명을 띠고 보내심을 받은 하느님의 아드님은 인간의 역사 안에서 전개되고 있는 악을 바로 그 뿌리에서부터 쳐부수셔야 하셨던 것입니다. 이 악의 뿌리들은 죄와 죽음이라는 땅 속에 뻗쳐있었습니다. 비록 우리가 인간의 고통을 구체적인 죄들의 결과로 판단하는데에는 크게 조심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고통을 인간 역사에서 개인적 행동과 사회적 과정의 죄스런 배경에서 분리시켜 놓을 수도 없습니다. 인간 고통의 근저에는 죄와의 복합적인 연루관계가 있다는 비판 기준을 배격할 수 없다는 것도 진실인 것입니다.  "영생"은 인간이 하느님과 일치하는 결정적인 행복의 필수조건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선 첫째로는 원죄와 더불어 비롯하여 악의 영향력 아래 인간의 역사 안에 뿌리를 내린 죄의 지배를 불식하시며 그 다음으로는 인간에게 성화은총 속에서 살 수 있는 가능성을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그리스도께서는 인간 고통의 세계에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셨습니다. 그분의 활동은 일차적으로 고통 속에서 도움을 찾고 있는 사람들과 관련되어 있었습니다. 그분은 육신의 고통이든,영혼의 고통이든 인간의 모든 고통에 대하여 민감한 반응을 보이셨습니다.그리스도께서는 인간 고통을 바로 당신 자신에게 받아들임으로써 인간 고통의 세계에 다가오심을 이루셨습니다. 그분은 사람들로부터 조롱과 멸시, 오해를 받는 일을 겪으셨을 뿐아니라 점점 더 소외를 당하고 적의에 둘러싸이게 되셨으며 자기를 죽이려고 계획하는 음모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모든 것을 알고 계셨으며 죽음이 자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상>

(이해하기 위한 게시글 참조 ;  게시글 2 본문 안에 있는 다음 내용 참조 =>  작년 여름이었습니다. 2012년 여름 /  곧, 2013년 2월20일로부터 7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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