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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람은 누구인가? 하느님의 강(江) - 2013.8.20 화요일,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3-08-20 조회수440 추천수3 반대(0) 신고

2013.8.20 화요일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1090-1153) 기념일

 

판관6,11-24ㄱ 마태19,23-30

 

 


사람은 누구인가?
- 하느님의 강(江) -

 


오늘은 ‘사람은 누구인가?’에 대한 묵상을 나눕니다.

사람은 누구인가?
영원한 신비이자 화두입니다.

구체적으로 ‘나는 누구인가?’ 라는 구원에 직결되는 물음입니다.

 

오늘 강론도 두서없는 여러 묵상으로 시작합니다.
오늘 판관기를 들으면서
저는 도도히 흐르는 ‘하느님의 장강(長江)’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창세기로부터 시작하여 흘러 온 성경의 강, 하느님의 강은
마침내 판관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명멸(明滅)해 갔는지요.

 

어제 본원 소 성당 벽에, 돌아가신 날짜의 순서대로 걸린 하느님께서 불러 가신
선배 수도승들의 영정 사진을 보며 저는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역시 하느님 안에 영원히 살아계신 선배의 모습들이
그대로 하느님과 함께 면면히 흐르는 살아있는 강처럼 느껴졌습니다.

 

참 가난하고 불쌍한 약한 인간 바로 이게 사람의 정의입니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임진각 근처에 6.25사변 당신 인민군과 중공군 1000여명이 몰살 된 지역에
합동묘지가 있고 때때로 위령제를 지낸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어느 영의 목소리를 듣는 사람이 그 묘지에서 때로
“어머니, 배고파요. 추워요.”하는 죽은 병사들의 울먹이는 소리를 듣는다 합니다.

적병들 역시 고향과 어머니가 있는 불쌍하고 약한 사람들일뿐입니다.

하여
‘천주의 성모 마리아여,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라는 성모송 마지막 구절이 더욱 절실히 마음에 와 닿습니다.

 

“인간이란 하나의 숨결 같은 것, 지나가는 그림자, 그의 날 들 이외다.”

 

아침 시편 구절도 가난하고 불쌍한 덧없는 인간을 가리킵니다.

어제 원로 신부님의 말씀도 잊지 못합니다.

 

“사람은 약한 끈에 달려있는 모습 같습니다.

튼튼한 밧줄이 아니라
가늘고 약한 끈에 달려있는 참 위태하고 아슬아슬한 목숨 같습니다.”

 

바로 이게 사람입니다.

하느님의 도움과 위로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사람입니다.
하느님 없이는 의미도, 구원도, 정체성도 실종입니다.

하여 묵주기도 고통의 신비 5단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묵상합시다.’라는 구절 중
‘우리를 위하여’라는 말마디 역시 가난한 우리 인간에겐 큰 위로가 됩니다.

가난하고 불쌍한 ‘우리를 위하여’ 빌어주는 성모님이요,
가난하고 불쌍한 ‘우리를 위하여’ 수난 당하신 아드님 예수님이십니다.

 

구원은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도 가장 멀리 있습니다.
진정 가난하고 불쌍한 존재임을 깨달을 때 구원이요 참 나의 발견입니다.

이런 깨달음 또한 은총이요 주님은 이런 이와 함께 하십니다.

판관기에서 기드온을 찾아오신 주님이십니다.
“힘센 용사여,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

 

자신의 가난함을 깨달은 겸손한 기드온의 응답입니다.
“보십시오.
저의 씨족은 므나쎄 지파에서 가장 약합니다.
또 저는 제 아버지 집안에서 가장 보잘 것 없는 자입니다.”

 

자기를 아는 겸손이 바로 지혜임을 깨닫습니다.

하여 우리가 바칠 마지막 기도는
‘주님, 죄인인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자비송 하나뿐임을 알게 됩니다.

주님의 고맙고도 결정적인 답변으로 기드온은 구원 받습니다.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겠다.”

 

기드온은 물론 미사에 참석한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더불어 끝없는 탐욕과 무지의 인간,
이게 바로 사람이요 여기서의 해방이 구원입니다.

역시 탐욕과 무지는 함께 갑니다.

진정 가난하고 불쌍한 인간 존재임을 깨달을 때
탐욕과 무지로부터의 해방입니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 나가는 것이 더 쉽다.”

 

부자의 구원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어찌 부자뿐이겠습니까.
가난하다고 저절로 구원이 아니라,
가난한 이들 역시 자기(ego)가 있는 한 똑같이 구원은 쉽지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람에게는 그것이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바로 이 말씀이 답이요 구원의 복음입니다.

하느님께서 은총으로 그를 비우시어
부자든, 가난한 자이든 진정 가난하고 불쌍한 자임을 깨달아 알 때
비로소 구원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

 

주님의 은총으로 구원 받은 제자들을 대표한 베드로의 고백이요
백배의 축복과 영원한 생명의 축복을 약속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가난하고 불쌍한 우리를 부유하게 하시며 말씀하십니다.

 

“내가 정녕 너희와 함께 있겠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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